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3

2021.01.15

멈춰 선 아동학대 방지 시스템, ‘정인이’ 또 나온다

  •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명예교수

    ysh@snu.ac.kr

    입력2021-01-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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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입양아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 [동아DB]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입양아 정인이가 잠들어 있는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 [동아DB]

    새해벽두부터 우리 사회는 ‘정인이 사건’으로 공분하고 있다. 생후 16개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생명이 양부모의 폭력으로 무참히 숨진 사건을 보면서 분노를 넘어 무력감과 죄책감마저 느껴진다. 세계 경제 10위권을 넘나드는 한국 정부 시스템이 과연 아동학대 방지와 안전 보장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정인이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야 국회는 부랴부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시행규칙’을 통과시켰다. 수년 동안 국회에 방치됐던 10여개 입법안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는 점은 반갑다. 

    이번 시행규칙의 핵심은 ‘학대 신고 후 현장 출동, 초동조사, 신속한 아동 분리’다. 아동학대 신고자는 구두로도 경찰에 현장 출동을 요청할 수 있고, 실제 학대 정황이 드러나면 그 즉시 아동은 아동학대 의심자와 분리된다.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학대한 경우에는 지자체장 혹은 자치구장이 부모를 대상으로 ‘친권상실’을 청구할 수 있다. 또한 검찰은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에게 조사를 요청할 수 있고, 법원은 아동을 아동복지 관련 시설로 이송할 수 있다. 아동학대범죄의 신고 범위나 처벌이 강화됐다는 점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친권상실 청구는 전통적 가부장제를 유지해온 우리 사회에서 획기적 조치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라지만, 부모가 아동에게 신체적·심리적 고통을 가하는 경우에는 이 관계도 가차 없이 끊어내야 한다. 이는 민법 제924조에 이미 명시돼 있다. 친권상실 청구는 부모가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경우에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은 누구?

    문제는 이번에 통과된 시행규칙들이 여론의 비난을 잠재울 ‘초동조치’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동학대를 유발한 부모나 가족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아동학대는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학대받은 아동의 치유에 대한 부분도 제외돼 있다. 일반적인 아동복지 관련 시설에서는 학대아동의 신체나 심리 치료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시설들에 있는 원아는 대부분 가정의 어려움으로 맡겨진 일반 아동들이다. 이들을 돌보는 교사나 직원 역시 일반 아동들을 담당하도록 훈련된 사람이므로 학대 경험을 치료하는 전문가로 보기 어렵다. 

    결국 이번에 통과된 법 역시 아동학대를 해결할 근본적인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고 해도 무방하다. 학대받은 아동을 지자체장이 아동복지 관련 시설에 보내는 것에 그칠 뿐이다. 정작 학대받은 아이가 어떤 시설에 보내져야 하고, 어떻게 상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다 빠져 있다. 

    그뿐 아니라, 아동학대 관련 인적 자원의 실체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라는 단어가 시행규칙에 등장하긴 하지만, 실제로 이 명칭의 공무원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아마 지자체의 사회복지 담당자들을 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지금으로서는 이들 말고 해당 업무를 처리할 인력이 따로 없다. 하지만 이미 업무 과다를 호소하는 이들에게 아동학대 관련 업무까지 맡게 한다는 건 비효율적이다. 이들이 과연 제대로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동학대 정황이 의심되더라도 무혐의로 처리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성인 중심의 과업수행에 익숙한 공무원들이 학대받은 아동과 능수능란하게 소통할 수 있을지도 우려스럽다. 이들은 아동기 발달 특성을 잘 모를 뿐 아니라, 학대아동의 위축된 심리상태에도 익숙하지 않다. 따라서 아동이 겁에 질린 나머지 거짓으로 응답할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해 학대 진상을 밝혀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동학대는 최악의 사회악

    ‘정인이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정부의 아동학대 방지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GettyImages]

