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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세상 계속돼야 하나요?

[책 읽기 만보]

  •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세상 계속돼야 하나요?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신민주 지음/ 디귿/ 184쪽/ 1만3000원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젊은 세대의 절망이 깊어지는 시기다. 이 책을 봤을 때 처음에는 아파트를 비롯한 각종 건축물이 알록달록 일러스트로 그려진 노란색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부제로 달린 ‘애매하게 가난한 밀레니얼 세대의 ‘돈’립생활 이야기’를 본 순간 바로 그 젊은 세대의 현실이 담겨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요새 전세 없는 것 아시죠? 역에서 10분 거리에 이만한 전세 없어요. 1억도 안 되는 가격이에요. 9000만 원.” 책은 저자가 독립을 결심한 후 혼자 살 곳을 알아보러 다닌 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전세 1억 원 이하 집을 찾고 있다는 말에 부동산공인중개사는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요새 전세가 많이 빠져서 그런 집은 없어요. 적어도 1억5000 정도는 봐야죠.” 골목 사이를 한참 들어가야 있는 집,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집, 치우지 못한 누군가의 짐들이 널려 있는 집…. 수많은 집 중 고심 끝에 고른 것은 화장실에 창문은 없어도 현관에는 폐쇄회로(CC)TV가 달린 곳이었다.

부동산공인중개사는 6평(약 20㎡)이라고 했지만 등기부등본을 떼어 보니 집은 공용 공간까지 합해 5평(약 16㎡)에 불과했다. 대충 세간을 우겨 넣고 나니 침대를 놓을 공간이 없어 이불을 깔고 자기로 했다.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밤늦게 퇴근한 누군가가 샤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날은 밤새도록 옆집 남자가 여자친구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모든 소음이 잠잠해지는 새벽, 집이 아닌 ‘방’에 살게 된 사람들은 비로소 모두 잠에 들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80여 년 전 ‘자기만의 방’을 썼던 버지니아 울프를 소환한다. 울프는 “매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에 있는 여성이 글을 쓸 수 있다”고 썼는데, 만약 그가 지금까지 살아 다닥다닥 붙은 한국 고시원과 원룸촌을 봤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라는 얘기다.



1994년생인 저자 신민주는 서울시 기본소득당 상임위원장을 거쳐 지금은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서 일하고 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월 30만 원씩 꼬박꼬박 받는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 것 같나요”라는 운명 같은 질문을 받은 후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고 고백한다. 기본소득으로 아메리카노를 사서 마시는 멋진 비혼 할머니를 꿈꾸는 그는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은 평범한 20대로 살다 지난해 서울 은평구 원룸에서 독립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가난이 낭만이 돼서도, 가난한 사람을 도와준 이들의 이야기가 미담으로 소비돼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또 더는 가난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세상, 복지 사각지대가 있는 세상이 돼서는 안 되며, 이를 해결할 방법은 조건과 심사 없이 모든 구성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한다. 책 말미에는 과연 기본소득이 무엇인가 궁금할 이들을 위한 내용이 자세히 담겨 있다.





주간동아 1289호 (p64~64)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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