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6

2020.09.11

수제 맥주 시장에도 코로나 찬바람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40]

  • 명욱 주류 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입력2020-09-07 17: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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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수제 맥주 시장이 코로나 19로 고전하고 있다. [GETTYIMAGES]

    한국 수제 맥주 시장이 코로나 19로 고전하고 있다. [GETTYIMAGES]

    “이대로라면 국내 수제 맥주 산업은 벼랑 끝으로 떨어집니다. 힘들게 꽃피운 다양한 맥주 문화도 사라지고 외국 평론가로부터 또 맛없는 한국 맥주라는 소리를 듣게 될 거예요.” 

    대한민국 1호 여성 브루마스터인 한국주류안전협회 김정하 이사의 말이다. 김 이사는 2003년부터 수제 맥주 바네하임을 제조한 수제 맥주 1세대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수년 전까지 한국의 수제 맥주는 ‘맛없는 한국맥주’ 시장을 바꾸어왔다. 이태원과 경리단길을 중심으로 판매된 수제 맥주는 획일화된 기존 한국 맥주 맛을 깨트리며 밀레니얼 세대들의 아이콘이 됐다.

    코로나 19 직격탄 맞은 수제 맥주

    이렇게 수제 맥주가 꽃 피우게 된 건 2014년부터 유통 범위가 넓어지면서부터다. 기존에는 식당 안에서만 소비할 수 있었는데, 규제 완화로 판매 범위가 전국 편의점 등으로 확대됐다. 그에 따라 구매자도 크게 늘어났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등록된 수제 맥주 제조사는 150여 곳이 넘고, 제조되는 맥주는 1000종류 이상으로 추정될 만큼 기존에 없던 다양한 맥주가 출시된 가운데 크래프트 맥주도 승승장구하는 듯했다. 한국의 주류 트렌드를 이끌던 수제 맥주가 최근 들어 왜 이렇게 어렵게 됐을까.

    김 이사는 현재 한국의 수제 맥주 시장이 어려운 이유는 판매처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제 맥주의 성지라고 불리는 이태원, 경리단길 등의 상권이 코로나 19로 인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 19 감염자가 대규모로 나오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실시하는 지금은 거래처가 거래를 끊는 게 아니라 아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코로나 19로 인한 주류시장의 가장 큰 수혜자는 동네 편의점이다. 요식업 매장에서 술을 마시는 일이 줄다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편의점에서 술을 사서 집에서 홈술, 혼술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편의점의 주류 매출을 살펴보면 맥주와 소주 판매량도 증가했지만 와인, 위스키 등의 성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GS25에 따르면 8월 28일부터 주말인 30일까지 GS25의 소주와 맥주 매출은 전주 같은 요일 대비 각각 14.1%, 6.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와인 매출은 8.3%, 안주류 매출은 11.5% 늘었다.

    특히 편의점에서 일본 맥주가 빠지면서 수제 맥주들이 많이 입점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수제 맥주가 다시 부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 이사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편의점에 납품한 수제 맥주는 99%가 캔 맥주 형태다. 수제 맥주를 캔 형태로 만들려면 시설 규모를 갖춰야 하는데 대규모 자본 투자가 이뤄진 곳에서만 가능하다. 현재 150여 곳이 넘는 수제 맥주 양조장 중에 제대로 캔 시설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체는 불과 4,5곳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머지 수제 맥주 업체들은 편의점 진출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태고, 이 때문에 파산 직전인 양조장도 많다. 사단법인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전년대비 매출이 50% 이상 떨어진 곳은 물론, 90% 빠진 곳도 허다하다. 산업 자체가 아사 상태에 빠졌다는 것이다.

    홈술, 혼술 인기에도 고전

    수제 맥주 양조장이 아사 상태를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수제 맥주도 성인인증을 통한 인터넷 판매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업체들이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수제 맥주는 인터넷 판매가 허용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술을 팔려면 전통주 또는 지역 특산주로 분류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맥주는 이 영역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 이사는 “한국의 과실로 만든 와인, 브랜디(과실 증류주) 등도 지역 특산주 면허를 받아 인터넷으로 판매를 하고 있는데 유독 맥주만 빠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바네하임에서 제조하는 익산의 쌀을 넣은 도담도담 맥주.

    바네하임에서 제조하는 익산의 쌀을 넣은 도담도담 맥주.

    수제 맥주 양조장은 국산 원료로 맥주를 만들고 싶어 한다. 문제는 맥주의 최대 원료인 맥아다. 국산과 수입 맥아의 가격차이는 아직 크다. 국산 맥아가 수입 맥아보다 2~3배 정도 가격이 높다. 일반적으로 수입 맥아는 1kg당 1000원 내외지만 국산 맥아는 2300원 가량이다. 국내 맥아가 더 비싼 이유는 미국이나 호주처럼 대규모 농업 플랜트가 아닌, 농부가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 맥주 양조장 입장에서는 국산 맥아를 쓸 경우 원가 부담이 가중된다. 김 이사는 “만약 인터넷으로 수제 맥주를 판매하게 허용한다면, 2배가 넘는 가격차에도 불구하고 국산 맥아를 사용하려는 수제 맥주 양조장이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맥아로 맥주를 만든다면 그 가치를 소비자들이 인정한다는 것이다. 

    현재 맥주 제조에 있어서는 대기업은 물론 수제 맥주 양조장도 99% 수입산 맥아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보리 산업이 가격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맥주용 맥아 제조를 포기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맥주는 대부분 국산 원료를 활용해 만들었지만 시장이 개방된 지금은 수입산으로 대체된 상황이다. 독자적인 국산 맥아 개발을 다시 시작한 시기는 2~3년 전이다.

    수제 맥주의 미래

    국산 맥아를 연구하고 있는 군산 농업기술센터 먹거리 연구소 이선우 주무관은 “국산 맥아로 맥주를 만들어도 수입 맥아로 만든 맥주와 비교했을 때 그 맛과 질에 전혀 손색이 없다”고 말한다. 수제 맥주 양조장들이 국산 맥아를 사용함으로써 국산 맥아를 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소비자가 국산 맥아로 만든 맥주를 쉽게 찾고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 이제 막 꽃 피우기 시작한 수제 맥주를 코로나 사태 때문에 버린다면 ‘맛없는 한국 맥주’ 시대가 다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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