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2

2022.03.25

우크라이나군 선전(善戰) 이면에 미군 도움 있었다

2015년부터 미군이 40개 대대 병력 훈련… ‘크림반도 병합’ 설욕 의지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2-03-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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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우크라이나 등이 참가한 합동군사훈련 ‘래피드 트라이던트(Rapid Trident)’. 우크라이나군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합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후 미군과 군사협력에 적극 나섰다. [사진 제공 · 미국 국방부]

    미국, 우크라이나 등이 참가한 합동군사훈련 ‘래피드 트라이던트(Rapid Trident)’. 우크라이나군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합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후 미군과 군사협력에 적극 나섰다. [사진 제공 · 미국 국방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질서를 뒤흔든 중대 사건이다. 그만큼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데, 전황에 대해서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양국과 각국 언론사가 각기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나라마다 언론의 주된 보도 흐름도 정반대다. 미국과 서유럽 등 서방 주류 언론은 우크라이나가 선전(善戰)하고 있으며 러시아군 피해가 극심하다고 보도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 인도 등 러시아를 지지하는 나라들의 언론은 정반대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일부 언론은 “이스라엘 총리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항복을 권유했다”는 ‘아니면 말고’ 식 보도를 냈다 논란을 빚기도 했다.

    치열한 프로파간다 대결

    우크라이나 르비우주(州) 야보리우에 위치한 ‘국제평화유지 및 안보센터’.[사진 제공 · 우크라이나 국방부]

    우크라이나 르비우주(州) 야보리우에 위치한 ‘국제평화유지 및 안보센터’.[사진 제공 · 우크라이나 국방부]

    이 같은 혼란이 벌어지는 배경에는 전쟁 발발 전부터 계속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치열한 프로파간다(propaganda) 대결이 있다. 양측은 전례 없는 규모로 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총동원해 전과 및 명분을 홍보하고 있다. 상대를 패주하는 악(惡)으로, 자신을 승승장구하는 선(善)으로 묘사하는 식이다. 양측 군 수뇌부는 매일 기자들을 불러 모아 “어제는 어느 마을, 어느 길목을 점령했다” “적 전차와 장갑차, 트럭과 항공기 몇 대를 어떻게 격추했다”는 식으로 매우 상세히 브리핑하고 있다. 사실 아군 활동을 일일 단위로 브리핑해 전과와 위치를 알리는 것은 작전 보안 측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군사·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양측 발표와 더불어 다른 소스(source)의 정보도 취합해 분석하기 마련이다. 반면 대다수 사람은 양국 군 당국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

    러시아군이 3월 중순부터 강화하고 있는 몇 가지 프로파간다 공작 사례를 살펴보자. 러시아는 3월 16일(현지 시간) 자국 해군 초계함 ‘바실리 비코프’가 흑해 크림반도 세바스토폴 기지로 복귀했다는 영상을 내보냈다. 해당 초계함은 3월 7일 오데사 연안에 접근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로켓 공격을 받고 격침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바실리 비코프 격침 주장은 우크라이나가 퍼뜨린 가짜뉴스”라고 선전했다. 러시아군이 배포한 영상과 사진이 삽시간에 SNS를 통해 퍼지면서 러시아 측 주장의 신뢰성에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영상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바실리 비코프함이 모항으로 복귀했다는 바로 그 시점에 러시아는 세바스토폴의 수상전투함 전력을 모두 긁어모아 오데사 상륙에 투입한 상태였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오데사 전체를 요새화하고 엄청난 수비 병력을 투입해 러시아 상륙에 대비하고 있었다. 상륙 전 공격을 위해 전투함 한 척이 아쉬운 상황에서 러시아 해군이 바실리 비코프함을 모항으로 복귀시킨 것이 이상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3월 13일부터 세바스토폴에서 전투함을 출항시킬 때 바실리 비코프함과 동형이나 유사 체급의 전투함 함번(Hull number)을 모두 지웠다. 흑해함대에 2척 남은 바실리 비코프함의 자매함 ‘드미트리 로가체프’와 ‘파벨 데르자빈’도 함번을 지우고 3월 13일부터 14일 사이 야간에 세바스토폴을 출항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16일 러시아 측은 바실리 비코프함의 귀환 영상을 공개한 것이다. 영상 속 전투함이 바실리 비코프함이라면 상륙이 어려울 정도로 거센 풍랑이 몰아친 바다에서 한 달 넘게 작전을 수행하고 돌아온 터였다. 그것도 우크라이나군의 로켓에 맞아 선체가 불에 탈 정도로 피해를 입은 채 말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공개한 영상 속 전투함은 녹슬거나 파손된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모습으로 세바스토폴에 돌아왔다. 이 배가 정말 바실리 비코프함일까.

    군함이나 항공기, 전차 등에 위장용 덮개를 씌우거나 도색을 바꿔 적을 기만하는 행위, 혹은 소수의 ‘배우’를 동원해 전황을 왜곡하는 프로파간다는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유효했다. 그러나 미디어가 발달하고 일반인의 정보 접근 능력이 커지면서 공권력의 정보 독점 시대는 끝났다. 섣부른 프로파간다는 등장 즉시 누리꾼들에 의해 가짜뉴스로 판명돼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공개출처정보(Open Source Intelligence·OSINT)를 통해 개인이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풍경이다.



