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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정의선 선택은?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철회로 제동, 현대모비스 분할·지주회사 전환 등 시나리오 분분

  •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갈 길 먼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정의선 선택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 제공 · 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 제공 · 현대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오랜 숙원인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승계 구도의 핵심 자금줄로 거론되던 현대엔지니어링이 연초 돌연 기업공개(IPO)를 철회한 것이다. 정 회장의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은 11.72%이다. 업계에서는 그가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으로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금 4000억 원 안팎을 지배구조 개편에 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총 1600만 주를 공모할 예정이었으며, 이 중 75%는 구주매출(대주주나 일반주주 등 기존 주주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주식 지분 중 일부를 일반인에게 공개적으로 파는 것)로 구성됐다. 희망 공모가는 5만7900~7만5700원. 정 회장이 당초 계획대로 자기 보유분(890만3270주)의 60%(532만1962주)만 매각해도 3093억~4044억 원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금줄’ 현대엔지니어링 기업공개 철회

앞서 정 회장은 연초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현대글로비스 지분 23.29% 중 3.29% (123만2299주)를 칼라일그룹의 특수목적법인(SPC) ‘프로젝트 가디언 홀딩스 리미티드’에 매각한 바 있다. 이를 통해 2000억 원 이상 현금을 손에 쥔 상태였다. 당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은 6.7%(251만7701주) 지분 전량을 처분해 4104억 원가량을 현금화했다. 세금 납부나 지분 매입 등 정 회장의 승계에 쓰일 것으로 예상되던 현금은 두 회사 지분 매각 자금을 합해 1조 원이 넘는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월 유가증권 상장을 목표로 지난해 12월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국내외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 예측까지 마쳤다. 하지만 1월 28일 돌연 기업공개 철회신고서를 제출하며 유가증권시장 상장 계획을 연기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의 기관투자자 수요 예측 경쟁률은 100 대 1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코스피가 2600선까지 무너지는 등 국내 주식이 급락하면서 투자심리가 악화된 것이 주된 요인으로 풀이된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아파트 건설 현장 붕괴 사고도 건설주 투자심리 악화에 일조했다. 높은 구주매출 비중 역시 IPO 실패 요인으로 꼽힌다. 공모로 조달된 자금이 대부분 신사업 투자 재원 등 회사 성장보다 기존 주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한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하면서 시중 자금을 대거 빨아들인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회사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을 고려해 공동대표주관회사 등의 동의하에 공모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핵심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은 지난해 로보틱스 분야 역량을 강화하고자 공동투자로 미국 로봇 개발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사진 제공 ·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과 정의선 회장은 지난해 로보틱스 분야 역량을 강화하고자 공동투자로 미국 로봇 개발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다. [사진 제공 · 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실타래가 꼬여 있는 쉽지 않은 과제다. 현대차그룹은 10대 대기업 집단 가운데 유일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출자 구조가 이어진다.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21.4%, 현대차는 기아 지분 33.9%, 기아는 현대모비스 지분 17.3%를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주요 3사의 1대 주주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이 보유한 핵심 3사 지분율은 낮은 편이다. 그는 현대차 2.62%, 기아 1.74%, 현대모비스 0.32%를 보유하고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은 7.15%이다. 이를 정 회장이 모두 물려받아도 그의 현대모비스 지분은 7.47%에 불과하다. 지배구조 근간이 순환출자로 돼 있는 탓에 개편 작업이 없으면 정 회장의 지배력 약화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정 회장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기 위해서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동시에 지배력을 강화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를 해결하려면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필요하다. 한국투자증권이 2월 초 발표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꼬인 실타래 풀기’ 리포트에 따르면 2월 3일 기준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의 대주주(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 보유 주요 지분 가치는 총 8조6000억 원(정 명예회장 4조6000억 원, 정 회장 4조 원)이다. 지분 거래를 감안한 정 회장 부자의 보유 재원은 세전 약 1조2000억 원으로 추정된다(정 명예회장 8943억 원, 정 회장 3146억 원). 배당금도 정 회장 부자의 주요 재원으로, 2010년 이후 주요 계열사의 누적 배당금은 세전 약 1조6000억 원(정 명예회장 9390억 원, 정 회장 6710억 원)으로 예상된다. 같은 날을 기준으로 기아가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려면 3조8000억 원, 현대제철이 가진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려면 1조3000억 원가량이 필요하다. 여기에 상속·증여 재원도 있어야 한다.



정 회장은 수조 원에 달하는 승계 자금 마련을 위해 그간 여러 시도를 해왔다.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이 지난해 로보틱스 분야 역량을 강화하고자 공동투자로 인수한 미국 로봇 개발업체 보스턴다이내믹스 투자도 그 일환으로 풀이된다. 사비 2400억 원가량을 들여 인수했고, 지분 20%를 확보했다. 향후 나스닥 상장도 거론된다.

