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1

2020.08.07

곡물, 유제품 멀리하는 구석기 다이어트

“농업혁명이 인류 건강 망쳐, 육류와 채소 위주의 다이어트 시도”

  • 김수빈 유튜브 크리에이터·자유기고가

    mail@subinkim.com

    입력2020-08-07 09: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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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주목받고 있는 구석기 다이어트. [GETTYIMAGES]

    최근 주목받고 있는 구석기 다이어트. [GETTYIMAGES]

    인류가 가장 건강한 시대는 언제였을까. 위생과 의료기술 발달로 기대수명이 현저히 늘어난 지금이 아닐까. 현재부터 농경이 시작된 1만 년 전까지를 돌아보면 그 말이 맞는 듯하다. 그런데 농경시대 이전의 수렵채집시대까지 범위를 넓혀보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외부의 위협과 발달하지 못한 의술로 영아 사망률은 높았지만 온전히 성인이 된 이후 기대수명은 현대인과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조기 사망을 제외하기 위해 사용하는 척도가 최빈 사망연령(사망자 중 가장 빈도가 높은 연령)인데, 2007년 연구에 따르면 수렵채집인의 최빈 사망연령은 72세였다. 참고로 한국인의 1990년 최빈사망 연령은 73세다. 

    사망 원인을 보면 건강의 질도 대략 알 수 있는데, 수렵채집인의 사인은 70%가 감염병이었고 20%가량이 사고나 폭력으로 인한 것이었다. 현대 선진국 국민처럼 만성질환이나 심혈관질환, 암으로 사망하는 경우는 매우 적어 심지어 60세 이상 사망 원인에서도 10% 미만이었다. 

    수렵채집인에게는 비만도 극히 드물었다. 수렵채집인의 건강을 연구한 2018년 연구에서 현존하는 대표적인 수렵채집인인 탄자니아의 하드자 부족 성인의 체질량지수(BMI)를 측정한 결과 192명 중 과체중은 2명, 비만은 1명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인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만 년 전 시작된 ‘농업혁명’ 외에는 다른 요인을 찾기 어렵다. 농업혁명 이후 농경으로 얻을 수 있는 식량은 늘었지만 노동시간도 증가했고 섭취하는 영양의 질은 떨어졌다. 실제로 인류 역사를 통사적으로 살펴본 학자들은 이러한 이유로 농경의 도입을 ‘인류 역사상 최악의 실수’(재러드 다이아몬드), ‘역사상 최대의 사기’(유발 하라리)라고 이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농업 때문에 인간 건강이 나빠졌다는 게 가능한 설명일까. 충분히 가능하다. 섭취하는 영양의 구성이 수렵채집시대와 현저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수렵채집시대에는 사냥으로 얻은 육류와 채집한 과일, 채소가 대부분이라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했던 반면, 농경 이후에는 곡물 위주의 고탄수화물 식단이 주가 됐다.

    유전자에 각인된 라이프스타일

    문제는 인류가 지금까지 수렵채집 식생활을 기준으로 진화해왔다는 사실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 교수는 현생 인류의 역사를 24시간으로 놓고 보면 인류가 농업을 채택한 시간은 밤 11시 54분이라고 설명한다. 23시간 54분을 수렵채집을 하면서 살았다는 것이다. 

    진화의학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구석기 다이어트’라는 이름을 처음 사용한 로렌 코데인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보건운동과학부 명예교수는 인간 유전자가 지난 4만 년 동안 0.02% 미만으로 변한 점을 지적한다. 여전히 우리 몸은 수렵채집시대에 맞게 설계돼 있다는 것이다. 

    고혈압이나 비만, 당뇨 같은 질환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우리 DNA에 각인된 라이프스타일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는 견해는 그 역사가 1939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깊다. 

    그렇다면 처방은 간단하다. 다시 수렵채집시대의 라이프스타일로 돌아가면 된다. 여기에는 식습관뿐 아니라 운동방법도 포함된다. 그렇다고 채집을 위해 도시 가로수길을 헤매거나, 멧돼지를 잡겠다며 죽창을 들고 산속을 뛰어다닐 수는 없는 노릇. 현대인의 품위는 유지하되 최대한 농경시대 이전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이 구석기 다이어트(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의 요체다. 

    구석기 다이어트의 효과는 어떨까. 가장 먼저 관심이 가는 부분은 체중 감량이지만, 그 밖에도 많은 건강상 이점이 있다. 구석기 다이어트를 옹호하는 이들은 거의 모든 건강 지표가 향상된다고 말한다. 즉 혈당 수치와 호르몬 분비가 안정되고 만성 염증이 완화돼 심혈관질환이나 당뇨, 관절염 발병 소지가 줄어든다. 장 건강과 피부 건강이 개선된다. 통상적인 서구식 식생활을 할 때보다 활력이 넘친다. 면역력과 수면 질도 향상된다.

