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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골프 세계 정상으로 이끈 ‘세리키즈’의 인생 전환점

[김종석의 인사이드 그린] 최나연 최근 은퇴 선언… 30대 중반 접어들어 제2 인생 모색

  •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한국 여자골프 세계 정상으로 이끈 ‘세리키즈’의 인생 전환점

골프 스타로 인기를 모은 최나연이 은퇴를 선언했다. 2020년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에 출전한 최나연. [사진 제공 · 박준석 작가]

골프 스타로 인기를 모은 최나연이 은퇴를 선언했다. 2020년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에 출전한 최나연. [사진 제공 · 박준석 작가]

골프 스타 최나연(35)이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최나연의 선수 생활 마감으로 한국 여자골프의 황금세대로 불린 ‘세리키즈’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맨발 투혼 끝에 우승한 박세리(45)의 영향을 받아 골프에 뛰어든 세리키즈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각자 골프 인생의 새로운 길목에 섰다.

1987년생인 최나연은 1988년에 태어난 박인비, 신지애, 이보미, 김하늘, 김인경, 이정은5, 오지영. 김송희 등 또래들과 어릴 때부터 친구로 지내며 기량을 키웠다. 최나연이 프로 조기 진출을 위해 출생 연도를 1년 앞당겼다는 후문도 있다. 88년 ‘용띠 클럽’ 회원들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투어에서도 이름을 날리며 한국 여자골프를 세계 정상으로 이끈 주역이다.

최나연만 해도 고교 1학년이던 2004년 KLPGA투어 ADT캡스 인비테이셔널에서 정상에 오른 뒤 프로에 뛰어들었다. 2008년 LPGA투어 데뷔 후 2010년 상금왕과 베어트로피를 수상했다. 2015년 LPGA투어 통산 상금 1000만 달러(약 143억5000만 원)를 돌파했다.

‘세리키즈’는 한국 여자골프의 황금세대

이보미의 결혼을 앞두고 베트남 여행에서 뭉친 세리키즈 이보미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 후배 유소연, 이정은5, 김하늘(왼쪽부터). [동아DB]

이보미의 결혼을 앞두고 베트남 여행에서 뭉친 세리키즈 이보미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 후배 유소연, 이정은5, 김하늘(왼쪽부터). [동아DB]

하지만 슬럼프, 부상이 길어지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최나연은 10월 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식 은퇴 선언할게요! 10월과 11월에 한국에서 두 대회 출전 후 선수 생활 은퇴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18년 골프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여기서 그는 “인생의 전부였던, 너무 사랑하지만 너무 미웠던 골프를 그만하려고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나연은 10월 20일부터 오크밸리CC에서 열리는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 출전해 LPGA투어 고별전을 치른다. 이어 11월 11일 라비에벨CC 올드코스에서 개막하는 KLPGA투어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에서 은퇴 경기를 갖는다.



최나연에 앞서 지난해 김하늘이 15년간 투어 생활을 마감하고 필드를 떠났다. 2007년 KLPGA투어에 데뷔해 신인상을 차지한 김하늘은 KLPGA투어에서 8승을 올리며 두 차례 상금왕을 차지한 뒤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LPGA) 투어에서도 6승을 거뒀다.

‘얼짱’으로 불린 최나연과 ‘스마일 퀸’ 김하늘은 KLPGA투어가 대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뛰어난 실력과 함께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팬덤을 이끌었다.

2014년 10월 스윙 코치인 남기협 프로와 결혼한 박인비, 2019년 12월 인기 연예인 김태희의 동생인 배우 이완과 결혼한 이보미는 은퇴 시점을 포함한 진로를 고심하고 있다. 박인비는 당초 이번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을 계획이었으나 소속사와 시기를 조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인비는 떠나는 최나연을 향해 “긴 시간 필드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시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우리가 또 다른 시작을 생각할 때가 됐다는 게 실감 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중학생 때 미국 유학을 떠난 박인비는 LPGA투어 통산 21승(메이저 대회 7승 포함)을 거뒀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다. 박인비는 LPGA 통산 상금 1826만7750달러(약 262억 원)를 기록해 한국 선수 1위다.

이보미는 올해 JLPGA투어에서 은퇴한 뒤 내년에는 KLPGA투어 주요 대회 위주로 나설 계획이다. 2010년 KLPGA투어 상금왕에 오른 이보미는 JLPGA투어에서 통산 21승을 거뒀다. 2015년과 2016년에는 2년 연속 JLPGA투어 상금 1위를 차지했다.