    ‘공개출처정보’로 실시간 전황 분석

    수도 키이우 방어에 나선 우크라이나 군인들. [AP=뉴시스]

    수도 키이우 방어에 나선 우크라이나 군인들. [AP=뉴시스]

    우크라이나 전쟁도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의 호소에 부응한 우크라이나 국민이 ‘정보원’이 돼 집 앞에 나타난 러시아군 전차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보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정보의 교차 검증이 가능한 광범위한 OSINT 네트워크를 이용해 전황을 실시간 파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류 역사상 가장 투명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령 평범한 우크라이나 주민이 자신이 사는 마을 인근에서 폭발음이나 섬광을 관측했다며 SNS에 글을 올린다. 군 정보 당국은 해당 지역 주민들이 게시한 SNS 글을 수집해 정확한 발생 시각과 장소를 교차 검증한다. 동시에 해당 지역의 항공기나 선박이 자동 송신하는 ADS-B(Automatic Dependent Surveillance–Broadcast), 선박자동식별장치(Automatic Identification System·AIS)와 항공관제 정보 등을 수집해 공격 주체의 존재 유무를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사건 관측 첩보가 있던 지역 상공을 지나는 상업용 위성 영상을 확보해 사건 전후 현장의 변화를 확인한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프로파간다전은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고르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의 일일 전황 브리핑이 앞뒤가 맞지 않아 거짓말이 들통 나기도 했다. 프로파간다가 점점 심화되고 그 내용에 거짓이 늘어난다면 이는 프로파간다를 내세운 측이 점점 불리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적이 없으니 거짓말과 부풀리기, 왜곡으로 실적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는 개전 전만 하더라도 압도적 전력으로 우크라이나를 며칠 만에 집어삼킬 것처럼 기세를 자랑했다. 현재 빅데이터를 활용한 OSINT 네트워크는 러시아 측 주장과는 전혀 다른 전장 상황을 가리키고 있다. 개전 전 군사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했을 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을 압도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러시아는 최신 무기체계를 대거 동원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은 30년 가까이 현대화가 지지부진했다. 옛 소련 시절 만든 전차와 장갑차,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으로부터 노획한 기관총까지 들고 나와 러시아군에 맞서야 했다.

    친러 대통령에 무장해제된 우크라이나

    러시아군 폭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건물 잔해. [AP=뉴시스]

    러시아군 폭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의 건물 잔해. [AP=뉴시스]

    개전 직전 양측 군사력을 비교한 어느 누구도 우크라이나가 이처럼 전쟁을 장기화하면서 러시아군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전쟁 전 오랫동안 조성된 이 같은 인식 때문에 러시아의 프로파간다는 전쟁 초반 꽤 효과를 거뒀다. 전황이 뒤집힌 지금도 러시아군이 곧 우크라이나 전체를 정복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압도적 강자’였던 러시아군을 패잔병으로 몰아가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의 선전 비결은 무엇일까.

    우크라이나군은 8년 전 총 한 방 쏴보지 못하고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강탈당했다.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지속된 군사력 붕괴는 2010년 친러파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러시아와의 평화를 외친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은 신규 무기체계 도입과 군사훈련을 모두 중지했다. 멀쩡한 장비를 퇴역시킨 것은 물론, 징병제를 폐지하고 병력 자체를 줄여버렸다. 장병들에게 러시아의 위협을 상기시키는 교육도 금지했다. 야누코비치 정부 시절 안보 분야 고위직도 친러 인사들이 독차지했다. 그렇게 망가진 우크라이나군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합병 당시 친러 민병대에게 이렇다 할 저항조차 못 하고 국토를 내줬다.

    오합지졸이던 우크라이나군은 2022년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력 면에서 우위인 적과 싸우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 자신이 정해놓은 장소와 시간으로 적을 유인해 노련하게 격파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전략은 러시아군과 전면전은 피하고 주요 도시를 거점 삼아 대응하는 것이다. 러시아군을 100~300㎞ 이상 진격하게 만들어 길게 늘어진 기동·보급로의 허리를 치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종심(縱深) 깊이 들어간 러시아군 대대전술단은 탄약과 연료, 식량이 떨어져 고립됐다. 러시아는 이런 식으로 매주 1만여 명 병력을 잃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약 10년간 잃은 것보다 많은 병력을 개전 초기 상실한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성장 비결은 바로 미국의 조력이었다. 3월 13일 러시아의 대대적 공습으로 주목받은 르비우주(州) 야보리우 인근 군사시설은 오늘날 우크라이나군이 존재할 수 있게 한 산실이다. 미국은 2015년 이곳에 ‘국제평화유지 및 안보센터(International Peacekeeping and Security Center)’를 개설하고 8년간 40개 대대 규모의 우크라이나군을 훈련시켰다. 교관단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미국과 영국의 베테랑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우크라이나군의 햇병아리 신병들에게 기초 군사훈련부터 산악전·시가전·대전차전투·유격전 등 고급 전투 기술과 전술을 전수했다. 여기서 교육받은 우크라이나군 병력은 곧바로 돈바스 전쟁에서 실전을 경험했다. 이들이 지금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있는 것이다.

    신형 무기 있어도 훈련 없인 ‘백전백패’

    대한민국은 지금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머리에 이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라는 잠재적 위협에 노출돼 있기도 하다. 한국군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사례를 철저히 연구해 전훈을 찾아야 한다. 지난 몇 년간 한국군은 신형 무기를 선보이며 ‘첨단 정예 강군’을 자임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의 지리멸렬한 전쟁 수행에서 드러나듯 첨단무기로 무장했더라도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군대는 백번 싸워 백번 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미군과 협력이 절실하다. 풍부한 실전 경험을 가진 미군과 함께 생활하며 전술과 전투 기술을 전수받은 군대는 약해지려야 약해질 수가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미 양국이 ‘창끝부대(Edge Force) 통합’을 외치며 중·소대급 제대에까지 미군 장병을 보내 함께 훈련하려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요란한 첨단무기를 자랑하기 전 그동안 중단된 한미연합훈련과 창끝부대 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군을 다시 담금질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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