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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여상, 탈북자의 총선 승리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흙수저, 여상, 탈북자의 총선 승리

‘흙수저’ 출신이 4선 꺾고 사법개혁 주자로
① 서울 동작을 이수진(더불어민주당)

4월 16일 서울 동작구 선거사무소에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1대 총선 당선이 확실시된 후 꽃다발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4월 16일 서울 동작구 선거사무소에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1대 총선 당선이 확실시된 후 꽃다발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기회가 된다면 올해 총선에서 지역구에 출마해 국민의 심판을 받고 싶다.” 

심판하던 판사가 심판받기를 선택했다. 결과는 당선. 이수진(50) 서울 동작을 지역구 당선인은 득표율 52.1%를 기록해 ‘4선 현역’ 나경원 미래통합당 후보를 꺾었다. 12년간 보수에게 표를 준 동작을을 뒤흔들며 ‘더불어민주당 압승’에 한몫했다. 

이 당선인은 ‘판사 출신 여성 정치인’이라는 키워드로 나 후보와 나란히 거론되곤 했지만, 차이점도 뚜렷하다. 사학재단 집안의 나 후보와 달리 ‘흙수저’ 출신이다. 충남 논산에서 4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나 여러 집에서 ‘더부살이’하며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 여읜 후 생활보호대상자 처지가 됐다. 하지만 판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40회 사법시험에 합격, 2004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 ‘조두순 사건’ 피해자에 대한 검찰의 반인권적 수사에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등 약자를 위한 재판관이 되고자 힘썼다. 

2018년 8월 현직 판사 신분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을 제기하며 단숨에 유명 인사가 됐다. 이후 그에게는 ‘블랙리스트 판사’라는 호칭이 따라붙었다. 일각에서는 “블랙리스트에 이수진 이름은 없다”며 “사법농단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한다.


4월 13일 서울 동작구 이수역에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시민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4월 13일 서울 동작구 이수역에서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시민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이 당선인은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의원의 거듭된 설득 끝에 1월 ‘13호 영입인재’로 당에 합류했다. 그의 관심 분야는 사법개혁. 법조계에서 보고 겪은 불의를 입법가로서 타파하고자 한다. 



‘힘센 여당 의원’을 표방하는 이 당선인은 “속도감 있게 동작구를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주요 공약으로는 △숭실대 드림센터 건립 △동작~서초 버스노선 신설 △흑석동 고등학교 유치 등이 있다. 당선 직후 그는 “동작의 발목을 잡아온 낡은 정치를 끝내고 정치개혁, 국회혁신으로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연구 보조원, 낙선 고배 딛고 일어나
② 광주 서구을 양향자(더불어민주당)

4월 15일 광주 서구을 선거사무소에서 양향자 21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되자 환하게 웃고 있다. [뉴스1]

4월 15일 광주 서구을 선거사무소에서 양향자 21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되자 환하게 웃고 있다. [뉴스1]

‘뚝심의 양향자’가 결국 해냈다. 7선에 도전하는 천정배 민생당 후보(1만5754표)보다 4배 많은 득표(6만1279표)로 21대 광주 서구을 의원에 당선했다. 4년 전 20대 총선에서 천 후보에게 20%p 넘는 격차로 참패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 

양향자(53) 당선인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전남 화순 출생으로 열다섯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상고를 졸업해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 메모리설계팀에 입사했다. 대졸 출신 연구원의 업무를 돕는 보조, 즉 ‘시다바리’였다. 하지만 특유의 뚝심과 성실함으로 28년 만에 삼성그룹 최초 여상 출신 임원에 올랐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사내 기술대학 반도체공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성균관대 대학원 전기전자컴퓨터공학 석사를 취득한 열혈 워킹맘이었다. 삼성전자에서 20년 넘는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반도체 설계 자동화를 추진, 제품 개발 기간을 단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 후배들 사이에서 그의 별명은 ‘이모’. 든든한 이모처럼 후배의 뒤를 지켜준다는 의미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과 합동 유세를 벌이는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후보. [양향자 선거캠프 제공]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과 합동 유세를 벌이는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후보. [양향자 선거캠프 제공]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당대표가 그를 민주당에 영입하면서 정계에 입문했으며, ‘꽃길’ 비례대표를 마다하고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다. 문 대표가 “양향자를 광주에 가두지 말고 전국적인 큰 인물로 키워달라”고 호소했지만 낙선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장 겸 최고위원과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원장(차관급),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 부위원장 등을 맡으며 정치적 경력을 쌓는 한편, 광주의 밑바닥 민심을 훑는 데 매진해왔다. 