공정한 논리와 명분으로 분할·합병해야

재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 기업공개 철회 이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여러 시나리오가 분분하다. [사진 제공 · 현대차그룹]

재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 기업공개 철회 이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여러 시나리오가 분분하다. [사진 제공 · 현대차그룹]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2018년 3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다. 지주사 격인 현대모비스를 투자·핵심부품 사업과 모듈·AS 사업으로 분리한 뒤, 모듈·AS 사업을 정 회장 지분이 많은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후 정 회장이 보유할 합병 현대글로비스 지분과 현대모비스 투자·핵심부품 사업 지분을 교환해 정 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해소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기아 주식 총 1조 원가량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 ‘엘리엇매니지먼트’의 반대로 무산됐다. 주주 권익 훼손 우려 등이 반대 이유였다.

재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 IPO 무산을 계기로 향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과 관련해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흘러나오고 있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2018년 지배구조 개편안처럼 현대모비스를 투자 사업과 모듈·AS 사업으로 인적 분할한 뒤 궁극적으로 현대모비스를 현대차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인적 분할한 현대모비스 두 법인 상장을 모두 유지한 후 정의선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과 현대모비스 모듈·AS 사업 지분을 기아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투자 사업 지분과 각각 교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기아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모듈·AS 사업의 1대 주주가 되고, 두 회사 합병도 추진할 수 있다. 결국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투자 사업에 대한 충분한 지분 확보가 가능하고 순환출자도 해소된다. 다만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릴 수 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각각 존속회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한 뒤 존속회사는 존속회사끼리, 사업회사는 사업회사끼리 합병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지분 거래 후 총수 일가→현대차·현대모비스 존속회사→현대차·현대모비스 사업회사로 지배구조가 재편될 수 있다. 현대모비스 분할 없이 대주주가 지분 확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현대모비스 유상증자에 총수 일가가 현물출자로 참여해 주요 계열사 지분 모두를 현대모비스 지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다만 양도소득세 부담과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대한 명분 확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아예 장기전으로 돌입해 별도의 지배구조 개편 없이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가장 큰 변수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건강으로, 상속 문제가 발생하기 전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회사의 분할과 합병 등을 추진할 땐 모두가 납득할 만한 공정한 논리와 명분을 갖춰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재계의 화두 중 하나는 지주회사 전환이다. 포스코에 이어 세아베스틸 등 지주회사 전환에 힘 쏟는 기업이 늘면서 현대차그룹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 초기부터 재벌개혁에 속도를 냈다. 기업 경영의 책임성·투명성 제고가 목표이고, 지주회사 전환 등 지배구조 개선과 총수 일가의 편법적 지배력 확장 억제 등이 과제다. 재벌그룹 최초로 2003년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한 LG를 비롯해 SK, 롯데, 효성, CJ 등 많은 대기업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삼성은 지주사 전환은 하지 못했으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꾸준히 진행했다. 계열사 합병과 지분 정리를 통해 2018년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었다.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은 낮은 듯

현대차그룹은 과거 60개 넘는 계열사를 거느렸지만 순환출자는 거의 없었다.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아는 해외 매각이 불발되자 현대차에 인수되며 돌파구를 찾았다. 기아 지분을 현대차가 인수했고, 2000년에는 현대모비스 경영권 안정을 이유로 기아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였다. 같은 해 9월 현대차는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지금의 순환출자 구조가 만들어졌다.

순환출자를 단순하게 정리하면 한 그룹 내에서 A 사→B 사→C 사→A 사 식으로 그룹 계열사끼리 꼬리를 물며 원모양으로 지분을 보유하는 것을 말한다. A 사의 최대주주라면 B 사와 C 사에 대해서도 강력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본금 100억 원을 가진 A 사가 B 사에 40억 원을 출자하고, B 사는 C 사에 30억 원을 출자한다. 다시 C 사는 A 사에 10억 원을 출자하며 자본금과 계열사를 늘린다. A 사는 자본금 100억 원으로 B 사와 C 사를 동시에 지배하면서 자본금이 110억 원으로 늘어나는 효과를 누리는 방식이다. 단 A 사 자본금이 된 10억 원은 장부상에만 증가하는 가공자본이다. 또한 회사가 서로 연결돼 있기에 한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연쇄적으로 다른 곳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과거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늘리면서 동시에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이 활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돼 재벌개혁의 주요 타깃이 됐다. 한국은 2014년 7월부터 시행된 공정거래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기업집단 계열회사 간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있다.

반면 지주회사는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서 다른 회사 주식을 소유하면서 사업 활동을 지배하는 회사다. 순환출자 구조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고 투명한 형태로 평가된다. 순환출자로 얽힌 회사들이 지주회사 아래 계열사로 단순화되는 형태다. 경영 리스크가 분산되면서 경영 효율성이 제고되는 효과도 있다. 또 공정거래법상 동일한 지주회사 아래 계열사 간에는 거래가 금지된다. 대기업의 대표적 폐해로 꼽히는 일감 몰아주기 문제가 자연스레 해결되는 셈이다.
향후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로 전환이 가능할까. 업계에서는 지주회사 현실화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현대차가 자회사, 기아가 손자회사가 돼야 하는데, 두 회사가 동시에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가 많다”며 “자회사와 손자회사가 동시 출자가 되는 상황이라 지주회사 전환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2018년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와 비슷하게 현대모비스를 지배회사로 만드는 방식이 유력하다고 전망했다.

또한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지분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알짜배기로 인식되는 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현대카드 등 금융사를 소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주회사 전환 시 금융사 매각도 현대차그룹이 해결해야 할 난제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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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1327호 (p28~31)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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