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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인사이트

“추미애, 박범계가 국민 알권리 빼앗았다”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추미애, 박범계가 국민 알권리 빼앗았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동아DB]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동아DB]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공소장(公訴狀) 유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공소장을 언론에 넘긴 검사를 색출하라는 얘기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이를 제3호 사건으로 접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어차피 법정에서 공개될 문서가 언제부터인가 언론에 알리면 안 되는 비밀문서가 됐다. 다 조국 사태 이후 일이다.

공소장 비공개 방침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부터 추진됐으나, 이를 처음으로 실행에 옮긴 사람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다. 지난해 2월 그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을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공소장은 바로 다음 날 보란 듯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고, 추 전 장관은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런 추 전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대표이던 2016년 국정농단 사건 관련자의 공소장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동정범이자 범행을 주도한 피의자로 적시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때 “내로남불 아니냐”고 지적하자 그는 “헌법재판과 형사재판은 다르다”고 대꾸했다. 헌법재판의 피고인은 인권을 무시하고 마구 여론재판을 해도 된단 말인가.

당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추 전 장관의 공소장 비공개 결정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결국 이 일은 교양이 부족한 장관이 몰취향한 ‘농담’을 하다 세간에 망신을 당한 사건으로 정리됐다. 그렇게 끝난 일인 줄 알았는데, 후임인 박범계 장관이 그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물려받아 계속하고 있다.
그러는 박 장관 역시 2017년 “법원이나 검찰은 최순실 공소장에 붙어 있는 별지를 공개하라”고 말한 바 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공소장은 “공판의 개정 전에는 공익상 필요 기타 상당한 이유가 없으면 공개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법원에서 개정 전 공소장을 공개했는데, 거기에는 한마디도 안 하고 외려 ‘별지’까지 까라고 한 것이다.

공소장 공개가 반헌법적 작태?

박범계 법무부 장관. [동아DB]

박범계 법무부 장관. [동아DB]

그랬던 이들이 공소장 공개가 ‘반헌법적 작태’라며 입에 거품을 문다. 아무튼 이제까지 아무 문제없던 일이 박 장관의 한마디에 감찰 대상이 되고, 심지어 공수처가 수사하는 ‘범죄’가 됐다. 그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새로운 입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장관의 말 한마디에 합법이 졸지에 불법이 됐다.



문제는 공소장을 공판 전 공개하는 행위의 불법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 있다. 형사소송법은 “공익상 필요 기타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공판 전 공소장을 공개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권력형 비리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공소장은 “공익상 필요”에서 공개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래서 추 전 장관도 공판이 개정되기 전 최순실 공소장을 미리 입수해 읽고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검찰은 빼곡한 글씨로 30장의 공소장에 대통령을 공동정범, 때로는 주도적으로 지시한 피의자라고 했습니다.”

한 번만이 아니다. 추 전 장관은 1심 재판이 열리기 전 네 차례에 걸쳐 이 공소장을 언급한 바 있다.

박 장관이 1심 공판이 열리기 전에 공개된 최순실 공소장의 별지까지 공개하라고 촉구한 것 역시 당시에는 그것이 우리 사회의 관행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심지어 국회에서 의결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도 그 내용의 90% 이상이 검찰 공소장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관행이 어느 날 갑자기 불법이 된 것이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공인이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의 수장이다. 그런 그가 불법으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을 금지시키는 일에 가담했다. 현직 지검장이 과거에 그 직권을 이용해 불법을 저질렀다. 국민은 공인인 그가 해당 범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여했는지 알권리가 있다.

공수처는 권력의 청부업자인가

이제까지 우리 사회는 그 권리를 ‘공익상 필요’한 것으로 인정해왔다. 그런데 추 전 장관과 박 장관이 이 암묵적 합의를 깨고 독단적으로 그 권리가 ‘공익상 필요’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 공판이 열리기 전까지 공인의 피의사실은 그들만 알고, 국민은 모르고 지내야 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공익상 필요 기타 이유”는 매우 모호한 규정이다. 그럴 때는 규정을 자기 편한 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할 게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널리 받아들여온 ‘관행’을 따르는 게 상식이다. 그 관행이 마음에 안 든다면 사회적 논의를 거쳐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구하거나, 모호성을 제거하기 위해 새로이 명확한 입법을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그동안 법무부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당파적인 장관의 자의에 따라 이제까지 이어져온 관행을 노골적으로 ‘불법’으로 규정해버렸다. 더 큰 문제는 공수처다. 그들은 불법성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이 사안을 덥석 공수처 제3호 사건으로 채택했다. 공수처가 권력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청부업자인가.

장관 둘이 우리의 알권리를 빼앗아갔다. 어차피 공판이 시작되면 공개될 터, 미리 알 필요는 없다? 국민의 알권리는 ‘무엇’을 알 권리이자 동시에 ‘언제’ 알 권리이다. 특히 권력이 노골적으로 검찰과 사법부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시기에 형성되는 여론은 민주주의의 법과 제도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찍이 이런 정권은 없었다. 현직 신분인 법무부 장관이 폭행죄로 재판을 받는다. 차관은 택시기사 폭행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장은 수사심의위원회 의결에 따라 직권남용죄로 기소됐다. 하필 법(=정의)을 담당하는 이들이 조사받거나 기소되거나 재판받을 일을 저질렀다면 스스로 옷을 벗는 게 마땅하다.





주간동아 1291호 (p44~45)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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