    ‘정인이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정부의 아동학대 방지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GettyImages]

    미흡한 법을 집행할 행정부는 어떠한가. 이들 역시 현실 인식이 부족하다. ‘정인이 사건’ 전에도 9세 남아가 계모의 학대로 여행용 가방 안에서 숨진 사건이 있었고, 10세 여아가 계부의 학대 끝에 편의점으로 도망쳐온 사건 등 연이어 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며칠 전에도 영하 15도 날씨에 3세 아동이 내복차림으로 길거리를 헤매는 모습이 포착되는 등 아동학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그때마다 정부는 아동학대 예방책을 세우겠다는 말뿐이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가장 선행돼야 하는 것은 정부와 정치인들의 인식 개선이다. 이들부터 아동학대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묻겠다. 먼저, 아동학대가 가해자의 말처럼 일회적 사건인가. 그렇지 않다. 아동학대는 일시적으로 분노를 참지 못해 한 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장기 사건이 대부분이다. 

    두 번째, 아동학대가 모르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가. 이 또한 그렇지 않다. 아동학대는 대부분 친부모나 양부모,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서 일어난다. 아동학대가 부모의 훈육이나 교육 차원에서 이뤄지는지에 대한 대답도 역시나 ‘No’이다. 훈육은 명분에 그칠 뿐이다. 학대는 실제로 분노조절이 안 되거나 비정상적 심리상태인 성인이 힘이 약한 아동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다. 

    마지막으로, 아동의 학대 경험이 훗날 어른이 됐을 때 자연스럽게 잊힌다고 생각하는지를 묻고 싶다. 안타깝게도 정답은 ‘천만의 말씀’이다. 학대받은 아동은 성장 후에도 학대로 인한 상처를 계속 간직할 수밖에 없다. 학대 경험의 후유증은 엄청나다. 학대는 신체기관 파괴나 발달 이상뿐 아니라 심리적 이상 발달을 남겨 장기적으로 사회 부적응을 경험하게 한다. 정부는 이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 아동학대는 아동의 신체 및 정신을 파괴하는 폭력현상이다. 

    반복적으로 학대받은 아동은 정상적인 성장 자체가 어렵다.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아동기에 학대받은 성인은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기능이 떨어지고, 정서 역할과 관련된 뇌섬엽의 크기도 작아 인지능력이나 정서 조절능력이 낮다고 전해진다. 

    신체폭력 못지않게 언어폭력도 아동의 심리발달에 심각한 상해를 안긴다. 언어폭력에 시달린 아동은 건강한 자기정체성을 형성하기 어렵다. 

    장기간 학대받은 아동은 성장한 후에도 자신을 신뢰하거나 존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열등감과 좌절을 경험하게 되고 사회적 관계 맺기에도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결국 학대는 어린 생명의 성장과 건강한 삶을 파괴하는 ‘최악’의 사회악이다. 

    어느 사회에든 정신병리자는 존재한다. 분노조절장애, 성중독이나 아동성애 등 심각한 병리 문제를 가지고 있는 성인들이 허술한 국가 시스템을 이용해 쉽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상태가 돼서는 안 된다.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해야만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다. 혁신적인 시스템 전환이 필요한 순간이다. 먼저 아동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치밀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출생신고는 아이가 태어난 병원에서 의사가 직접 하도록 하고, 신생아의 사고사 방지와 질병 예방을 포함한 학대방지 조치도 취해져야 한다. 

    또한 아이의 진학 여부를 포함해 혹시 아이가 가정 내 혹은 기관에서 학대받고 있는 건 아닌지를 철저히 체크해야 한다. 어린아이가 어엿한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국가는 부모 이상의 보호자다.


