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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신호 켜진 세계 최강 한국 여자골프

[김종석의 인사이드 그린] 올 시즌 LPGA투어 4승 머물러… 상금왕 등 주요 개인 타이틀도 무관 가능성

  •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적신호 켜진 세계 최강 한국 여자골프

고진영. [사진 제공 · 박태성 작가]

고진영. [사진 제공 · 박태성 작가]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의 우승 가뭄이 길어지고 있다. 지난 4개월 동안 13개 대회 연속 정상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오랜 세월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한국 여자골프가 침체기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10월 23일 강원 원주시 오크밸리CC(파72)에서 끝난 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우승 트로피는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25)에게 돌아갔다. 이 대회는 국내에서 열리는 유일한 LPGA투어 무대였기에 안방에서 모처럼 승리 축포가 터지기를 기대하는 홈팬들이 몰렸다. 대회 기간 갤러리 수는 8만1000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LPGA투어 신인 최혜진(23)과 원주가 고향인 김효주(27)가 리디아 고에 5타 뒤진 공동 3위로 마감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재미교포 안드레아 리(24)가 단독 2위였다. 한국에서 태어나 뉴질랜드로 이민 간 리디아 고는 12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의 아들과 결혼을 앞두고 모국에서 투어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도 누렸다.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리디아 고 우승

리디아 고가 10월 23일 끝난 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 제공 · BMW코리아]

리디아 고가 10월 23일 끝난 LPGA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 제공 · BMW코리아]

11월 막을 내리는 이번 시즌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은 4승에 머물러 있다. 3월 고진영(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4월 김효주(롯데 챔피언십)가 우승을 차지한 뒤 5월 뱅크 오브 호프 LPGA 매치플레이에서 지은희가 역대 한국 선수 최고령(36세) LPGA 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6월 메이저대회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전인지가 타이틀을 안은 게 한국 선수의 마지막 우승 소식이다.

한국 선수들은 2011년 LPGA투어에서 유소연(US 여자오픈), 최나연(사임다비 LPGA 말레이시아), 박희영(CME그룹 타이틀홀더스)이 시즌 3승을 수집한 뒤 해마다 5승 이상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7승을 기록했는데 고진영이 5승을 휩쓸며 화려한 시즌을 보냈고, 박인비와 김효주가 한 차례씩 승수를 추가했다.



올 시즌 남은 대회는 이제 3개. 11월 3일 일본 시가현에서 토토 재팬 클래식이 개막한 뒤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펠리컨 위민스 챔피언십과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이 연이어 열린다. 시즌 29개 대회에서 3승을 올린 페이스를 감안할 때 11년 만에 5승 고지를 넘지 못할 공산이 커졌다.

이 같은 성적표에 대해 최근 퇴조 조짐을 보이는 한국 선수들의 국제 경쟁력이 도마에 올랐다. 한국 선수들은 2015년부터 LPGA투어에서 올해의 선수, 평균 타수, 상금왕, 신인상 등 주요 개인 타이틀 가운데 1개 이상을 가져왔다. 올해는 무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10월 28일 현재 올해의 선수와 평균 타수(69.051타) 부문에서는 리디아 고가 1위다. 상금 선두는 호주 교포 이민지(약 374만 달러·약 53억4707만 원). 한국 선수가 LPGA투어에서 이 4개 부문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것은 2014년 이후 없었다. 신인상은 아타야 티티꾼(태국)이 1487점으로 최혜진(1257점)을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시즌 상금 랭킹에서 전인지(약 260만 달러·약 37억 원) 만이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5위 안에 진입해 2위에 올랐다. 최혜진(약 201만 달러·약 28억7370만 원)이 6위, 김효주(약 140만 달러·약 20억 원)가 10위다. 김효주는 평균 타수 2위(69.423타). 슈퍼루키 최혜진은 성공적으로 정착했지만 우승 갈증이 커 보인다.

김재열 SBS 골프해설위원은 “그동안 한국 선수들이 무척 잘했다. 해마다 좋은 선수들이 LPGA에 진출하면서 자연스럽게 계보를 이어갔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잠시 중단된 측면이 있다. 선배들 같은 도전정신이 사라진 것도 이유”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또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투어가 활성화되면서 국내에 안주하려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 비용, 적응 등 현실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덧붙였다. 원형중 이화여대 교수는 달라진 세태를 지적했다.

