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44

2022.06.17

"오늘이 제일 싸다" 해외 노선 증편에도 항공권 대란 왜?

수요-공급 미스매치… “항공 규제 완화해도 당장 인력 확충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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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2-06-19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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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 여객기. [사진 제공 · 대한항공]

    대한항공 여객기. [사진 제공 · 대한항공]

    직장인 이 모(27) 씨는 이직 기간에 해외여행을 다녀오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2019년 7월 퇴사한 그는 ‘취직하면 해외여행 가야지’라고 생각하며 2020년 하반기 공채에 열중했는데, 그사이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막상 취직에는 성공했지만 방역수칙이 강화되면서 해외여행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2년여 시간이 흘러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었지만 이제는 국제선 항공료가 올라 항공권 구매가 망설여진다. 이 씨는 “해외여행 일정에 맞춰 휴가 일정을 조정하는 것만도 스트레스인데 항공권 가격마저 올라 머리가 아프다. 그냥 한 해 더 미루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는 이 씨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결혼 준비, 해외여행 온라인 카페 등에는 “국제선 항공료가 너무 올라 고민”이라는 이들의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남편이 8월 미국 출장이 잡혀 함께 가려 했는데 5월 구매 기준 왕복 항공료가 300만 원이 훌쩍 넘었다”는 등 사연도 다양하다. 항공료가 매주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도리어 “오늘이 제일 싸다”며 여행을 추천하는 사람도 적잖다. 하와이 신혼여행을 결정한 예비신부 A 씨는 “4월 말, 5월 초 예약했던 항공권 가격이 한 달 사이 치솟았다. 고민하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예약하는 게 예산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항공권 가격 한 달 사이 치솟아”

    코로나19 방역수칙이 완화되면서 해외여행을 고민하는 이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의 5월 국제선 여객 수송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370.5% 증가해 94만 명을 기록했다. △대양주(2352.3%) △동남아(753.8%) △중동(421.5%) △일본(417.0%) 순으로 노선 증가세가 가팔랐다(그래프 참조). 국제선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미주도 같은 기간 274.5% 증가했다. 여름 휴가 시즌이 다가오면서 해외여행 수요는 더욱 급증할 전망이다. 2년 3개월 만에 코로나19 확산 추세가 꺾인 점도 해외여행 열풍을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가격이다. 항공권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사전 예약을 얼마나 미리 하는지, 이륙 시간대가 언제인지, 성수기인지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해 가격이 형성된다. 항공업계는 “연도별 가격 비교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올해 해외여행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항공료가 전반적으로 올랐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여러 제반사항을 고려해도 항공 운임은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9월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다녀오는 일정을 9개월 전 확정하면 항공료 120만 원가량이 들었다. 포스트 코로나로 가고 있는 지금은 어떨까. 6월 16일 기준 9개월 후 대한항공 바르셀로나 왕복 비행기편을 예약하려면 200만 원 안팎이 필요하다. 사실상 항공료가 1.7배 증가한 셈이다. 런던, 파리 왕복 항공권 가격 역시 현 시점 220만~350만 원에 달한다. 2019년 대비 약 1.75배가량 높은 액수다. 저비용항공사(LCC)라고 항공 운임 증가를 피해가지 못했다.



    국제선 수요 5%로 줄었다 회복세

    항공 운임 증가의 핵심 원인으로 항공 수요-공급의 미스매치가 꼽힌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여러 요인 중 수요-공급 문제가 항공료 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국면에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방역수칙이 완화되면서 늘어났는데, 항공 운항 증가가 이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국제선 수요는 코로나19 사태 직후 5%까지 줄었다가 점차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다.

    국토교통부(국토부)에 따르면 한국 항공사의 국제선 운항 편수는 4월 기준 6338편이다.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 4월 국제선 운항 편수 2만8659편의 22.1% 수준이다. 인천국제공항의 주당 운항 규모도 6월 기준 762회다. 코로나19 사태 전의 16.0%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국토부가 6월 8일 ‘국제선 단계적 일상회복 방안’을 재조정하면서 늘어난 수치다.

    당초 국토부는 올 연말까지 국제선의 50%까지 재가동할 계획이었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국제선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국제선 여객 수요에 따라 항공편을 추가로 늘린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정부 당국은 이외에도 항공 운임 인하 및 항공업계 회복 등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의 시간당 항공기 도착 편수 제한(20→40대)과 비행 금지 시간(20시~익일 5시) 설정을 2년 2개월 만에 해제했다. 인천국제공항이 24시간 정상 운영되도록 한 것이다.

    규제 완화 효과는 당장 나타났다. 전자상거래업체 인터파크가 6월 8일부터 일주일간 인천국제공항의 해외 항공 예약 추이를 살펴본 결과 예약 건수가 전주 대비 35% 상승했다. 항공업계에서 “7말 8초를 성수기라고 부르는데 올해는 6월부터 성수기 느낌”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규제 완화가 당장 항공 운임 인하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달 항공 일정이 이미 확정된 만큼 당장 탄력적으로 인력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진에어 관계자는 “정부가 6월부터 항공 규제를 풀었지만 당장 이를 스케줄에 반영할 수 없다”며 “현지 공항과도 조업 인력, 스케줄 등을 맞춰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그들에게 인력을 확충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2~3개월 조정 기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관광 수요 회복 불충분”

    1월 2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방문객이 PCR 검사를 받기 위해 의료기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동아DB]

    1월 2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방문객이 PCR 검사를 받기 위해 의료기관으로 들어가고 있다. [동아DB]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의 정보 공유를 강조한다. 이승창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항공여객산업은 공항 서비스·그라운드 서비스·식음료 케이터링 등 유관 서비스가 많다”며 “항공사 입장에서 수요-공급 예측이 어려울 경우 항공편 확대를 주저하기 쉬운 만큼 항공사에서 최소 3개월 이상을 내다볼 수 있도록 정부가 관련 정책을 투명하게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항공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해외 출장 등 ‘상용 수요’ 위주로 회복되고 있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사태 전 항공권 가격대로 돌아가려면 관광 수요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면서 항공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윤철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아직도 입국 전 PCR 검사를 받아야 해 관광 수요가 본격적으로 회복되지 못했다. 항공사들이 관광 수요 정상화를 기대하며 항공편 공급을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늘려야 기내 빈 좌석을 채우기 위해 할인 정책도 펼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 국면에서 5%까지 위축됐던 수요가 30% 수준으로 늘어났다 치더라도 코로나19 사태 전과 비교하면 수요가 많다고 할 수 없다. 항공사 입장에서 할인 정책을 적극 펼칠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항공유 가격 인상도 항공권 가격 상승 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항공유가격지수(JFPI)는 6월 3일 기준 466.08에 도달했다. 지난해까지 300선을 밑돌다 올해 급등한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국제유가가 매일 치솟고 있다. 해당 여파가 항공업계에까지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항공유 가격이 오르면서 유류할증료도 동반 상승했다. 유류할증료는 항공사들이 유가 상승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는 목적으로 운임에 포함하는 할증 비용이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이달 국제선 유류할증료 19단계를 적용한다. 지난달 대비 2단계 오른 수준인데, 미주 노선의 경우 왕복 항공권 값에 55만9000원 유류할증료가 포함된다. 현 제도가 시작된 2016년 5월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고유가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유류할증료 문제 역시 당분간 해결이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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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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