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3

..

일과 휴가의 병행 ‘워케이션’ 시대, 멀지 않았다

  • 김경훈 한국트렌드연구소 소장

    입력2020-10-31 08: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미국 캘리포니아 캠핑지 타호 마운틴 랩에서 여행객들이 노트북을 켜 놓고 업무를 보고 있다. [Tahoe mountain lab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 캠핑지 타호 마운틴 랩에서 여행객들이 노트북을 켜 놓고 업무를 보고 있다. [Tahoe mountain lab 제공]

    관광지로 유명한 지방에서 작은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김상훈 씨는 최근 자신의 호텔 안 커피숍 의자를 대거 교체했다. 기존 카페용 의자를 장시간 앉아서 노트북컴퓨터로 작업할 수 있도록 팔걸이가 있는 기능성 사무용 의자로 바꾼 것이다. 객실 인테리어도 디지털 노마드 분위기에 맞춰 리모델링 중이다. 왜냐하면 일주일 후 L전자 마케팅 부서 프로젝트팀 40명이 6개월간 묵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6개월 후 S텔레콤 디지털 워크 분석팀원들이 1년간 이 호텔을 숙박 겸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한 협상도 진행하고 있다. 김씨의 호텔은 ‘워케이션’(work+vacation의 합성어로, 여행지에서 일한다는 개념)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변신을 하게 된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 워케이션, 원격 노동자, 재택근무….’ 지난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화가 진행됐다. 그에 따라 일하는 방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는 가상으로 꾸며본 것이지만 앞으로 몇 년 안에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부서원 전체를 6개월, 1년간 원격근무하도록 멋진 여행지로 파견을 보내는 것이다. 디지털화가 가져온 생산성 향상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파문(물결) 효과를 일으켜 우리가 사는 공간들의 효용을 바꾸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일찌감치 워케이션 트렌드가 등장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기사(2015년 9월)는 캘리포니아 캠핑지인 타호 마운틴 랩의 경우 여행자의 25%가 스키나 하이킹을 즐기면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길이 35km에 달하는 타호(Tahoe) 호수는 1896m 높이에 자리해 눈 덮인 봉우리들과 맑은 물로 유명한 아름다운 곳이다. 2014년 설립된 타호 마운틴 랩은 지금도 공동 작업 공간(co-working space)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또한 일본항공(JSA)은 2017년 7월 1일부터 연간 최대 닷새간 해외 리조트에서 근무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디지털 근무 환경, 코로나로 급가속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기업이나 개인 모두 디지털 근무 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은 전체 노동자의 42%가 풀타임 재택근무 중이라고 하며, 한국의 경우 100대 기업에 속하는 회사를 조사한 결과 88%가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재택근무나 원격근무의 증가는 세계적 현상이다. 반면 이 새로운 근무 형태가 과연 효율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이슈와 집에서 일할 때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오라클과 연구자문회사 워크플레이스 인텔리전스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 재택근무자의 40%는 코로나19 사태 후에도 재택근무를 원했다고 한다(11개국 11000명 조사). 이 40%는 많은 걸까, 적은 걸까. 같은 조사에서 일본인도 38% 정도가 지속적인 재택근무를 원했다. 반면 미국은 67%, 인도는 78%, 중국은 79%가 재택근무를 선호했다. 기업 문화와 국가별 환경, 개인적 가치 등의 차이가 작용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재택근무 선호도가 낮은 축에 속하는 셈이다. 



    재택근무 장소가 반드시 사는 집일 필요는 없다. 앞의 조사에서 보듯, 특히 한국에선 원격근무이지만 재택근무는 아닌 새로운 틈새 장소들이 트렌드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소개한 타호 마운틴 랩은 이 틈새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몇몇 국가는 발 빠르게 이 틈새를 자국의 성장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해외발(發) 뉴스를 참조해보자.

    북대서양 휴양지인 버뮤다 해안.  [GettyImage]

    북대서양 휴양지인 버뮤다 해안. [GettyImage]

    미국 CNBC의 모니카 뷰캐넌 피트렐리(Monica Buchanan Pitrelli)의 최근 기사는 ‘여행자들이 원격으로 생활하고 일할 수 있는 나라들의 리스트가 증가하고 있다’가 제목이다(2020년9월 18일자). 이 기사에서 소개하는 곳은 카리브해의 영국 해외 영토 중 하나인 앵귈라(Anguilla), 역시 카리브해에 있는 바베이도스(Barbados), 북대서양의 버뮤다(Bermuda), 유럽의 조지아(Georgia), 에스토니아(Estonia), 그리고 크로아티아(Croatia) 등이다. 이 나라들은 적은 비용으로 1년 비자를 내주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으며, 보험을 적용해주는 등 적극적인 유치 전략을 세우고 있다. 그리고 공통점은 모두 멋진 휴양지라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소식을 전하는 ‘더 밀크’ 최신호의 제목은 ‘파라다이스에서 일하세요, 워케이션 시대’(2020년 9월 27일자)다. 이 기사에서 기자는 ‘노동자의 구분도, 일의 정의도 바뀌고 있고 일하는 장소도 점차 불명확해지고 있는 시대’라면서 ‘미래는 기업 문화가 강력한 기업이 더욱 번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워케이션을 받아들이는 기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나 도시들이 기업 또는 공장을 ‘통째로’ 유치하려는 전략을 세운 적이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도 이 전략은 유효할까. 코로나19 사태로 하는 수 없이 재택근무를 시행하지만 이 사태만 끝나면 얼른 사무실로 직원들을 불러들이려는 기업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데, 이처럼 사무실로 직원들을 되부르는 선택은 과연 현명할까. 

    어떤 물건이든 주문만 하면 생산해주는 전문 공장처럼 어떤 기업(혹은 개인)이든 와서 일할 수 있는 워케이션형 공간(국가, 도시, 숙소 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인도, 기업도 세계를 돌면서 노마드처럼 일하고 네트워크로 연결되며 근사한 저녁과 주말을 가까운 휴양지에서 보낸다. 6개월은 제주나 강원도 강릉에서 일하고 1년은 인도네시아 발리나 태국 치앙마이에서 일하는 것이다. 산업화가 도시집약적 공간을 요구했다면 디지털화는 그것과는 반대 흐름으로 도시를 벗어나 휴양과 일을 동시에 즐길 공간을 추구하도록 개인과 회사를 유인할 가능성이 크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