    입양 후 친권·양육보조금 함부로 줘선 안 돼

    지난해 12월 30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국민의힘 당내 청년당 청년의힘 공동대표인 김병욱(오른쪽), 황보승희 의원이 ‘16개월 정인이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지난해 12월 30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국민의힘 당내 청년당 청년의힘 공동대표인 김병욱(오른쪽), 황보승희 의원이 ‘16개월 정인이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입양 과정도 제대로 모니터링 해야 한다. 입양 후 입양아가 19세 성인이 될 때까지 일정 기간마다 전문가가 가정을 방문해 아이가 제대로 자라고 있는지 철저히 조사해야한다. 입양가정이 아이 성장에 적절한 환경인지 아닌지를 살펴보고, 행여 학대 의심 정황이 조금이라도 있다 싶으면 언제든 시스템을 작동시켜 아이를 안전하게 구출해야 한다. 양육보조금도 조사자의 이러한 보고가 선행됐을 때 지급돼야 한다. 

    입양아에 대한 친권 보장도 보수적으로 잡아야 한다. 입양 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충분히 입증됐을 때 친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입양과 동시에 법적으로 가족이 된다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택청약 당첨을 위해 입양했다 파양하거나, 원아 10여 명을 입양아로 입적시켜 국가지원금을 받은 뒤 공장에서 일하게 한 사례 등 입양아동을 재산 증식 수단으로 이용한 경우가 적잖다. 

    정부와 정치인들의 아동학대 인식은 정부의 하위 시스템 작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가의 하위 시스템이 상위 시스템을 닮아간다는 정치학 명제가 ‘정인이 사건’에서도 그대로 입증된 셈이다. 아동학대 신고를 세 번이나 받고도 무혐의 처리한 경찰서가 대표적 사례다. 검찰도 재수사 지시 없이 그 결과를 수용했다. 

    그 외에 정부 정책을 보조하는 시스템들도 허술하긴 마찬가지다. 건강했다 한 달 만에 서지도 못하는 아동을 보고도 발육 부진이나 영양실조가 관찰되지 않는다고 보고해 양부모와의 분리조치를 막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정신과 치료기록을 확인하고도 영아를 입양하도록 허가한 법원과 입양기관 등 하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허술한 아동학대방지 시스템을 그대로 둔다면 앞으로도 아동 희생은 재발될 것이다. 

    안전하고 건강한 미래사회를 준비하려면 보이지 않는 인적 자원 투자가 장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아동심리에 관한 전문가적 소견이 있으면서 학대아동을 직접 돌본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게 시급하다. 기존 아동 돌봄 종사자들에게는 전문 연수교육과 현장실습 등의 기회를 부여해 이들이 좀 더 식견 넓은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인적 자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예산이다. 코로나19 사태 같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특정 분야에 예산을 지출하는 건 납득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동학대 예산을 삭감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올해 아동학대 추가 신청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정부의 단기적 안목이 예산 편성에 반영된 탓이다. 국가예산의 우선순위에 학대아동 관련 사업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학대받은 아이들은 성장해서도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는 결국 사회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아동학대 무겁게 처벌해야

    아동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학대는 그 어떤 범죄보다 무겁게 다뤄야 한다. 그래야만 유사 범죄나 가해자의 범죄욕구를 견제할 수 있다. 폭력은 반복된다는 점을 고려해 발생 빈도를 고려하지 않고 죄질에 따라 엄벌에 처하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아동학대가 음주운전보다 가벼운 범죄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가벼운 처벌이 아동학대를 반복하게 만든다. 

    더 이상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아동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국민적 바람이다. 정부와 국회는 이러한 국민의 호소에 응답해야 한다. 정부는 국가의 제1의무인 국민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학대의 순환 및 세대 간 전이를 방지하는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북유럽 국가 의원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길에서 정책을 논의한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이념을 앞세워 분열과 파벌을 조장하고 포퓰리즘에 기대는 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이다. 

    정부가 본질에서 벗어나 국정을 운영할 때 얼마나 위험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잠시라도 정치인들이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삶과 생존권을 보호하는 국정운영을 펼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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