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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무대 LPGA 수석 합격한 루키 유해란

[김종석의 인사이드 그린] 1997년 박세리 이후 7번째 수석… 한국 여자 골프 침체 반전할 기대주

  •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꿈의 무대 LPGA 수석 합격한 루키 유해란

유해란이 LPGA투어 합격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앱손투어 제공]

유해란이 LPGA투어 합격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앱손투어 제공]

“넘버 원 투어에서 뛴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아요.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 몰랐습니다.”

꿈의 무대에 오르게 된 그의 가슴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계 최고 선수들과 겨루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수석 합격의 영광을 누린 유해란(21)이다.

그는 12월 12일 미국 앨라배마주 도선의 하이랜드 오크스 골프장에서 끝난 LPGA투어 퀄리파잉(Q) 시리즈 최종 8라운드에서 4타를 줄여 합계 29언더파 545타로 1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는 LPGA 출전 자격에 해당되는 투어 카드 획득을 다투는 ‘입학시험’.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에서 차세대 선두주자였던 유해란은 100명이 참가해 2주 동안 144홀을 도는 강행군을 치른 끝에 당당히 순위표 꼭대기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유해란은 최근 LPGA에서 침체 조짐을 보이는 한국 여자 골프의 저력을 되살릴 기대주라는 평가를 받는다.

퀄리파잉 시리즈 최종 8라운드 1위

LPGA투어 수석 합격 후 귀국해 축하를 받는 유해란.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LPGA투어 수석 합격 후 귀국해 축하를 받는 유해란. [세마스포츠마케팅 제공]

한국 선수들은 올해 LPGA투어에서 4승을 합작하는 데 그쳤다. 3월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고진영(27), 4월 롯데 챔피언십 김효주(27), 5월 뱅크 오브 호프 LPGA 매치플레이 지은희(36), 6월 메이저대회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 전인지(28)가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3승을 기록했던 2011년 이후 최소다. 15승을 수집한 2015년과 2017년, 2019년과 비교하면 거의 4분의 1 수준이다. 전인지 우승 후 16개 대회 연속 무관에 허덕이고 있다.



176㎝의 탄탄한 체구에 안정된 기량을 지닌 유해란은 가라앉은 한국 여자 골프 분위기를 되살릴 적임자로 손꼽힌다.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받고 자란 유해란은 유치원에서 그립 잡는 법을 배운 이후 골프에 흥미를 느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골프를 시작해 2학년 때부터 전문 지도를 받아 급성장했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에는 공을 치기 전 줄넘기 1000개씩을 하며 체력을 키웠다. “어린 나이에도 힘든 운동을 정말 재밌게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어머니의 설명이다.

2016년부터 3년 동안 국가대표로 활약한 그는 2018년 아마추어 대회 5관왕에 등극하며 대형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김효주, 고진영, 김세영 등을 배출한 한국 최고 아마추어 골프대회인 강민구배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임희정, 정윤지와 단체전 은메달을 땄다. 2019년 18세 나이로 프로에 뛰어들어 2부 투어에서 2개 대회 연속 우승한 직후 초청 선수로 나선 KPGA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정상에 올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최근 KLPGA투어 상금 규모가 커지면서 해외 진출을 노리는 선수가 부쩍 줄었다. LPGA투어에 뛰어들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고 투어 경비를 따질 때 실속이 없다는 계산도 영향을 미쳤다.

유해란은 달랐다. 김재열 SBS 골프해설위원은 “유해란의 꿈이 LPGA 진출이었고 긴 시간 준비했으니 잘할 것으로 본다”며 “미국 골프장의 양잔디를 좋아하고 KLPGA투어 선수 가운데 스핀양이 가장 많기 때문에 코스 적응도 무난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유해란이 재학 중인 한국체대의 박영민 골프부 지도교수는 “유해란은 플레이가 기복 없이 안정돼 있고 롱게임, 쇼트게임, 멘털, 체력 등 좋은 경기를 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골고루 갖췄다. 플레이를 영리하게 끌어갈 줄도 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무엇보다 큰 장점은 성실함이다. 골프 연습뿐 아니라 학교 수업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 출석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기복 없이 필요한 자질 고루 갖춰

LPGA투어 퀄리파잉(Q) 시리즈에서 드라이버 샷을 하는 유해란. [앱손투어 제공]

LPGA투어 퀄리파잉(Q) 시리즈에서 드라이버 샷을 하는 유해란. [앱손투어 제공]

유해란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홍미영 세마 전무는 “유해란은 본인의 선수 생활에서 장기적인 플랜을 일찍부터 세울 만큼 계획적”이라며 “미국 진출을 위해 지난해 LPGA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국과는 다른 미국 대회 코스를 미리 접하고 Q시리즈 도전을 위해 틈틈이 영어 공부도 했다. 구민석 대한골프협회 차장은 “아시안게임에 출전했을 때 유해란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어학 능력은 외국에서 뛰는 한국 선수에게 큰 힘이 된다. 한 골프해설위원은 “유해란이 한국 골프의 힘을 다시 보여줄 중요한 선수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아직 나이도 어려서 체력이나 기량 면에서 성장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말했다.