양 당선인은 이번 총선에서 천 후보를 겨냥해 “민생당에 민생이 없다”고 외쳤다. 또한 “기아자동차와 광주형 일자리를 살려야 한다”며 “경제를 말할 수 있는 후보는 양향자”라고 유권자를 설득했다. 그는 당선이 확정된 뒤 “이번 총선 결과는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사태에 잘 대처했다는 성적표”라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국민의 기대와 믿음에 부응하고자 온 힘을 다 쏟겠다”고 다짐했다.


‘강남스타일’ 잘 이해한 전직 북한 외교관
③ 서울 강남갑 태구민(미래통합당)

태구민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서울 강남갑 후보가 4월 16일 새벽 자신의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이 확실해진 후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뉴스1]

태구민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서울 강남갑 후보가 4월 16일 새벽 자신의 선거사무실에서 당선이 확실해진 후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남에 어울리는 후보가 따로 정해져 있습니까.” 

“북한 평양 출신이 무슨 지역구 의원 출마냐”라는 주변의 물음에 태구민(태영호·56) 서울 강남갑 지역구 당선인이 내놓은 답이다. 결과는 대승. 58.4% 득표율을 기록하며 전남에서 4선 의원을 지낸 김성곤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꺾었다. 첫 탈북자 출신 지역구 의원이 탄생한 순간이다. 

태 당선인이 탈북을 감행한 때는 2016년 7월. 20대 총선을 치르고 3개월이 지난 때였다. 그리고 만 4년도 되지 않아 그는 대한민국 최고 부촌, 강남갑 주민을 대표하게 됐다. ‘총선 투표보다 총선 후보 등록을 먼저 한 사람’이라는 이색 타이틀도 보유하게 됐다. 

그는 뒤늦게 한국 땅을 밟았지만 강남 주민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종합부동산세와 재건축 이슈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강남 주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역시 부동산(8억9000만 원)과 금융자산(9억7500만 원) 등 18억 원 재산가다. 그는 “남한에 와서 강연과 책 인세로 자산을 쌓으며 연 1억 원의 세금을 내왔다”고 했다. 

평양에서 태어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평양 국제관계대 국제관계학과를 졸업하고 30여 년간 공직 생활을 했다. 덴마크, 스웨덴, 영국 등 각국 대사관을 다니며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 탈북 직전 직책은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대사관 내 2인자 직책이다.


유튜브 ‘태영호TV’에서 자신의 본명(태구민)을 알리고 있는 태구민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후보. [유튜브 캡쳐]

유튜브 ‘태영호TV’에서 자신의 본명(태구민)을 알리고 있는 태구민 21대 총선 미래통합당 후보. [유튜브 캡쳐]

정치 신인이지만 인지도는 여느 기성 정치인 못지않다. 아니, 오히려 능가한다. 2018년 출간한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는 그해에만 15만 부가 판매됐다. 오픈한 지 3개월 된 유튜브 채널 ‘태영호TV’ 구독자도 16만3000여 명에 달한다. 북한 움직임에 대한 그의 해석은 수시로 여러 언론에 노출된다. 

태 당선인은 유권자에게 ‘강남 권리 되찾기’를 약속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청담사거리역 신설 △강남형 어린이집 시범 운영 등이 그의 공약이다. 그는 당선 직후 “대한민국은 나의 조국이고, 강남은 나의 고향”이라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20.04.17 1235호 (p14~19)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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