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2

2021.06.04

진중권의 인사이트

송영길의 사과,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조국 잘못 지적 않고 불법을 ‘적법’ ‘합법’으로 호도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력2021-06-04 10: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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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왼쪽).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6월 2일 국회에서 ‘국민소통· 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
행사를 열었다. [PINTEREST 캡처, 뉴시스]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왼쪽).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6월 2일 국회에서 ‘국민소통· 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 행사를 열었다. [PINTEREST 캡처, 뉴시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 그 연작 가운데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도 있다. 정밀한 사과 그림 위에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적어 넣은 작품.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했다고 한다. 그 사과의 변을 듣고 이 작품이 떠올랐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재보선 참패 이후 민주당은 잠시 반성하는 척했다. 하지만 조국이 회고록을 출간하고 지지자들이 반응하자 시늉마저 포기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버렸다. 지지자들만이 아니다. 이낙연, 정세균, 추미애 등 당내 유력 대선주자들이 일제히 조국에게 공감과 연민, 혹은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1심 판결로 모든 사실과 증거가 밝혀졌고, 재보선 참패로 위선과 허위를 일삼아온 데 대한 국민의 심판도 내려졌다. 그런데도 반성이나 사과는커녕 외려 잘했다고 하니, 당연히 국민은 분노할 수밖에. 그 화를 가라앉히려니 당대표가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린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구조상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민주당 사전에 ‘사과’란 없다. 대선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조국을 감싸고도는 것은 당과 지지층의 핵심에게 조국 수호는 일종의 종교적 신앙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산토끼도 떠난 마당에 집토끼마저 떠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사과를 안 할 수도 없다. 이것이 민주당의 딜레마다. 결국 형식적으로 사과를 하는 척하면서 정작 내용에서는 사과할 대목을 슬쩍 피해가는 곡예를 벌일 수밖에 없다. 그 예상대로 송 대표가 사과를 하긴 했으나 찬찬히 뜯어보면 실제로는 사과해야 할 부분은 모조리 피해가고 있다.



    송 대표는 6월 2일 국회에서 ‘국민소통·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 행사를 열고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며 조국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일단 사과의 ‘형식’은 갖췄다. 그 사과가 진정한 것이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을 더 갖춰야 한다.

    진정한 사과의 두 조건

    첫째, 조국과 그의 가족이 한 일은 부덕을 넘어 불법이었다는 사실의 인정이다.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기소돼 15개 혐의 중 11개가 유죄로 인정됐다. 조국의 재판은 아니지만, 판결문에는 남편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유죄를 인정하는 구절도 들어 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모든 게 ‘적법’이고 ‘합법’이라 우기고 있다.

    둘째, 조국을 비호하기 위해 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수사를 방해하고, 허위와 날조와 공작으로 사태를 호도하며 국민을 기만해온 사실의 인정이다. 법원은 “(조국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다”고 판시했다. 민주당은 진실을 원하는 국민을 정신적으로 고문해왔다.

    그런데 송 대표의 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진정한 사과에 필요한 이 두 가지를 찾아볼 수가 없다. 결국 하나 마나 한 사과를 한 것이다. 그 사과의 변조차도 자세히 뜯어보면 조국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여전히 그의 불법을 ‘적법’ 혹은 ‘합법’으로 호도하는 식으로 옹호하고 변명하는 내용이다.

    송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조국 전 장관의 법률적 문제와는 별개로 자녀 입시 관련 문제는 우리 스스로 돌이켜보고 반성해야 한다.”

    법원은 이미 조국 일가가 한 행위의 불법성을 인정했는데, 송 대표는 그것을 ‘별개’의 문제로 처리한다. 진정한 반성의 첫째 조건을 아예 무시해버린 것이다. 그의 속내는 다른 데 있다.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지위와 인맥으로 서로 인턴 시켜주고 품앗이하듯 스펙 쌓기 해주는 것은 딱히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시스템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청년에게 좌절과 실망을 주는 일이었다.”

    즉 조국 일가의 행위가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는 청문회 국면에서부터 조국이 내내 취하고 있는 스탠스다. 자신과 가족은 그저 부도덕했을 뿐 불법을 저지른 적 없는데, 윤석열 전 총장의 검찰이 대통령을 공격하려고 자신과 가족을 ‘도륙질’했다는 것. 결국 당대표의 사과가 정확히 조국이 쳐놓은 가이드라인에 얌전히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조국은 그 ‘사과’를 외려 반길 수밖에.

    “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이하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조국의 시간’에는 물론, 그 이전에도 저는 같은 취지의 사과를 여러 번 했습니다.”

    당대표의 사과가 자신의 가이드라인을 지킨 데 대해 감사하다는 환영의 메시지다.

    또 윤석열 탓

    남 탓하는 것도 여전하다. 잘못한 쪽은 조국이 아니라 언론이란다. 조국 회고록과 관련해 그는 “일부 언론이 검찰 측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쓰기해 융단폭격을 해온 것에 대한 반론 요지서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15개 혐의 중 11개가 유죄로 인정됐는데도, 반성은커녕 잘못을 여전히 언론에 돌린다. 검찰 탓도 빠지지 않는다.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수사의 기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가족 비리와 검찰 가족 비리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할 것이다.”

    조국 수사를 가혹한 ‘인권 침해’라 부르며 그 관행을 없애려고 ‘검찰개혁’을 한다는 이들이 윤석열의 장모에게 인권 침해를 하라고 강요한다.

    송 대표의 사과 아닌 사과로 조국의 ‘파렴치함’은 공식적으로 민주당의 ‘뻔뻔함’이 됐다. 입으로는 사과하고 반성한다고 하나, 실제론 이제까지 해온 짓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처신이 달라질 리 없다. 민주당은 조국이라는 늪에 빠졌다. 겨우 코만 내민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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