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3

2020.06.12

우주정거장에서 영화 찍을 날 성큼 다가와 [궤도 밖의 과학 23]

스페이스X, 민간 최초 유인우주선 발사 성공으로 우주 비행의 역사 다시 쓰다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0-06-11 08: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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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우주정거장 ISS. [NASA]

    국제우주정거장 ISS. [NASA]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 명인 톰 크루즈가 슈퍼히어로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 역을 맡을 뻔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외의 다른 아이언맨이라니 상상조차 되지 않지만, 영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별의별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어온 톰 크루즈다 보니 그 배역 또한 어떻게든 소화해냈을 것 같기도 하다. 

    아이언맨은 1963년 출판사인 마블 코믹스를 통해 만화책으로 처음 세상에 등장했지만, 이를 영화화한 작품은 2008년에 개봉됐다. 당시 세계적인 기업가이자 천재 공학자인 주인공을 연기하기 위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참고한 인물은 바로 전기자동차로 유명한 테슬라의 창립자 일론 머스크였다. 인연이 닿아 ‘아이언맨’ 2편에 직접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스페이스X가 최근 유인 우주선 팰컨9을 발사하는 모습. [AP=뉴시스]

    스페이스X가 최근 유인 우주선 팰컨9을 발사하는 모습. [AP=뉴시스]

    재미있는 건 아이언맨을 연기할 뻔했던 유명 배우와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 불리는 유명 기업인이 함께 영화를 찍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5월 6일 미항공우주국의 짐 브리덴스타인 국장은 톰 크루즈가 400km 상공에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밝혔다. 아직 일론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참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최근 민간 최초로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하며 청신호가 커졌다.

    발사부터 도킹까지 순탄한 진행

    미국 남동부의 플로리다주 케이프 커내버럴 근처에 있는 캐네디 우주센터의 39A 발사대는 1969년 인류가 처음으로 달을 밟기 위해 발사한 아폴로 11호가 사용했었다. 그리고 5월 30일 오후 3시 22분(한국시각 새벽 4시 22분) 같은 발사대에서 나사(NASA)의 새턴 5호가 아닌 스페이스X가 개발한 우주 발사체 팰컨9이 크루 드래곤이라는 7인승 유인우주선을 탑재하고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5월 28일 발사 17분 전 현지 기상악화로 발사를 연기한 이후 재도전이다 보니 걱정이 앞섰던 필자로서도 감회가 남달랐다. 

    우주선에는 우로버트 벤킨과 더글러스 헐리, 두 우주비행사가 넉넉하게 탑승했고, 발사 후 1단 로켓은 아름답게 분리되어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1단 로켓을 온전히 회수하는 건 우주 산업에서 새로운 이정표에 해당하는 대단한 사건이다. 바로 실질적인 재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주로 보내는 모든 로켓은 다단식 로켓(Multistage rocket)을 사용한다. 로켓을 발사할 때 초반에는 강력한 힘을 보유한 엔진이 필요하지만, 중반 이후에는 힘이 약해도 효율이 좋은 엔진이 필요하므로, 적절한 시점에 무겁고 불필요한 엔진을 버리고 새로운 엔진으로 바꿔가며 최적의 운행을 하는 것이다.



    크루 드래곤이 국제우주정거장 도킹에 성공했다. [AP=뉴시스]

    크루 드래곤이 국제우주정거장 도킹에 성공했다. [AP=뉴시스]

    하지만 모든 로켓공학자의 최종 목표는 단식(Single stage to orbit) 로켓이다. 분리할 필요가 없기에 구조가 간단하며 성공 확률이 높고 안전하다. 나아가 우주선이 통째로 지구로 귀환하면 영화나 만화에서 보던 것처럼 연료만 채워서 그대로 이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꿈 같은 이야기지만, 1단 로켓의 회수는 다단식에서 단식 로켓으로 향하는 중간과정으로 볼 수 있다. 스페이스X에서는 로켓을 회수하는 기술을 이미 2010년부터 시도했고, 2015년에는 세계 최초로 회수된 로켓을 수직으로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마치 공중에 집어 던진 연필이 바닥에 똑바로 서듯이 말이다. 이 기술이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진다면 발사비용을 지금보다 10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으리라 추정한다. 

