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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모듈원자로, ‘탈원전’ 직격탄 원자력산업 살릴 묘수

핵추진 항모용 원자로 기술 확보 가능… 韓美 공동개발 제의해야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소형모듈원자로, ‘탈원전’ 직격탄 원자력산업 살릴 묘수

미국 원자력발전소 건설사 뉴스케일이 올해 착공할 소형모듈원자로(SMR) 구상도(왼쪽).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에 나선 ‘혁신형 SMR(i-SMR)’ 설계 개요도. [사진 제공 · 뉴스케일, 동아DB]

미국 원자력발전소 건설사 뉴스케일이 올해 착공할 소형모듈원자로(SMR) 구상도(왼쪽).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에 나선 ‘혁신형 SMR(i-SMR)’ 설계 개요도. [사진 제공 · 뉴스케일, 동아DB]

전기 소비량이 폭증해 생산량(발전량)을 넘어서면 같은 송·배전망(網) 안에 있는 전기가 모두 나가는 ‘블랙아웃(black out)’ 현상이 일어난다. 블랙아웃으로 멈춰선 발전기를 다시 가동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전기가 없으면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쓸 수 없음은 물론, 병원에선 수술이 멈추고 군은 레이더를 운용하지 못한다. 따라서 전기 소비량이 생산량에 가까워질 정도로 높아진 경우 특정 지역에 전기 공급을 끊어 블랙아웃을 피한다.

‘원전 제로’ 대만의 강제 정전

5월 17일 대만 전력당국은 블랙아웃 우려가 있다면서 66만 가구에 전력 공급을 차단하는 ‘강제 순환 정전’을 단행했다. 대만은 13일에도 가오슝 소재 변전소 사고로 400여만 가구에 전기 공급을 중단한 바 있다. 전기 소비가 폭증하면 과부하로 변전소에 사고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블랙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력 소비량이 널뛰자 선제적으로 강제 정전에 돌입한 것이다.

대만의 불안정한 전력 상황이 차이잉원 정권의 탈원전정책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대만은 지진이 잦아 탈원전 운동의 열기가 높았다. 차이 총통은 2016년 총통선거에서 “나는 사람이다. 나는 원전에 반대한다(我是人 我反核)”를 구호로 내걸고 ‘2025년까지 원전 제로’를 공약했다. 그는 취임 후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는 조항을 추가해 전기법을 개정하고 원전 가동을 중단했으나 2017년 여름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자 원전을 재가동했다. 그러면서도 ‘2025년 원전 제로’라는 목표는 유지했는데, 올해 다시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은 것이다.

대만의 현실을 한국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문재인 정권도 탈원전정책에 나선 지 오래다. 대만은 원전 3기를 운용한 데 비해, 한국은 24기를 가동해온 세계적 원전 강국이다. 그 때문인지 모든 원전을 멈추진 못했지만, 탈원전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강력하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원전 수익성을 조작해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한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 또한 문 대통령의 탈원전 기조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이런 가운데 5월 14일 문 대통령을 만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미국 조 바이든 정부가 탄소중립화를 위해 SMR(소형모듈원자로)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며 “한미가 공동으로 SMR를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해 관심이 쏠린다. SMR 건설은 문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주면서도 탈원전정책과 그로 인해 우려되는 블랙아웃을 피할 방안이 될 수 있다. 사장되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원전 기술을 유지할 수도 있다.



원전은 300MW(메가와트)를 기준 삼아 대소형으로 나뉜다. 원전은 크게 지을수록 경제성이 좋기에 대부분 대형 원전의 발전용량은 1000MW를 넘는다. 대형 원전은 원자로와 증기 발생기를 따로 만들지만, 소형은 일체형으로 제작한다. 대형 원전은 지반이 단단한 곳을 찾아 지형에 맞춰 지어야 한다(맞춤 생산). 반면 소형 원전은 같은 타입의 모델을 대량 제작해 필요한 곳에 설치(기성품 생산)할 수 있기에 소형모듈원자로, 즉 SMR로도 불린다.

다만 SMR는 발전 단가가 대형 원전보다 훨씬 높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발전만큼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게 송전(送電)이다. 먼 곳으로 전기를 보내려면 많은 송전탑을 세우고 긴 케이블도 필요하다. 송전 거리가 멀면 기하급수적으로 비용이 증가하며 전력 손실도 커진다. 송전 문제에 시달린 대표적 나라가 옛 소련이다. 영토가 광대해 대형 원전을 지어 여러 도시에 전기를 보내려니 송전 비용이 많이 들었다. 특히 소련 영토 내 중앙아시아 도시들의 주력 산업이 농업이라 막대한 전력이 필요했다. 농사를 지으려면 카스피해, 아랄해의 물을 민물로 바꾸는 ‘담수화(淡水化)’ 과정이 필수다. 담수화 시설은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기에 옛 소련은 SMR를 지어 중앙아시아 주요 도시의 밤을 밝히고 농업을 발전시켰다. 이렇게 하는 것이 대형 원전을 지어 여러 도시로 송전하는 것보다 쌌던 것이다.

i - SMR 성공, 한미관계가 관건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소련 해체 후 기술을 도입해 한국형 SMR ‘스마트’를 설계했으나 시장 창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고도로 인구가 밀집된 국가인 데다, 송전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 SMR는 경제성이 없었다. 넓은 국토에 드문드문 도시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시장 진출을 노렸지만 경제성이 없다며 대형 원전 도입으로 돌아섰다.

이러한 SMR를 최근 조 바이든 행정부가 주목하고 있다. 대형 원전만 운용한 미국이 SMR에 주목한 데는 그 나름 사정이 있다. 미국 전력회사는 민간기업이라 CEO(최고경영자)들은 빨리 수익을 내려 한다. 대형 원전을 지으려면 많은 비용과 긴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실적 내기에 급급한 CEO로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게다가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미국도 ‘탄소 제로’를 빨리 이뤄야 한다. 그렇기에 미국은 건설비용과 탄소 배출량이 적은 SMR에 주목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정책으로 숨통이 막힌 한국 원자력업계는 한국형 SMR 스마트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SMR를 제작하다 보면 핵추진 항모와 원잠 등에 탑재할 초소형 원자로 제작 기술도 익힐 수 있다. 이 때문에 국방부와 해군도 SMR 제작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한수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스마트를 능가하는 ‘혁신형 SMR(i-SMR)’ 개발을 검토하고 있다. 두산중공업도 미국 SMR 제작회사 뉴스케일파워와 손잡고 새로운 SMR 제작에 뛰어들려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국내에서 탈원전정책을 추진하면서 신기하게도 원전 수출은 지지했다. 그런 점에서 한미 i-SMR 공동개발은 좋은 방책이 될 수 있다. 한미관계가 좋아지면 한국 원자력업계는 숨통이 트일 것이다. 물론 그 반대라면 한국 원자력산업과 기술은 다시금 ‘버린 자식’이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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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1290호 (p22~23)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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