꾸준한 페이스도 유해란의 강점이다. 2020년 KLPGA투어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17개 대회에서 컷 탈락 한 번 없이 상금 랭킹 2위(약 2800만 원)에 오르며 신인상을 차지했다. 2021년에는 상금 랭킹 5위(약 7억9500만 원)로 마쳤다. 올해도 그는 28개 대회에서 1차례만 컷 탈락하며 평균 타수 2위(70.57타), 대상 포인트 2위, 상금 랭킹 4위(약 8억2900만 원)로 마쳤다. 3시즌 연속 상금 랭킹 5위권에 진입하며 2019년부터 매년 우승 행진을 펼쳐 KLPGA투어 통산 5승을 거뒀다.

유해란의 최대 장점은 26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다. 산악 지형에 OB(Out of Bounds)가 많고 페어웨이가 좁은 국내 코스와 달리 미국 골프장은 장애물이 비교적 적어 유해란에게는 유리할 전망이다. 그 역시 “한국 골프 코스들은 대체로 미국 코스들에 비해 굉장히 폭이 좁아서 높은 샷 정확도가 필요하다. 그런 점이 이번 대회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유해란의 클럽 계약사 테일러메이드의 관계자는 “스텔스 플러스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유해란 선수의 평균 트랙맨 데이터는 클럽 스피드 시속 100마일, 런치앵글 14도로 나온다. 드라이버의 경우 백스핀이 많으면 거리 손실을 보는데 유해란 선수는 3000에 가까운 스핀양을 2600까지 낮춘 게 장타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유해란은 정확도를 유지하고자 자기 힘의 약 70%만 사용해 스윙하고, 항상 스위트 스폿에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Q시리즈에서는 테일러메이드 신형 아이언 P7MC를 썼는데 부드러운 타구감과 일관성 향상의 효과를 봤다는 게 유해란의 설명이다.

몬스터 샤프트 제조업체 가도골프의 박종태 대표는 “유해란은 드라이버 분석 결과 키 176㎝에 팔 길이 180㎝의 큰 키와 긴 리치로 큰 스윙 아크를 만들어 누구보다 편하게 긴 비거리와 방향성을 확보한다”고 말했다. 유해란의 스매시 팩터(임팩트 때 공에 전달되는 에너지 효율)는 최대치인 1.49로 측정됐다.

유해란은 새해 1월 10일부터 3월 1일까지 태국 카오야이의 마운티 크리크 골프장에서 전지훈련을 할 계획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국가대표가 됐을 때까지 지도해준 염동훈 코치와 함께한다. 염 코치와는 3개월 전부터 다시 호흡을 맞추고 있다.

호주와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한 염 코치는 “유해란은 기본적으로 장타를 치기 때문에 70야드 전후 웨지게임과 퍼트에 집중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올해 지적된, 즉 체중이 발뒤꿈치 쪽에 남으면서 웨지샷에서 스핀양 컨트롤이 어려워지는 단점도 보완할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유해란을 지켜봐 누구보다 잘 아는 염 코치는 “지기 싫어하는 승부 근성이 대단하다. 대회 첫날 못 치고 들어오면 동기부여를 해주려고 본인이 좋아하는 스냅백 모자나 큐빅 볼마커 등을 선물로 내걸었는데 다음 날 잘 쳐서 엄청 많이 타 갔다”며 웃었다. 이번 Q시리즈에서 유해란은 1라운드를 1오버파 공동 61위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순위를 끌어올렸다.

강한 승부 근성에 장타가 최대 무기

LPGA투어에 따르면 한국 선수가 Q시리즈를 1위로 통과한 것은 1997년 박세리 이후 유해란이 7번째다. 당시 박세리는 크리스티 커(미국)와 공동 수석을 했다. 최근 기록으로는 2018년 ‘핫식스’ 이정은과 지난해 안나린이 1위로 LPGA투어에 입성했다.

한국은 5년 연속 LPGA투어 신인왕을 배출했다. 2015년 김세영을 시작으로 2016년 전인지, 2017년 박성현, 2018년 고진영, 2019년 이정은이 그 주인공.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신인왕을 뽑지 못한 뒤 지난해와 올해는 태국 선수들이 차례로 수상했다. 특히 2022시즌에는 KLPGA투어를 평정한 최혜진이 LPGA투어에 데뷔했으나 꾸준한 성적에도 인연을 맺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최혜진은 지난해 Q시리즈를 공동 8위로 마쳤다.

수석 합격으로 높아진 주위의 눈높이와 한미 신인왕 동시 석권 목표는 유해란의 어깨를 무겁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특유의 밝은 표정으로 더 큰 세상을 향한 의욕을 드러냈다. “KLPGA투어 루키 시절을 지낸 지 얼마 안 됐는데 다시 한 번 루키가 돼 기분이 새롭다. 초심으로 돌아가 평소처럼 즐겁게 달리겠다.” 유해란의 좌우명은 ‘항상 변치 말자’다.

김종석 부장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동아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한 골프 전문기자다. 1998년부터 골프를 담당했고 농구, 야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주요 종목을 두루 취재했다.





주간동아 1369호 (p58~60)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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