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피살 사건, ‘106개 보고서 삭제’에 담긴 의미는?

[이종훈의 政說]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 포착” 발표한 국방부, 피격 알면서도 숨겼나

  •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입력2022-10-2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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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6월 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동아DB]

    2020년 6월 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동아DB]

    감사원이 10월 13일 서해 피살 공무원 이대준 씨와 관련한 중간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 청와대에서 관계장관회의가 열렸고, 이후 국방부와 국가정보원(국정원)은 첩보 관련 보고서를 각각 60건, 46건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관련 내용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을 개연성이 크다. 정당한 이유 없이 공문서를 폐기했으니 직권남용이다. 검찰은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등을 직무유기,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즉시 보도자료 발표하지 않은 해경

    비슷한 사건은 이전에도 있었다. 2017년 12월 3일 인천 영흥도 앞바다에서 낚싯배가 침몰한 일이다. 인천해경의 신고 접수 52분 뒤 권영호 당시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1차 보고를 했다. 문 전 대통령은 “해경 현장 지휘관의 지휘 하에 해경, 해군, 현장에 도착한 어선이 합심해 구조 작전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지시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후 두 차례 전화 보고와 한 차례 서면 보고를 추가로 받았고,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를 찾아 당시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 등과 대책을 논의했다.

    이대준 씨 피살 사건은 다르게 전개됐다. 해경이 실종 신고를 접수한 때는 당일 낮 12시 51분이었다. 해경은 오후 3시 50분부터 해군과 수색에 나섰다. 통상적으로 해상 사고는 발생 직후 해경 발표를 바탕으로 언론이 보도한다. 하지만 사고 당일 관련 보도는 없었다. 해경이 보도자료를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 벌어진 셈이다.

    첫 보도자료가 나온 것은 이 씨가 실종된 지 이틀 후였다. 국방부는 “9월 21일 낮 12시 51분쯤 소연평도 남방 1.2마일 해상에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선원 1명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해양경찰에 접수됐다”고 발표했다. 이어 국방부는 “군 첩보에 의하면 9월 22일 오후 실종자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이 포착돼 정밀 분석 중에 있다”고 대처 과정을 밝혔다.

    보도자료 어디에도 실종자가 북한군으로부터 피격당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이 포착됐다고만 적시했다. 이 씨가 북한군에 피격당한 시간은 10월 22일 오후 9시 40분쯤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10월 23일 피격 사실을 알았음에도 관련 내용을 제외하고 보도자료를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같은 날 “군 당국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자진 월북 정황이 있는 것으로 보고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하루 지나서야 피격 사실을 확인해줬다.



    당시 정부는 보도자료 발표 시기를 의도적으로 늦췄다. 서해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실종됐다면 중대 사안에 해당한다. 피랍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남북 관계에 악재다. 그즈음 문 전 대통령은 평화선언 성사에 공을 들이는 중이었다. 실종 사고 발생 보름 전인 9월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했고 답신도 받았다. 문 전 대통령은 9월 18일 한반도 종전선언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는 내용을 담은 연설 영상을 유엔으로 보냈다.

    신뢰하기 어려운 청와대 해명

    서해 피살 공무원 형 이래진(왼쪽) 씨가 10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을 고소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서해 피살 공무원 형 이래진(왼쪽) 씨가 10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을 고소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유엔총회 연설이 예정된 상황에서 그 이틀 전인 9월 21일 실종 사건이 발생해 계획이 뒤틀렸다. 문 전 대통령과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는 데 주력했을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9월 22일 오후 6시 36분 처음으로 문 전 대통령에게 실종 사건 발생 사실을 서면으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보고를 받은 문 전 대통령이 조속한 구조를 지시했을 법한데 관련 내용은 알려진 바 없다. 이 또한 이례적이다.

    이 씨가 피격을 당한 직후인 10월 22일 오후 11시에서 12시 사이 군 당국은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보고했다. 이 보고를 바탕으로 청와대에서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시점이 다음 날 새벽 1시다. 회의 직후 106건의 첩보 문건 삭제가 이뤄졌다는 것이 감사원 조사 결과다. 당시 청와대는 “노 비서실장과 서 안보실장이 문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한 시점이 10월 23일 오전 8시 30분이었다”고 밝혔다. 실종 사건 발생 다음 날 오후 늦게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를 했다는 사실과 피격 다음 날에야 대면 보고를 했다는 것 모두 이례적이다. 해명을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는 청와대가 통상적 절차에 따라 대응했을 개연성이 크다. 실종 사고 발생 직후부터 수색 진행 과정은 물론, 북한 해역으로 흘러가 북한군에 발견된 상황, 이후 대치 과정 후 북한군이 사격해 불에 태우는 과정까지 수시로 보고가 올라갔을 테고, 문 전 대통령의 지시를 포함한 청와대 측 지시가 내려졌을 것이다. 폐기 문건 대다수는 당시 수시로 이뤄진 보고와 지시 관련 자료일 공산이 크다. 실종 사건 발생 후 이틀 동안 오간 문서가 106건에 달한다면 당시 청와대와 관계 부처가 얼마나 긴박하게 돌아갔을지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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