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4

2021.01.22

김종인에 화난 안철수, 아직도 정치적으로 ‘순진하다’

[이종훈의 政說] 국민의힘, 안철수 입당 여지 두고 경선 ‘개문발차’

  •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입력2021-01-1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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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회동이 불발됐다. 오 전 시장이 빨리 보자고 했는데 안 대표가 지방 일정을 이유로 연기했다는 후문이 나돈다. 다시 약속을 잡기도 어려워 보인다. 안 대표는 왜 회동을 연기했을까? 화가 났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다. 

    안 대표는 1월 6일 오랜 구애와 기다림 끝에 김 위원장과 독대했다. 안 대표가 새해 인사만 드리고 싶다고 제안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본인의 지론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을 뛸 생각이 생기면 연락하라는 것이다. 선 입당 후 경선을 재차 강조한 셈이다. 안 대표는 듣기만 했다는데 반론해봤자 다툼만 커진다고 본 것 같다.

    준비 없이 김종인 만난 안철수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뉴스1]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뉴스1]

    안 대표는 고작 이러려고 김 위원장을 만나자고 했나. 단일화 논의가 한창일 때 힘들게 이뤄진 두 보수 정당 대표 간 ‘영수 회동’이었다. 과거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 간 회동만큼은 아니지만 버금갈 정도는 됐다. 하지만 회동 직후 역사적 합의는 나오지 않았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협상 파기에 대한 입장문이라도 나왔어야 하는데 이도 없었다. 회동마저 비공개로 이뤄져 차후에 알려졌다. 안 대표는 김 위원장이 선뜻 자신에게 선물을 내놓을 것이라고 믿었을까. 그랬다면 여전히 정치적으로 ‘순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안 대표는 비장의 카드를 준비해서라도 김 위원장의 마음을 움직였어야 했다. 

    김 위원장은 왜 그간 거부했던 안 대표와의 회동을 수용했나. 안 대표의 제안을 일단 들어보자는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 입당 후 경선 원칙을 이미 전했지만 합의점이 도출되면 수용할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안 대표가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것 같지 않다. 안 대표가 원샷 경선을 강력하게 촉구했고 격론이 오갔다는 보도 정도는 나올 줄 알았다. 더 나아가 입당을 전제로 한 준(準)합당 방식의 통합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는 보도가 ‘대서특필’ 될 줄 알았다. 정작 안 대표는 회동 직후 김 위원장에 화가 나서 오세훈 전 시장과의 회동을 연기했다. 김 위원장도 대안 없이 회동에 나온 안 대표의 태도에 화가 났을 것이다. 



    분명히 해둘 것은 ‘주장’이 아니고 ‘대안’이다. 모든 협상에는 상대방이 있다. ‘모 아니면 도’로 접근하면 답을 얻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은 안 대표가 매력적인 제안을 제시하면 기존 입장을 바꿀 정도의 유연성을 갖췄다. 노회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성과 없는 회동은 곧 안 대표의 준비 부족을 뜻한다. 안 대표는 전부터 뒷심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는 여전해 보인다.

    ‘박원순 모델’이 불가능한 이유

    ‘안 대표의 책사’로 불리는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가 최근 국민의당에서 특강을 했다. 박 대표는 여기서 ‘원샷 경선’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선을 두 단계 이상 나눠서 단일화가 성공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박 대표는 지난해 10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2011년 박원순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면 선거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무소속이었기 때문에 중도층 표도 끌어왔다”고 말한 바 있다. 2011년 박원순 모델로 가야 한다는 것인데 국민의힘에 입당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2011년의 박원순과 2021년의 안철수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역설적이게도 ‘2011년의 안철수’와 같은 도우미가 없다. 당시 무소속이었던 박원순은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지만 지지율이 미약했다. 2011년의 안철수 역시 무소속이었지만 지지율이 40%대를 넘나들었다. 단독으로 완주해도 당선될 정도였다. 2011년에는 안철수와 박원순 모두 참신한 정치 신인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안 대표는 소수정당 대표이고 시민사회를 대표하지도 않는다. 무소속으로 출마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때처럼 안철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지도 않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 지 10년이 지났다. 그 동안 강산과 인걸이 모두 변했다. 2011년의 박원순을 모델로 삼는 발상이 놀라운 이유다. ‘현실 정치인 안철수’는 이제 정치권의 문법을 따라야 한다. 이미 ‘새정치’라는 화두까지 버렸다. 결정적 순간에 정치권의 문법을 거부하면서 언제까지 정치실험만 반복할 수는 없다.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단일화는 거들떠보지 않고 소수정당으로 남아 끝까지 가는 길 말이다. 의아한 점도 있다. 안 대표는 먼저 공동 경선 같은 단일화를 제안했다. 안 대표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뇌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안 대표와의 회동 이후 더 확고해졌다. 회동 다음날인 1월 7일 “앞으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선을 그었다. 비대위 비공개 회의 자리에서도 당내 후보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은 나흘 후 “정당 통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며 “(3자 구도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상천외한 오세훈의 조건부 출마 선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월 17일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뉴스1]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1월 17일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뉴스1]