세리키즈, 초등학생 때부터 치열한 경쟁구도

주니어 시절 한국여자오픈에서 상을 받은 박인비, 이보미, 김하늘(왼쪽 두 번째부터). [사진 제공 · 대한골프협회]

주니어 시절 한국여자오픈에서 상을 받은 박인비, 이보미, 김하늘(왼쪽 두 번째부터). [사진 제공 · 대한골프협회]

신지애가 중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여읜 뒤 조의금과 보험금으로 받은 1500만 원을 갖고 골프에 전념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2006~2008년 3년 연속 국내 상금 여왕에 등극한 신지애는 2007년 KLPGA투어 시즌 9승을 달성한 뒤 2009년 LPGA투어에서 신인상과 상금왕을 동시 석권했다. 일본투어에서도 통산 26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0세 전후로 골프에 입문한 세리키즈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실력을 키웠다. 대한골프협회가 주관하는 대표팀이나 상비군에 뽑히려면 탁월한 기량을 지닌 동기들을 제쳐야 했다. 2005년 한국여자오픈에서는 박인비, 이보미, 김하늘이 차례로 베스트 아마추어 1, 2, 3위에 올라 시상식에 섰다. 김하늘은 “아마추어 시절 나이별로 대표 인원이 정해져 있었다. 다른 기수는 대표 선발 포인트를 50점만 따도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나는 150점을 따도 못 달았다”고 말했다. 그만큼 뛰어난 동기가 많았다는 뜻이다. 당시 선두주자가 최나연이었다. 최나연은 성호중에 다니던 2003년 15세로 동기 중 맨 먼저 대표팀에 선발됐다. 대한골프협회는 해외 전지훈련이나 프로대회 출전 등으로 일찌감치 다양한 경험을 쌓게 했다.

세리키즈는 30대에 접어들면서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고 있다. 비시즌에 함께 해외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틈나는 대로 만나 식사도 한다. 이보미는 결혼을 앞두고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 이정은5, 김하늘 등과 베트남 다낭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결혼 전 신부 친구들의 파티를 뜻하는 ‘브라이덜 샤워’였다.

산전수전을 다 겪어서인지 이들이 후배들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행복한 골퍼가 돼라”는 것이다. 골프 외적인 취미 활동이나 여가 생활도 강조한다. 박인비는 각별한 가족 사랑으로 유명하다. 김인경은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명상, 불교에도 몰입했다. 신지애 역시 독서나 여행 등을 롱런 원동력으로 삼았다.

한국 골프 역사를 빛낸 세리키즈의 은퇴 후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최나연은 김하늘처럼 당분간 방송 출연과 골프 레슨 등을 하며 진로를 찾을 계획이다.

이미 선수 생활 틈틈이 다른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신지애는 2015년부터 주니어 골프대회를 전남 지역에서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10월 초 일본에서 연 뒤 11월 8, 9일 광주CC에서 치른다. 각 부분 입상자에게는 장학금이 지급된다. 신지애는 “주니어 골프 육성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인비와 신지애, 골프 대회 개최

싱가포르 LPGA 대회에서 한자리에 모인 세리키즈 오지영 ,최나연, 박인비 신지애, 김송희, 김인경(왼쪽부터). [사진 제공 · JNA]

싱가포르 LPGA 대회에서 한자리에 모인 세리키즈 오지영 ,최나연, 박인비 신지애, 김송희, 김인경(왼쪽부터). [사진 제공 · JNA]

박인비는 2015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건 골프 대회를 열고 있다. KLPGA투어 간판선수들이 LPGA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과 단체전으로 맞붙는 챔피언스 트로피 박인비 인비테이셔널이다. 박인비는 “여자골프가 세계적인 실력을 지닌 한국에서만 가능한 이벤트다. 선수와 팬, 스폰서가 하나가 돼 즐기는 대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회에 출전했던 이정은6, 최혜진 등은 “뛰어난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더 노력해야겠다는 동기 부여가 됐다”고 입을 모은 뒤 몇 년 후 LPGA투어에 진출했다.

세리키즈의 은퇴 후 행보에 대한 기대감은 높다. 김재열 SBS 해설위원은 “세리키즈가 후배 양성, 방송인, 골프장 경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하기를 바란다. KLPGA에도 적극 참여해 선진 협회의 장점과 단점을 접목하는 것도 중요한 사명”이라고 말했다. 심원석 JR 사우스베이 골프 대표는 “자선과 기부 활동을 통해 골프가 가진 자들의 유희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하는 스포츠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앰배서더가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폴 박 아시아 골프 리더스 포럼 사무총장은 “외국어 능력을 갖춘 세리키즈가 스포츠 민간 외교관이 돼야 한다. 또한 한국 골프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고속성장을 거듭한 한국 여자골프는 최근 정체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총상금 규모와 대회 수 증가 등 외형적인 성장에 심취된 나머지 안주하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 경쟁력도 예전 같지 않다. LPGA투어에서는 12개 대회 연속 한국 챔피언이 나오지 않았다. 힘들어도 더 넓은 세상을 향하던 선배들의 도전 정신이 아쉽다.

세리키즈가 앞으로도 ‘굿샷’을 날려주기를. 그래야 한국 골프의 희망도 밝아진다. 물론 그들의 우정도 영원하기를.

김종석 부장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동아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한 골프 전문기자다. 1998년부터 골프를 담당했고 농구, 야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주요 종목을 두루 취재했다.





주간동아 1360호 (p54~56)

김종석 채널A 성장동력센터 부장 (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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