    곡물과 유제품은 금물

    곡류와 유제품을 멀리하고 육류와 채소를 먹는다. [GETTYIMAGES]

    곡류와 유제품을 멀리하고 육류와 채소를 먹는다. [GETTYIMAGES]

    구석기 다이어트는 일반적인 다이어트법과 달리 하루 섭취 칼로리를 철저히 계산하지 않는다. 그 대신 먹으면 안 되는 식품이 분명하다. 우선 밀과 쌀 등 곡류를 먹으면 안 되는데, 곡류에는 글루텐처럼 염증 반응을 일으키기 쉬운 단백질은 물론, 파이테이트, 렉틴처럼 다른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하는 성분이 다른 식품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완두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종류의 콩도 먹지 말아야 하는 식품에 포함된다. 곡류와 마찬가지로 다른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하는 성분이 많고 갑상샘 기능 저하의 위험을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콩류에 들어 있는 피토에스트로겐은 인체에서 다른 호르몬을 교란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두부나 간장, 두유도 마찬가지다. 

    우유와 치즈, 버터,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도 먹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다른 종의 젖을 먹는 유일한 종인 데다, 젖을 뗀 후에도 다른 종의 젖을 계속 섭취한다. 문제는 상당수의 사람이 몸에서 우유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데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다이어트 전문가의 경험에 따르면 자신의 클리닉을 찾은 사람의 80%가 유제품을 소화시킬 수 없었다고 한다. 

    당류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탄수화물은 체내에서 흡수될 때 본질적으로 당분과 같기 때문이다. 과일이 특히 문제가 되는데, 과일에 들어 있는 과당도 당분이지만 생과일 속 당분은 다른 식품에 들어 있는 당분에 비해 농도가 낮아 너무 많은 양을 먹지만 않으면 대체로 허용된다. 다만 건과일은 수분이 마르면서 당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금물이다. 

    올리브유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식물성 기름도 기피 대상이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지방이 아닌 데다, 변질되기도 쉬워 몸 안에서 염증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옥수수유나 콩기름은 물론이고 해바라기씨유나 카놀라유도 안 된다. 

    가장 반갑지 않은 소식이겠지만, 술도 기피 대상이다. 그런데 술에도 차등이 있다. 곡류를 발효시켜 만든 맥주보다 와인이나 고도로 정제된 보드카, 테킬라, 럼 같은 술이 그나마 낫다. 

    구석기 다이어트에서 섭취를 권하는 식품은 주로 육류와 다양한 채소, 과일이다. 적색육을 포함해 가금류, 생선은 물론이고 소시지나 베이컨도 인공첨가물이 거의 들어 있지 않다면 추천한다. 감자처럼 탄수화물 비중이 너무 높은 것을 제외하고는 채소도 대부분 권한다. 과일의 당분도 엄연히 당분이기에 다이어트 초반에는 과일을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권장하는 편이다. 

    건강한 지방 섭취를 위해서는 아보카도와 코코넛, 그리고 아몬드와 캐슈너트 등 견과류가 좋다. 거의 모든 유제품이 금물이지만, 기(ghee·인도의 주요 식용유) 같은 정제된 버터는 괜찮다. 우유 단백질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저탄고지’ 다이어트와 다른 점

    최대한 농경시대 이전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이 구석기 다이어트다. [GETTYIMAGES]

    최대한 농경시대 이전의 라이프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이 구석기 다이어트다. [GETTYIMAGES]

    곡류로 섭취하는 탄수화물을 제한하고 단백질과 지방 섭취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근래 유행한 ‘저탄고지’(키토제닉 다이어트) 다이어트와의 연관성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두 다이어트의 접근법에 큰 차이가 있다. 

    탄수화물 섭취를 일반 서구식 다이어트에 비해 크게 억제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구석기 다이어트는 식단에서 탄수화물의 비중이 20%에서 많게는 40%까지 되기도 한다. 탄수화물 자체보다 곡류 섭취를 제한하기 때문에 곡류가 아닌 다른 식품을 통한 탄수화물 섭취는 용인되는 편이다. 

    반면 키토제닉 다이어트는 탄수화물 자체의 섭취를 극도로 억제한다. 제대로 된 키토제닉 다이어트 식단은 탄수화물 섭취량을 하루 50g 미만으로 제한한다. 이는 보통 하루 섭취 에너지의 10% 미만이다. 또한 키토제닉 다이어트는 지방 섭취를 강조해 하루 섭취 에너지의 60~70%를 지방이 차지하지만, 구석기 다이어트에서 지방의 비중은 커야 50%가량이다. 

    치즈를 비롯한 유제품 섭취에서도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 많은 키토제닉 다이어트 식단이 치즈와 버터를 이용한 레시피를 추천하는 반면, 구석기 다이어트는 ‘기’를 제외한 유제품의 섭취를 불허한다. 

    2002년 저서 ‘구석기 다이어트’로 오늘날 구석기 다이어트의 토대를 정립한 로렌 코데인 교수는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체내 산성도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방과 단백질 섭취를 강조하는 키토제닉 다이어트의 특성상 육류와 유제품을 많이 먹게 되는데, 이들 식품은 대부분 체내를 산성화시킨다. 신장은 이를 중화하고자 뼈에서 칼슘을 꺼내 쓰게 되고, 이후 골다공증 같은 질환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다이어트 방법이 유행에 따라 명멸한다. 구석기 다이어트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상당히 탄탄한 데다, 최근에는 구석기 다이어트에 간헐적 단식을 결합한 사골육수 다이어트 같은 아종(亞種)이 화제가 되기도 해 앞으로도 관련 다이어트는 꾸준히 사랑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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