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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전 거듭한 러시아군, 퇴로 없는 ‘제2 아프간戰’ 수렁 빠지나

우크라이나戰 인명 피해·물자 손실 그간 러시아가 치른 전쟁 중 가장 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졸전 거듭한 러시아군, 퇴로 없는 ‘제2 아프간戰’ 수렁 빠지나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가운데)이 군대를 시찰하고 있다. [RT]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가운데)이 군대를 시찰하고 있다. [RT]

우크라이나 침공을 총지휘하고 있는 러시아군 사령관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이다. 올해 67세인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이다. 러시아군 최고위 현역 장성인 그는 2012년부터 총참모장을 맡아 군 현대화를 비롯해 각종 작전 계획과 전술 등을 수립·실행해왔다. 1999년 제2차 체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2006년 레닌그라드 군관구 사령관, 2009년 모스크바 군관구 사령관, 2010년 부총참모장, 2012년 중부군관구 사령관을 차례로 맡는 등 지휘 경험도 풍부하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승전 기념일 퍼레이드를 네 차례나 지휘하기도 했다. 2014년 3월 크림반도 강제병합과 2015년 시리아 내전 개입 및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반군 지원 등의 작전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사’라는 말을 들어온 그는 푸틴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아왔다. 2월 24일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도 그의 작전 계획에 따른 것이다. 그의 목표는 개전 사흘 내 수도 키이우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등 지도부를 제거한 후 친(親)러시아 정권을 수립해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국민 저항 예측 못 해

우크라이나 대전차미사일에 의해 파괴된 러시아 탱크들. [우크라이나군 PRESS SERVICE]

우크라이나 대전차미사일에 의해 파괴된 러시아 탱크들. [우크라이나군 PRESS SERVICE]

군사력만 놓고 볼 때 이번 전쟁은 시작 전부터 승패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러시아군은 정규군만 90만 명이고 예비군도 200만 명이나 된다. 각종 무기를 제외하고 병력만으로도 우크라이나의 8배 규모다.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이 제공한 일부 최신 무기를 제외하면 옛 소련 시절 구형 무기만 갖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를 전면 공격한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 버금가는 세계 최강 전력이라는 평가에 걸맞지 않게 졸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분노한 푸틴 대통령이 고위급 장성 8명을 전격 해임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올릭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회의(NSC) 의장은 이같이 주장하면서 러시아군 목표가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에 부딪혀 사실상 실패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에 상당한 타격을 입히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국민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결사항전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고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잘못된 정보로 침공 계획을 제대로 짜지 못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보기관 활동을 추적해온 웹 사이트 ‘아젠투라’의 안드레이 솔다토프 편집자는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이 침공 전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작성한 최종 보고서가 말 그대로 틀렸다”고 분석했다. FSB는 세계 최고 정보기관 중 하나로 꼽히던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후신이다. 푸틴 대통령은 1998∼1999년 FSB 국장을 역임한 바 있다. FSB는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에 잠입해 국민의 불안·분열을 조장하는 등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했지만, 국민이 단결해 러시아군에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고는 판단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군 총참모부는 기습 작전 위주로 침공 계획을 세우고 병력과 무기를 배치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예상과 달리 전략 요충지를 철통같이 방어했고, 국민도 앞장서서 화염병을 들고 러시아군 탱크의 진격을 저지했다. 푸틴 대통령은 정보 수집을 제대로 못 한 책임을 물어 FSB 해외첩보 부문 수장인 세르게이 베세다 제5국 국장과 아나톨리 볼류흐 부국장을 해임하고 가택연금 조치를 내렸다. 러시아 독립언론인 카밀 갈리프는 “베세다 국장이 우크라이나 내 친러시아 정서를 과장했고, 침공을 고려하는 푸틴 대통령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전투 경험 없는 어린 징집병 대거 투입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 병사들. [우크라이나군 PRESS SERVICE]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힌 러시아군 병사들. [우크라이나군 PRESS SERVICE]