“아마도 ‘죽자 살자 식으로 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생기면서 이제는 ‘좀 즐기면서 해도 되는 것 아니야’라는 식의 어프로치가 나온 듯하다. 흔히 말하는 헝그리 정신, 투혼 등이 퇴조하면서 진정으로 골프를 즐기는 방식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데 따른 혼란도 있는 것 같다. 정체가 지속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효주. [사진 제공 · 박태성 작가]

김효주. [사진 제공 · 박태성 작가]

한국 선수들의 헝그리 정신, 투혼 퇴조

한때 한국 선수들은 연습장에 가장 일찍 나와 가장 늦게 가는 그룹으로 유명했다. 특유의 성실과 끊임없는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요즘은 LPGA투어 상금 규모와 스폰서 기업이 늘어나면서 외국 선수들도 한국 선수 이상으로 열심히 한다고 한다. 연습량 차이가 줄어들면서 신체 조건이 뛰어난 미국, 태국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을 압도하게 됐다. 대한골프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 선수들이 약해진 게 아니라 우리보다 더 훈련하고 더 재능 있는 선수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땀으로 상징되는 한국 DNA를 물려받은 리디아 고, 이민지 등 교포 선수의 활약은 한국 선수들에게 부메랑이 되고 있다. 고덕호 프로는 “교포 선수들이 잘하면서 미국 언론에서는 계속 코리안 걸스가 투어를 지배하고 있다고 보도한다”고 전했다.

대한골프협회에 따르면 인구 감소 등 영향으로 2012년 435명이던 여고생 등록선수는 올해 378명으로 줄었다. 힘든 운동을 기피하는 풍토에 고교 골프선수의 훈련과 대회 출전을 심하게 제약한 영향도 있다. 한 아마추어 골프 지도자는 “과거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면 1000명 가까운 선수를 대상으로 했다. 요즘은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좋은 선수를 뽑을 확률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신 골프해설위원은 “한국 선수의 미국 진출이 줄어들어 과거 일본을 따라가는 듯하다. KLPGA투어는 유망주의 해외 진출을 막는 제약을 과감히 풀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이신 위원은 또한 “주니어 선수가 많이 줄었다. 최혜진의 경쟁력이 거의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해외 진출 성공 사례가 실종되면 어린 선수들에게도 동기 부여가 줄어들게 된다. 주니어 육성 프로그램에도 아낌없는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원 골프해설위원은 “LPGA 투어 선수들의 경기력이 상향 평준화됐다. 필드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선수가 없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대회 결과에 따라 부여되는 세계 랭킹 포인트에서 10점을 돌파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다르다는 게 박 위원의 얘기다. 그만큼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는 의미다.

세계 랭킹 1위 고진영은 손목 통증으로 고전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복귀전을 치른 세계 랭킹 1위 고진영은 대회 2라운드를 마친 뒤 기권했다. 세계 랭킹 포인트 7.25점으로 2위 티티꾼(7.20점)과는 0.05점 차이다. 지난해 5승을 올리며 ‘골프 퀸’으로 떠오른 고진영은 올해 1월 말부터 1위 자리를 불안하게 지키고 있다. 게다가 손목 통증으로 2개월 가까이 필드를 떠나 있는 등 정상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메이저 타이틀과 함께 재기에 성공한 전인지는 흉곽출구증후군에 따른 염증으로 4주를 쉰 뒤 시즌 막판 2개 대회에 나설 계획이다.

‘남달라’ 박성현도 이런저런 부상으로 정상권에서 밀려난 상태다. 세계 랭킹이 183위까지 밀린 박성현은 올해 8차례 컷 탈락했으며 톱10 진입은 한 번도 없다. 한국 골프 역사의 황금기를 장식한 ‘세리 키즈’ 박인비, 최나연, 유소연은 어느새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하나 둘 은퇴 수순을 밟고 있다. 반면 세대교체를 이끌 새로운 대형스타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앞서 한국 여자골프는 2013년 하반기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17개 대회 연속 우승을 못 한 적이 있다. 그래도 당시 박인비는 “물꼬만 터지면 선수들 사이에 동반 상승효과가 일어나 연이어 승전고를 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낙관대로 8월 이후 2차례나 3개 대회 연속 우승 행진을 펼친 한국 여자골프는 2014년을 10승으로 마무리하는 성과를 거뒀다. 당시는 두터운 선수층으로 대거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이번엔 반전을 위한 동력이 약하다.

한국 야구, 축구에서 보듯 국내와 해외 리그가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발전과 내실을 기할 수 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설 박세리는 과거 인터뷰에서 “한국 선수들은 만리타향에서 고생하며 힘들게 운동하고 있다. 우승이 없다고 해서 질책하기보다 따뜻한 응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애정 어린 관심이 재도약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김종석 부장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동아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한 골프 전문기자다. 1998년부터 골프를 담당했고 농구, 야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주요 종목을 두루 취재했다.





주간동아 1362호 (p52~54)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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