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0

2021.05.21

서울서 나고 자랐는데 고향서 집 사기 왜 이렇게 어렵나

1주택자 소득·자산에 따른 대출 허용해야

  • 이재범 경제칼럼니스트

    ljb1202@naver.com

    입력2021-05-2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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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현재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11억 원이다. [GETTYIMAGES]

    5월 현재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11억 원이다. [GETTYIMAGES]

    나는 고도성장기인 1970년대 서울에서 태어났다. 지금까지 서울에서만 계속 살았다. 어릴 때는 작은 마당이 있는 다가구의 단독주택에서 생활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부모님이 어렵게 모은 돈과 대출을 활용해 마련한 집이다. 단독주택인데도 다가구라고 표현한 이유는 안방이라고 할 수 있는 방이 좌우로 하나씩 따로 있고 이곳에 임차인이 각각 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부족한 돈을 벌충하려는 부모님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그 집은 따로 출입문 비슷한 게 있었다. 왼쪽 방은 전용면적이 26㎡(8평)가량 됐는데 4인 가족이 살았다. 오른쪽 방은 20㎡(6평) 정도로 3인 가족이 살았다. 오른쪽 방 옆 골방은 6.6㎡(2평)쯤 됐는데 그 방에도 누군가 혼자 거처했다. 나중에는 지하에도 방을 만들어 그곳에서 한 자매가 생활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때 다들 그렇게 살았다. 당시 인기 있던 드라마가 일요일 방송된 ‘한지붕 세가족’이었다.

    1990년대 들어 정부가 폭등하는 집값을 잡고자 200만 호 건설을 공약하고 실천했다. 지금의 1기 신도시가 완성된 게 이 시기다. 1990년 ‘4·13 부동산 투기 억제대책’으로 총 5가지 방안이 발표됐다.

    정부는 임대용 다가구주택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당시 동당 연건축면적 100평(약 330㎡) 이하 3층 이하인 건축 규제를 20평(약 66㎡) 이하 4층 이하로 완화했다. 또 △다가구주택 건축 때 건물분 재산세 대폭 완화 △다가구주택 취득 때 100평 초과 호화 주택에 적용되는 취득세 7.5배 중과 배제 △국민주택기금의 다가구주택 동당 지원 규모 확대 △보험회사 총운용자산의 일정 비율을 다가구주택 건설 자금으로 지원 등 전월세용 다가구주택 건설 촉진을 위한 전폭적 규제 완화와 지원책도 내놨다.

    정부의 부동산 ‘당근’

    1990년대 정부의 부동산정책으로 다가구주택이 흔한 거주 공간이 됐다. [GETTYIMAGES]

    1990년대 정부의 부동산정책으로 다가구주택이 흔한 거주 공간이 됐다. [GETTYIMAGES]

    당시 정부가 내놓은 ‘당근’을 부모님은 기꺼이 받아들여 다가구주택을 건축했다. 1층에 2가구, 2층에 2가구, 3층에 우리 식구가 살았고 옥상에도 옥탑방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우리 집뿐 아니라 주변 집들도 전부 단독주택을 허물어 다가구주택을 건축하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빨간 벽돌집으로 불리는 다가구주택은 그렇게 흔한 거주 공간이 됐다.



    완공 후에도 여전히 넓지 않은 주택이었지만 공실이 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계속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큰 집에 거주할 수 없었던 사람은 다가구주택에서 서울살이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성인이 된 나도 그곳에서 자라 독립했다. 돈이 없는 관계로 서울살이의 시작은 연립주택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좀 더 좋은 주택으로 이사했다.

    단 한 번도 서울 이외의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서울은 나에게 고향이다. 과거에는 서울 아닌 곳에서 태어나 서울로 일하러 온 사람이 아주 많았다. 밀려드는 사람들이 살 집이 필요하니 다양한 형태의 집이 생겨났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어느새 그런 사람들에게 서울은 제2 고향이 됐고 그렇게 정착해 삶을 이어갔다. 웃고 떠들던 이웃들도 함께 늙으면서 다른 지역으로 가기가 힘들어졌다. 그들의 자녀들은 이제 서울이 고향이 됐다.

    이처럼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에게 서울은 떠날 곳이 아닌, 지금처럼 계속 살아갈 터전이다. 서울에서 살다 잠시 경기도로 빠져나간 사람이라도 현실적으로 부모님이 서울에 산다면 아이 양육을 위해서라도 부모님 집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

    고향에 살고 싶어도…

    지난해 6월 17일 정부가 부동산정책을 내놓으면서 투기과열지구인 서울에서 9억 원 이하 집을 살 때는 40%, 9억 원 초과는 20%, 15억 원 초과는 0%의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올해 5월 현재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11억 원이다. 내가 서울에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는다면 9억 원 이하는 40%인 3억2000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11억 원일 경우 9억 원에서 초과한 2억 원의 20%인 4000만 원을 합쳐 3억6000만 원 대출이 가능하다. 각종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최소 8억 원은 갖고 있어야 서울 아파트를 매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마저도 눈여겨본 아파트가 15억 원이라면 10원도 대출받을 수 없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며 원망하기보다 대출을 좀 받아서라도 더욱 넓고 좋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다. 지금은 당장 이사가 힘들어 전세를 끼고 집을 산 뒤 입주하려 해도 1년 이내 입주하거나 기존 주택을 양도해야 세금 감면을 받을 수 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고향에서 살고 싶은 게 잘못은 아닐 텐데, 왜 이렇게 힘이 들까. 돈 없는 사람이 서울에서 아파트를 매수하는 일이 언감생심이 됐다. 서울에 매물이 없고 신축 아파트를 비롯한 공급도 없으니, 가격이 상승하는 건 무척이나 당연하다. 투기는 잡아야겠지만 그로 인해 실거주자까지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서울은 투기판이 아니라, 실거주자들이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곳이다. 최소한 1주택자에게는 소득과 자산에 따른 대출을 허용하면서 종합부동산세를 내게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서울에서 나가지도, 서울로 들어오지도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 서울은 고향이다. 그저 고향에서 계속 거주하고 싶을 뿐이다. 그게 강남이든, 강북이든.

    이재범은… 네이버 독서 분야 파워 블로거. 1000권 넘는 실용서적 독서를 바탕으로 초보자들에게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의 투자법을 ‘천천히 꾸준히’라는 모토 아래 전파하고 있다. 저서로 ‘주식의 완성 교양 쌓기’ ‘서울 아파트 지도’ ‘부동산 경매시장의 마법사들’ ‘집 살래 월세 살래’ ‘부동산 경매 따라잡기’ 등이 있다.

    *포털에서 ‘투벤저스’를 검색해 포스트를 팔로잉하시면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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