러시아군이 연료와 식량을 제대로 보급 받지 못하는 등 부실한 병참도 고전 원인으로 꼽힌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밑에서 외무장관을 지낸 안드레이 코지레프는 “크렘린궁은 지난 20년간 러시아군을 현대화한다고 돈을 썼지만 예산의 상당 부분이 중간에 빠져나가 호화 요트를 사는 데 사용됐다”면서 “군 고위 장성들이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 없었을 테고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부패 민간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TI)는 러시아의 국방 분야를 지적하면서 러시아를 가장 부패한 국가 중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실제로 러시아군은 병사들에게 유효 기간이 2002년까지인 전투 식량을 보급했고, 굶주린 병사들이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슈퍼마켓에 들어가 식료품을 훔쳐가기도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일부 러시아군 병사가 사기 저하와 연료·식량 부족에 시달리다 전투를 피하기 위해 싸우지도 않고 대규모로 항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군 전력 강화를 위해 2008년 징병제를 징병·모병 혼합형으로 바꿨다. 직업 군인들에게 적정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며 복지 혜택을 강화했고, 일반 사병의 징집 기간은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했다. 현재 전체 병력 중 직업 군인은 40만 명으로, 공수부대와 전략미사일군 병력은 모병으로만 충당해왔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선 러시아군 병사는 대부분 전투 경험이 없는 어린 징집병들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도시에 군사법정을 설치하고 전장을 탈출하는 탈영병 처벌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질 만큼 군기가 해이하고 사기도 낮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징집병들은 의도적으로 차량 연료탱크에 구멍을 뚫기도 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작전에 징집병들이 동원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과 관련해 푸틴 대통령이 군검찰에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지시를 내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징집병들을 더는 참전시키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러시아군이 졸전을 벌이는 또 다른 이유는 지휘체제에 유연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정점으로 한 중앙 집중적 지휘체계의 경직성 탓에 현장 지휘관들이 자율적 판단에 따라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작은 것 하나까지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전투 현장에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하사관에게조차 없다. 이 때문에 러시아군 지휘관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위험을 회피하는 보신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러시아군 지휘관은 대부분 시리아 내전을 비롯한 소규모 전투들만 경험했을 뿐, 우크라이나 침공처럼 대규모 재래식 병력을 작전에 투입한 전투를 실제로 지휘해본 적이 없다.

서방 정보기관 “러軍 전사자 2000~6000명에 이를 것”

게다가 러시아군은 충분한 장비도 없이 우크라이나로 진격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도로와 교량을 파괴했지만 러시아군은 공병부대 등의 장비 지원을 받지 못해 더는 진격하지 못했다. 러시아군 탱크와 장갑차들도 고장이 자주 나는 바람에 멈춰서야 했고, 부품이 없어 수리도 못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심지어 러시아군은 매년 3월 우크라이나 땅이 진흙탕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 현상에도 대비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는 러시아군 탱크와 장갑차가 진흙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는 영상들이 올라왔다. 우크라이나 남동부 접경 로스토프 지역에서 러시아 탱크 12대가 진흙탕에 빠져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특히 러시아군 통신 장비는 최악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각 부대는 암호화되지 않은 중국산 무전기와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어 보안에도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마추어 무전 동호회원들이 도청해 트위터 등에 파일을 올렸을 정도로 허술하다. 무전이 제대로 되지 않자 병사들이 지휘관에게 휴대전화로 연락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러시아군이 디지털 통신망을 완비하지 못해 일부 부대에선 아직도 전투기·헬리콥터·탱크·포병과 아날로그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정부가 중국 정부에 장갑차, 보급·지원용 차량, 장기 보관이 가능한 휴대용 전투식량(MRE) 등을 지원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사한 러시아군 병사 수가 20년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른 미국·영국군 전사자보다 많다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서방 정보기관들은 이번 전쟁에서 전사한 러시아군이 2000~6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아프간 전쟁에서는 미군 2448명, 영국군 45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전쟁에서 지금까지 파괴되거나 노획된 러시아 무기와 장비는 전차 193대, 장갑차와 보병전투차량 287대, 지대공미사일 시스템 31개 등으로 추정된다. 저스틴 브롱크 영국 왕립국방안보연구소 연구원은 “조지아 전쟁, 체첸 전쟁을 포함해 1980년대 이후 러시아군이 벌인 전쟁 가운데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장 인명 피해와 물자 손실이 크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의 게릴라전에 제대로 대처할 역량이 없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완전 점령하더라도 1979년 침공했던 아프간처럼 끝없는 수렁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주간동아 1331호 (p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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