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05

2021.09.03

역선택 막으면 ‘제2의 오세훈’ 못 나온다

[이종훈의 政說] 대선은 중도층 두고 다투는 경쟁

  •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입력2021-09-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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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22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62년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오른쪽)와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가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5월 22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불기 2562년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오른쪽)와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가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역선택’ 논란이 국민의힘 경선판을 휩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자가 상대 정당의 약체 후보를 본선에 올리려고 악의적으로 선택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다. 진보 지지층이 여론조사에서 보수 대선주자 중 만만한 상대를 지지한다고 거짓으로 응답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대선 투표 우리끼리만 하나”

    여론조사 전문기관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 의뢰로 8월 21부터 이틀간 전국 유권자 10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8월 3주 차 ‘보수 야권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8.8%, 홍준표 의원은 22.1%를 기록했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8월 27부터 이틀간 전국 유권자 10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범보수권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에서도 홍 의원이 21.7%를 기록하며 윤 전 총장(25.9%)을 추격했다. 두 조사 모두에서 홍 의원이 전주 대비 상승세를 보였다(두 조사 모두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두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의힘 대선주자 간 역선택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KSOI 여론조사 세부 내용을 보면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52.2%, 민주당 지지층에서 4.2% 선택을 받은 반면, 홍 의원은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18.3%, 민주당 지지층에서 26.4% 선택을 받았다. 윤 전 총장 측은 이를 역선택의 명백한 증좌라고 해석했다.

    윤 전 총장 측은 경선룰에 역선택 방지 조항을 포함시키자고 주장하고, 홍 의원 측은 반대한다. 홍 의원 측은 다른 여론조사 결과를 반대 근거로 제시했다. KBS 광주방송·JTV 전주방송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가 8월 22일부터 이틀간 광주·전남·전북 소재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를 조사한 결과다. 이 조사에서 윤 전 총장이 7.4%로 3위를 차지했고, 홍 의원은 4.6%로 4위를 기록했다. 다만 ‘범보수권 대선후보 적합도 조사’로 경쟁자를 좁히자 홍 의원(18.5%)과 유 전 의원(16.8%)이 각각 1, 2위를 기록하며 윤 전 총장(9.0%)을 따돌렸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홍 의원은 8월 31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선 투표를 우리끼리만 하나”라고 반문했다.

    국민의힘 경선준비위원회가 대선주자 간 역선택을 둘러싼 공방이 격화하기 직전 경선룰에 ‘역선택 방지 조항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최근 출범한 당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이를 번복할 움직임을 보인다. 대선주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윤 전 총장과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는 당 선관위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이지만, 당 선관위가 역선택 방지 조항을 마련할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로 했다. 반면 홍 의원과 유 전 의원을 포함한 나머지 후보는 반대 의견이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황교안 전 대표는 역선택 방지 조항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역선택을 배제하는 장치가 필요할까. 역선택이 가능한지 여부부터 따져봐야 한다. 진보 지지층은 보수 지지층에 비해 응집력이 강하고 조직적이며 전략적이기에 역선택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여론조사가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상대 당 지지자의 입김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또는 대다수 진보 지지층이 단체채팅방에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려 역선택을 하기로 굳건한 결의를 맺지 않는 한, 다시 말해 ‘강철대오’를 유지하지 않는 한 그렇다.

    진보 지지층이 동질적이지도 않다. 진보 지지층 내에서도 응집력이 강하기로 소문난 민주당 친문(친문재인)계조차 모두가 생각이 같은 것은 아니다. 설령 그들이 똘똘 뭉쳐 역선택하기로 마음먹어도 진보 지지층의 일부일 뿐이다.

    진보 지지층이라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이심전심으로 국민의힘 대선주자 가운데 아무개가 본선에 올라오는 것이 좋다는 데 전적으로 공감한 나머지 ‘따로 또 같이’ 역선택에 나서는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 불가능하지 않지만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진보 지지층 역시 보수 지지층 못지않게 내부적으로는 사분오열이기 때문이다.

    4·7 보궐선거 교훈 기억해야

    역선택 방지 조항을 포함하면 국민의힘은 중도층의 마음을 잃게 된다. 역선택을 방지한다는 명분 아래 보수 지지층만 대상으로 경선을 치르면 중도층 표심을 반영할 길이 아예 막힌다. 선거가 접전 양상으로 흐를수록 중도층은 중요해진다. 각 당과 대선주자들이 외연 확대에 나서는 이유다. 보수 지지층만이 선호하는 후보를 본선에 내보내는 것을 필승전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4·7 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은 100% 일반시민 여론조사 방식으로 서울·부산시장 후보 예비경선과 본경선을 치렀다. 당시에도 역선택 우려가 있었지만 최종 선거 결과는 압승이었다. 보수 지지층만의 지지로 승리할 수 없는 지역에서 보수 지지층 비율을 훨씬 뛰어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했다. 국민의힘을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

    대선 본선에 돌입하면 각 당과 대선주자들은 산토끼 잡는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진보 지지층 일부와 중도층 대부분을 끌어와야 승리할 수 있다. 본경선이라는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는 참여를 불허하던 정당이 본선이 시작되자마자 180도 돌변해 지지를 호소할 때 중도층이 “얼쑤 좋다”며 환호할지 의문이다. 만약 그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 ‘오만과 편견’ 둘 중 하나이거나 모두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보고 싶다. 역선택 방지 조항에도 불구하고 경선 여론조사 때 진보 지지층이 보수 지지층이라며 거짓 응답하면 이를 걸러낼 장치가 있는가. 진보 지지층이 의도적으로 역선택을 하려 든다면 그 또한 못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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