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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 진중권의 ‘페북’ 절필, “1당 180 논객 사라져 공백 크다”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촌철살인 진중권의 ‘페북’ 절필, “1당 180 논객 사라져 공백 크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거짓이 진실을 집어삼키는 것을 보고, 이러다가 사회가 위험해지겠다고 생각해 시작한 일이었다. 사실이 사실의 지위를 되찾는 데 무려 1년이 걸렸다. (중략) 나의 ‘특별한 비판’은 사실을 말하는 이들을 집단으로 이지메해온 대통령의 극성팬들, 민주당의 극렬 지지자들에게 돌리고 싶다. 이제라도 이들이 망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랄 뿐이다.”

날카롭고 정교한 논리로 반박 불가의 어록들을 써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2월 23일 페이스북 절필(絶筆)을 선언했다. 진 전 교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징역 4년을 선고받은 것과 관련해 “이것으로 내 싸움은 끝났다”며 “내 페이스북 포스팅을 마치겠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하반기 이른바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정의당에 탈당계를 내고 동양대에도 사표를 낸 진 전 교수는 자연인 신분으로 진보 좌파의 모순과 비열함을 핀셋으로 집어내듯 조목조목 비판하는 글을 써왔다. 진 전 교수는 페이스북 마지막 포스팅에서 “그동안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킨 수많은 사람이 생각난다”며 “빤히 알면서도 대중을 속여온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조국을 비호하기 위해 사실을 날조해 음해공작까지 벌인 열린민주당 정치인들, 그리고 이들의 정치적 사기 행각을 묵인하고 추인해온 대통령”이라고 직격했다. 

진 전 교수는 지난 1년 동안 좌우 진영을 넘나드는 논객으로 활약했다. 8월엔 진보 진영에 환멸을 느끼고 돌아선 다른 이들과 함께 일명 ‘조국 흑서’로 불리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펴냈고, 11월엔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12월엔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를 차례로 펴냈다. 특히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는 진보에 대한 비판을 넘어 보수 진영에 혁신과 재건을 위한 방향을 제시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새롭다. 이 책에서 진 전 교수는 “보수는 과거 반성 위에서 새 출발을 해야 한다. 반성에는 냉정한 자기 인식이 필요하다”며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보수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중립적 시각에서 전달하려 했다”고 적었다.

진보 논리로 진보를 공격하다

지난 1년 동안 진 전 교수는 정부 여당의 일방통행식 독주를 저지하고자 나 홀로 투쟁 선봉장 역할을 해왔다. 무기력한 야당을 대신해 밤잠을 설치며 페이스북에 촌철살인의 글을 남겼다. 진보 인사들의 불합리한 언행이 튀어나올 때마다 간결하지만 논리적인 문장으로 허점을 파고들었다.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그의 비판과 분석은 야당이 여당을 견제하는 무기가 됐다. 야당을 대신해 여당과 논리로 맞서 싸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 전 교수는 여야가 충돌하는 현장에 어김없이 등장했다. 정경심 교수의 ‘동양대 표창장 위조 사건’을 비롯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 내기, 밀어붙이기 식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우리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거여(巨與)의 독주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윤 총장의 징계를 결정할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에 대해 진 전 교수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서울에서 스탈린주의 재판이 열리는 것을 본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누구 말대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등 실존 인물들을 모티프로 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대사를 인용해 “청와대의 각하가 추미애에게,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써 화제를 모았다. 

