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7

2020.07.10

임대차 3법 시행 시나리오, “월세 전환, 전세 품귀에 세입자도 고통”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0-07-06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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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입자는 복비와 이사 걱정 줄지만 월세 전환 많아져 집 구하기 전쟁 겪을 가능성

    • 집값 오르지 않으면 ‘소유’보다 ‘전세’가 이득, 2억 원 들고 강남 10년 전세도 가능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중개사사무소에 전월세 전단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뉴스1]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중개사사무소에 전월세 전단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뉴스1]

    6월까지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관련 개정안은 10건을 넘었다. 의원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임대차 3법’에 관한 것이다. 임대차 3법은 집주인의 전월세 신고를 의무화하는 ‘전월세신고제’, 임대료 증액 한도를 5%로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 계약기간을 기존 2년에서 2년 더 연장할 수 있게 한 ‘계약갱신청구권’을 이른다. 

    이들 개정안은 모두 임대인보다 임차인에게 훨씬 유리한 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임차인에게 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운 특별한 귀책사유가 없으면 계약을 계속 갱신할 수 있게 한 이른바 ‘전월세 무한연장법’은 2년마다 이사 걱정을 해야 하는 임차인의 주거 환경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과연 그럴까. 

    임대차 3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벌어질 일을 세입자 관점에서 가상으로 써봤다. 6월 24일 ‘주간동아’가 보도한 ‘임대차 3법 시행 시나리오-임대인 편’의 후속이다. 가상인물은 현금자산 2억 원을 보유한 회사원 임차국 씨와 프리랜서 차도녀 씨다. 두 사람의 서울 강남 입성기.

    10년간 전세 연장해 중개수수료 2000만 원 절약

    40대 초반의 중견기업 과장 임차국 씨는 맞벌이를 하는 아내, 딸과 함께 2020년 7월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에서 강남구 청담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보증금 6억 원을 주고 28평형짜리 낡은 전세 아파트로 들어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 하나가 고학년이 되기 전 학군 좋은 강남으로 거주지를 옮겨야 한다”는 아내의 성화 때문만은 아니다. 직장이 강남구에 있는 임씨는 출퇴근시간을 줄여 가족과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고 싶었다. 

    임씨의 자산은 12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통장에 모은 돈과 월세 보증금을 합쳐 2억 원이 전부였기에 부족한 4억 원을 전세자금대출로 충당했다. 임씨는 연봉 5000만 원에 신용도가 1등급이라 전세자금대출로 최대 5억 원까지 빌릴 수 있었다. 해당 은행의 대출계 직원은 임씨에게 “세금이나 신용카드 사용료를 연체한 적이 없고 금융기관에 부채가 전혀 없어 신용 상태가 1등급이 나온 것”이라며 “신용등급 4등급 이상, 연봉도 4000만 원 이상이 돼야 보증금의 80%까지 최대 5억 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시중은행에서도 “연봉이 적거나 신용등급이 좋지 않으면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수 없다. 신용 5~6등급은 대출 가능 금액이 1억~2원 선이고, 7등급 이하는 제1금융권 대출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터였다.



    신용등급표.

    신용등급표.

    임씨가 받은 전세자금대출 이자는 연 2.69%. 매달 약 90만 원의 이자를 내야 했다. 적잖은 이자 부담에도 임씨 가족은 이곳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2022년 7월 2년 만기가 됐을 때 계약 기간을 2년 연장했다. 예전 같으면 만기를 앞두고 가진 돈에 맞춰 이사할 집을 구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쳤겠지만 2021년부터 임대차 3법이 시행돼 거주 기간 2년 연장을 집주인에게 요구할 수 있었다. 집주인 역시 임씨 가족이 집을 훼손하거나 계약 조건을 위배한 바 없어 임씨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집주인이 재계약 조건으로 전세보증금을 턱없이 높게 올렸더라면 이곳이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계속 살기가 힘들었을 테지만, 이 역시 임대차 3법에 따라 보증금 6억 원의 5%인 3000만 원 증액에 그쳤다. 임씨는 3000만 원의 80%인 2400만 원을 다시 전세자금대출로 융통하고 그간 모은 현금 600만 원을 보태 늘어난 보증금을 마련했다. 