    오세훈 전 시장이 조건부 출마를 선언한 때도 김종인 위원장과 안철수 대표의 회동이 이뤄진 다음 날이다. 오 전 시장은 “국민의당이 국민의힘과 합당하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야권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도 “(안 대표의) 입당이나 합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출마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답변 시한을 1월 17일로 제시하며 단독 회동을 추진했지만 불발됐다. 안 대표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오 전 시장은 1월 17일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오 전 시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열흘간 국민의당 반응이나 안철수 대표 반응을 보면 사전 단일화는 전혀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이제 기다리는 시간은 끝났다"고 말했다. 

    의문은 남는다. 오 전 시장은 왜 조건부 출마 선언을 했을까. 안 대표가 제안을 받건 안 받건 손해 볼 것이 없다 여긴 탓일까. 아니면 이를 통해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여겼을까. 후자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오 전 시장의 노림수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신이 안 대표의 입당 또는 합당 결단을 촉구할 수 있는 동급의 거물급 정치인이라는 이미지 부각이다. 둘째, 안 대표가 입당 또는 합당을 거부해도 양자 회동으로 안 대표와 양강 구도를 형성할 사람은 본인밖에 없다는 이미지 구축이다. 셋째, 안 대표가 갑자기 입당하거나 합당이 이뤄지면 서울시장을 포기하고 대선주자로 나가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다. 어느 쪽이든 비상식적이다. 결국 정치인 안철수에 묻어가려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에 도전할 정도의 중량급 정치인이라면 철저히 자기 선택에 입각해 출마를 선언해야 한다. 불출마 선언 또한 마찬가지다. 타인의 선택을 전제로 본인의 출마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오 전 시장의 선언은 기상천외하다. 다분히 4차원적인 출마 선언이다. 오 전 시장은 2011년 무상급식 논란 때도 의외의 선택으로 세간을 놀라게 했다. 서울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강행해 서울시장직을 진보 진영에 내줬다. 이번 역시 이에 못지않다. 더욱이 안 대표와의 회동이 불발되면서 명분과 실리 모두 잃었다. 안 대표가 제안한 공동 경선, 원샷 경선의 가능성 역시 한층 떨어졌다. 

    안 대표의 입당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범야권의 서울시장 경선 구도가 빠르게 정리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1월 15일 경선 룰과 일정을 확정했다. 경선은 예비경선과 본경선으로 치르되, 예비경선은 여론조사 80%, 당원 20%로 본경선은 여론조사 100%로 하는 방안이다. 예비후보 등록은 1월 18일부터 21일까지다. 본경선 방식을 안철수 대표가 선호하는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열어놨다. 국민의힘은 연일 안 대표의 입당을 촉구하는 중이다. 개문발차다. 안 대표 역시 입당 절대불가 입장을 연일 피력 중이다. 안 대표는 1월 13일 “어떠한 정당 차원에서 생각하지 말고 더욱 더 크게 바라보고 어떻게 하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부터 공유하는 게 먼저다”라면서 “야권 대표성은 결국 국민들께서 정해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선을 그었다. 안 대표에게는 국민의힘 입당을 결단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절대불가 방침에도 불구하고 예비경선 후보 등록 마지막 날인 1월 21일 이전 김 위원장을 다시 만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이 자리에서 극적인 입당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남아 있다. 안 대표는 서울시장에 절대로 출마하지 않겠다던 결정을 뒤집은 전례가 있다. 안 대표가 극적인 정치적 결단을 내릴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최대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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