그에 앞서 진 전 교수는 추 장관이 재기한 검찰의 ‘재판부 사찰’ 의혹에 대해서는 “윤석열을 잡으려고 사찰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며 “히틀러·스탈린·김일성 수법”이라고 맹공을 펼쳤다. 추 장관이 윤 총장의 직무집행을 정지시키고 징계 처리한 날에는 “친문 586세력의 전체주의적 성향이 (19)87년 이후 우리 사회가 애써 쌓아온 자유민주주의를 침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 전 교수의 필력은 날카롭기만 한 게 아니다. 때로는 파안대소급 위트를 날리기도 했다. 6월 진 교수와 청와대 참모 출신 여권 인사들의 자작시(時) 난타전은 결국 진 전 교수의 판정승으로 끝을 맺었다. 신동호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기형도 시인의 ‘빈 집’을 변주해 쓴 ‘빈 꽃밭’이라는 시에 대한 답시로 진 전 교수는 ‘빈 똥밭’이라는 제목의 시를 올렸다. 시에서 그는 여권 인사들과 그들의 행태를 ‘똥’과 ‘파리’에 비유했다. 또 신 비서관이 기형도 시인의 ‘빈 집’을 패러디한 것을 두고 “아이는 문득 기형도가 불쌍해졌다”고도 꼬집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12월 2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뉴시스.]

12월 23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1심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뉴시스.]

페이스북을 매개로 한 신속하면서도 날카로운 진 전 교수의 활약상을 당분간 볼 수 없게 된 데 대해 많은 이가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그가 페이스북 절필을 선언한 게시물에는 12월 24일 16시 현재 17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진 전 교수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계속 페북에 남아달라’는 부탁이다. 이 중 한 페친(페이스북 친구의 줄임말)은 ‘진중권 님이 앞장서서 방패막이는 물론 창칼을 쓰는 역할까지 맡아주셨기에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무엇이 옳은지 말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썼다. 또 다른 페친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조금만 더 계셔주세요’라며 페북 절필을 안타까워했다. 금태섭 전 의원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아 ‘좋아요’ 343개를 받았다. 

그가 페이스북 활동을 중단한 이유는 뭘까. 12월 9일 진 교수는 “이제는 굳이 내가 아니어도 정권을 비판하는 분이 많으니, 그 일은 다른 분들에게 맡겨놓고 나는 대안 프레임을 구축하는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며 새로운 일을 구상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진 전 교수를 이을 논객은 누가 될까. 일단 조국 흑서 공동 저자인 서민 단국대 의과대학 기생충학과 교수, 김경율 회계사, 권경애 변호사를 비롯해 김근식 경남대 교수(국민의힘 송파병 당협위원장) 등이 손꼽힌다. 그러나 이들이 진 전 교수의 공백을 메우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많다. 진 전 교수의 페친 권모 씨는 ‘해박한 논리와 논점, 속도와 필력, 좌우를 아우르는 포용력과 투시력 등 (진중권을) 대체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한탄했다. 

정 교수 사건뿐 아니라 윤 총장의 ‘정직 2개월’ 집행정지 심리도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진 전 교수의 컴백을 기대하는 이가 많다. 진 전 교수의 페친 이모 씨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가시면 어쩌십니까’라고 적었고, 또 다른 페친도 ‘며칠 있으면 윤 총장 송사도 판가름 날 텐데 교수님 페북이 없으면 답답할 것 같다’며 ‘하루 빨리 돌아와주기를 바란다’고 썼다. 

진 전 교수의 다음 행보는 어디일까. 그는 “진짜 진보의 상을 새롭게 구축하기 위해” 진보를 표방한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그는 12월 15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본진을 털어야 한다. 30% 넘는 핵심 지지층엔 이권이 달린 사람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게 진짜 보수야’ ‘21세기엔 이렇게 나가야 돼’라고 보여주려 한다”고 밝혔다. 앞서 12월 8일에는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민주당을 비판했고 보수당도 비판했다. 할 만큼 한 것인데 마지막으로 내가 기획하는 것은 ‘진보의 재구성’”이라며 “민주당은 진보라는 이름을 다 망가뜨리고 진보를 위선의 동의어로 만들어버렸다. ‘새로운 진보는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 측은 “섭외 등 사전에 이야기된 것은 없다”고 말했지만, 오마이뉴스가 그동안 일반 시민에게도 ‘시민기자’ 직함을 부여하고 공론의 장을 개방해온 만큼 진 전교수 역시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20년 온라인에서 활약한 그가 밝아올 새해에는 또 어떤 말과 글로 진보의 폐부를 찌를지 주목된다.





주간동아 1271호 (p38~40)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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