    이런 식으로 임씨는 딸 하나가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10년간 이 집에서 살았다. 보증금은 2년마다 5%씩 늘어 2024년 6억6150만 원, 2026년 6억9450만 원, 2028년 7억2920만 원이 됐다. 4회의 계약 연장으로 늘어난 보증금은 1억2920만 원이다. 이 가운데 1억 원은 전세자금대출로 부담하고 나머지 2920만 원만 임씨가 직접 마련했다. 10년간 해마다 292만 원을 모아 늘어난 보증금을 부담한 셈이다. 또한 2년마다 이사 가지 않고 계약을 연장한 덕분에 4회분의 부동산중개수수료(504만 원+529만 원+557만 원+583만 원) 2173만 원을 아낄 수 있었다.

    부동산 중개보수 요율표.(서울특별시 기준)

    부동산 중개보수 요율표.(서울특별시 기준)

    2030년 7월 계약 만료와 더불어 그동안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으로 지불한 총액 7억2920만 원도 몽땅 돌려받았다. 이후 5억 원의 대출금을 갚고도 초기에 지불한 보증금 2억 원에 2920만 원을 더 손에 쥐게 됐다. 임씨가 대출원금을 1원도 갚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10년간 은행에 지불한 이자는 총 대출금 5억 원, 연이율 2.69%를 기준으로 계산할 경우 1억3450만 원에 달한다. 처음부터 5억 원을 대출받아 서울 변두리에 내 집을 마련했더라도 이 정도 이자가 든다. 주택 소유에 따른 취득세와 등록세, 매년 2번씩 내는 재산세, 집수리 비용도 감당해야 한다. 집값이 그 이상으로 오르지 않으면 전세로 사는 것이 이득이다.

    신용등급 낮아 월세 면하기 힘든 세입자

    반면 임씨처럼 2020년 2억 원의 현금을 밑천으로 강남에서 전셋집을 알아보던 프리랜서 차도녀 씨는 절반의 목적 달성에 머물렀다.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전세를 월세로 돌린 집주인이 크게 늘어나 전세 구하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게다가 차씨는 임씨처럼 연간 5000만 원을 벌지만 수입이 매달 일정치 않고 신용도가 5등급이라 전세자금대출을 2억 원 이상 받을 수 없었다. 

    별수 없이 차씨는 2020년 7월 임씨 가족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월세로 입주했다. 28평형으로 보증금 2억 원에 월세 170만 원이었다. 집주인은 “요즘 월세가 많아져 경쟁력을 높이려고 집 안을 ‘올 수리’하고 월세도 다른 집보다 10만 원 낮췄다”고 생색을 냈다. 

    2022년 7월까지 2년간 차씨가 집주인에게 지불한 월세는 4080만 원. 월평균 수입이 400만 원 조금 넘는 차씨로서는 월세가 큰 부담이었지만 업무에 필요한 미팅이나 작업이 주로 강남에서 있어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고 싶지 않았다. 차씨는 임씨처럼 집주인에게 계약 연장을 거듭 요구해 10년간 이 집에서 살았다.
     
    집주인은 임대차 3법에 준해 2년마다 월세를 5% 증액하면서 1만 원 아래 단위는 절사했다. 이에 따라 월세는 2020년 170만 원에서 2022년 178만 원, 2024년 186만 원, 2026년 195만 원, 2028년 204만 원으로 늘었다. 10년간 차씨가 집주인에게 지불한 월세는 2억2362만 원(4080만 원+4272만 원+4464만 원+4680만 원+4896만 원)이다. 10년간 전세자금대출 이자를 1억3450만 원 지불한 임씨 가족보다 8912만 원을 더 내고 산 셈이다. 2030년 만기 때 집주인으로부터 돌려받은 보증금도 임씨가 차씨보다 2920만 원이 더 많았다. 그 대신 임대차 3법에 따라 4회에 걸쳐 계약을 연장해 부동산중개수수료 624만 원(151만 원+154만 원+158만+161만 원)을 절약했다. 집을 구하러 다니는 불편도 줄었다.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 단지 전경. [뉴시스]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 단지 전경. [뉴시스]

    그럼에도 차씨는 “임대차 3법이 시행되면서 강남에 있는 주택 소유는 물론, 전세 살기의 꿈조차 이루기 힘들어졌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세 품귀 현상이 점점 심화하는 통에 강남의 한 부동산중개사사무소에서는 전세 희망자에게 대기번호를 부여해 인공지능 자동 추점으로 세입자를 가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차씨처럼 월세가 아니면 살 집을 구하기 힘든 처지인 친구는 오늘도 부동산중개사사무소를 순례하고 와 차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도녀야, 우리는 언제 전세로 살아보냐. 이러다 한국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전세 제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거 아니냐.’

    "'임대차 3법 시행 시나리오, 임대인편'은 6월24일자 주간동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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