    이번 우주선은 2단계 엔진 점화, 그리고 최종 목표였던 우주정거장 도킹을 위한 안정궤도 진입까지 차분히 나아갔다. 여기까지 문제없이 잘 도달했다면 우주선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미국 우주비행사 전통이다. 이에 따라 노력이라는 뜻의 ‘인데버’호가 됐다. 인데버라는 이름을 단 우주선은 아폴로 15호의 사령선과 우주왕복선에 이어 세 번째다. 

    이제 도킹만이 남아있다. 도킹이란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이 우주 공간에서 서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말 많은 우주 배경의 SF영화에서 도킹이 밥 먹듯이 쉽게 이뤄지기 때문에 다른 기술보다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아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도킹을 위해서는 우선 연결될 두 대의 우주선이 궤도를 일치시키고 속도를 조절해 적당히 우주적 거리 두기를 하며 마치 한 대처럼 움직여야 한다. 이걸 랑데부라고 부른다. 그 뒤에 연결될 부분을 깻잎 한 장 두께도 어긋나지 않도록 정확하게 맞춰야 도킹할 수 있다. 말이 쉽지 이게 장난이 아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맷 데이먼이 우주선을 탈취한 뒤 혼자 살겠다고 급히 모선에 도킹을 시도했지만, 숙련된 그도 불완전한 도킹 탓에 억지로 해치를 열었다가 폭발 사고로 사망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엔데버호의 비행갑판. [NASA]

    엔데버호의 비행갑판. [NASA]

    나쁜 짓을 한 벌로 다음 영화 ‘마션’에서 외로운 감방 생활을 시작했다는 슬픈 이야기는 접어두고, 도킹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알아보자. 두 대의 자동차를 한 대처럼 움직이는 건 어떨까. 추격전이 벌어지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아주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할 만하다. 최대한 따라잡아서 상대편 차와 상대속도를 맞추면 되니까. 두 차가 서로 노력한다면 더 쉬워진다. 하지만 우주 공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우주선의 경우, 미치는 중력, 대기의 저항, 심지어 태양 빛에 의한 복사 압력도 다르다. 자동차처럼 평면을 달리고 있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아쉽게도 우주선은 3차원으로 빙글빙글 돈다. 총알의 10배가 넘는 무시무시한 속도의 두 우주선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가 되는 건 한동안 불가능하다고 믿어졌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랑데부를 1965년 미국의 우주선 제미니 6A호와 7호가 해냈고, 이듬해 제미니 8호도 무인 위성 아제나와 최초로 도킹에 성공했다. 이후로도 이어진 끊임없는 시도들 덕분에 크루 드래곤 역시 국제우주정거장과 도킹할 수 있었고, 결국 수 시간 후 해치를 열고 안에 있던 세 명의 우주인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바야흐로 민간 유인우주선의 시대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를 선두로, 아마존닷컴의 설립자 제프 베조스가 만든 블루 오리진, 버진 그룹 회장인 리처드 브랜슨이 설립한 버진 갤럭틱까지 뛰어들어 민간 우주개발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 과거 냉전 시대, 강대국들의 힘겨루기로 시작된 우주개발 경쟁은 이제 정부 주도가 아닌 시장의 논리에 따라 철저히 효율적인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매년 국가 간 우주개발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예산 때문에 일론 머스크는 처음 우주 산업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시도 덕분에 기업 차원의 우주 산업이 꿈이 아닌 미래라는 것을 알게 됐고, 더 효율적이며 안전한 유인우주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방향을 찾았다. 이제 민간 기업이 개발한 우주선을 타고 실제 우주에서 우주 배경의 영화를 찍고, 달로 예술가를 보내 경이로운 영감을 얻으며, 언젠가 화성으로 인류가 이주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7600m 상공에서 직접 헤일로 점프를 뛰며 영화를 찍는 배우와 누구도 믿지 못했던 수많은 결과를 이뤄낸 기업가가 가까운 미래에 함께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영화를 찍게 된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가 피카소는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 이 문장을 현재 가장 잘 보여주는 두 남자에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아이언맨의 아크 원자로가 아닌 화수분 같은 열정 원자로가 아닐까 싶다.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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