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9

2022.05.13

‘커피 들고 산책’ 文 임기 첫 행보, 이후 5년 요약했다

[김수민의 直說] 국가적 난제 쌓였지만 위기의식 부족… 우선순위 설정 미흡

  • 김수민 시사평론가

    입력2022-05-15 10: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2017년 5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를 거닐며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 [동아DB]

    2017년 5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경내를 거닐며 참모진과 대화하고 있다. [동아DB]

    ‘커피 들고 산책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조국 대통령민정수석, 조현옥 대통령인사수석 등 청와대 비서들.’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첫날에 나온 이 사진을 보고 필자는 대통령 당선인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김 당선인과 임창열 경제부총리 등이 참석한 도시락 대책회의 사진을 실은 언론은 ‘IMF 못 넘으면 정권도 없다’ ‘“1초가 아깝다” 도시락 대책회의’라는 제목을 붙였다. 김 전 대통령 취임사는 위기 경보 그 자체였다.

    국민 감내할 고통 상기케 한 DJ와 대비

    정치 선전 전략만으로 견줘도 문재인 정부의 ‘탁현민식’ 캠페인은 하수로 평가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장밋빛 전망을 경계하고, 국민이 감내해야 할 고통을 상기케 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새로운 세상’이 온 듯 들떠 있었다. “김대중 정부 초기 IMF 정국에 비할 바 아니다”라고 태연하게 생각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앞에 쌓인 난제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 문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축출했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힘겨운 고비를 제때 정확히 비추지 않은 정부는 결국 고지서 걱정 없이 카드만 긁어댔다.

    문재인 정부의 업적으로는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지체됐던 확장 재정과 복지 확대에 물꼬를 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지출에 걸맞은 수입이 확보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초창기 잠깐 ‘보편 증세’의 운을 띄우는 듯하더니 대기업, 부유층에 국한한 증세를 했다. 그것이 재정 확보에 이바지하는 수준은 미미하다. 문재인 정부는 보편적 증세가 사회적 약자와 국가 전체에 유리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며 정치·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도 ‘촛불 정부’ 운운했다. 남은 것은 지출 확대를 독촉하는 여당과 건전 재정을 내세우는 관료 사이 기싸움, 그리고 국가채무 증가 혹은 공약 파기였다.

    부동산정책이 문재인 정부 실정 목록 1순위로 오른 것도 전체 그림이 뒤틀린 결과다.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를 세금으로 쪼면 매물이 나올 것” “대출을 규제하면 부동산으로 흘러가는 돈을 막을 수 있을 것” “전월세상한제도를 두면 임차인 권리가 보호될 것”이라는 식의 쪼개진 사고를 했다. 하지만 집값을 잡으려면 집권 초기 강력한 공급 신호를 보내 김을 빼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했다. 체계와 순서를 잘못 잡으니 대책에 대책을 거듭해 발표했고, 집값은 끝내 ‘멧돼지를 민가로 쫓아 보낸 꼴’이 됐다.

    외교에서도 큰 그림과 합리적 우선순위 설정이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6·15 공동선언을 발표하기에 앞서, 1998년 이른바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불리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일본 정부가 지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를 국제질서 핵심으로 여기고 다른 관계를 주변화했다. 한일관계는 악화됐고 남북관계는 개선되다 후퇴했다. 한일 지소미아(GSOMIA: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로 미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했으며, ‘친중 정권’이라는 비난이 무색하게 대중(對中) 관계도 개선되지 못했다. 국제정치 상황이 어렵다는 건 인정할 수 있다. 다만 2018년 남북미 대화 국면을 ‘새로운 시대 개막’이라고 착각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말의 성찬’으로 보수적 반대 세력에 빌미를 제공했고, 기대했던 지지층을 실망시키거나 기만했으며, 결과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대표적인 것이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족보도 없는 개념”이라는 일부 보수 세력의 주장은 몰상식하다. 토마 피케티 등 관련 학자들은 이미 ‘임금주도성장론’을 주장했고, 한국에서 이를 본격화한 첫 인물은 박근혜 정부의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다. 문제는 소득주도성장에 최저임금 대폭 인상 이외에 딱히 내용이 없었고, 문재인 정부도 슬그머니 이것을 집어넣었다는 데 있다. 소상공인 부담을 올리는 것보다 정부의 책임(복지, 산업정책)과 대기업의 책임(중소기업과 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우선시했어야 한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2020년 최저시급 1만 원’을 공약했을 때 극성 지지자들은 ‘2022년 1만 원’을 약속한 다른 대선 후보들을 공격해댔다. 코로나19 사태가 닥치기 전 결정된 2020년 최저시급은 8590원이었고, 2022년 최저시급은 9000원을 갓 넘었다.

    ‘탈원전’은 있지도 않은 현상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원자력발전소 수는 더 늘었다. 월성1호기 하나 닫았다고 탈원전 정부면 고리1호기 폐쇄 결정을 내린 박근혜 정부도 탈원전 정부다. 친원전 세력이 고준위 핵폐기장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재생에너지 혐오를 퍼뜨리며 밑도 끝도 없는 원전 확대를 노렸다면, 문재인 정부 역시 에너지믹스나 전기요금 대책을 면밀히 세우지 못한 것은 물론, 원전 하나 폐쇄하는 일에서조차 경제성 평가를 왜곡하는 물의를 일으켰다. 사회적 합의에서 이정표를 세운 것도 아니다. “원전 문제는 옴짝달싹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진솔한 고백도 없었다.

    文, 카터의 얼굴을 한 트럼프

    문재인 정부는 ‘평화적 성과’의 이면에도 ‘심각한 폭력’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 시기 시위 도중 노동자가 경찰 방패에 찍힌다거나 물대포에 농민이 쓰러진다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히 성과다. 그러나 극성 지지층은 논쟁 상대를 ‘토착왜구’로 낙인찍거나 명백한 사실관계를 부인하거나 성폭력 가해자를 두둔하는 문화를 굳혀놓았다. 여당 정치인들은 이에 동참했고 문 대통령은 점잖게 방조했다. 문 대통령처럼 정권재창출에 실패한 미국 대통령으로는 지미 카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카터의 얼굴을 한 트럼프’였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