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3

2020.04.03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얼어붙은 오프라인, 꽃피는 온라인

‘코로나 시대’의 대중음악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20-04-01 10: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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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지 차원에서 이한철과 동료뮤지션들이 따로 촬영한 동영상을 하나로 편집해 만든 ‘슈퍼스타’ 유튜브 동영상.  [POCLANOS공식유튜브 채널]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지지 차원에서 이한철과 동료뮤지션들이 따로 촬영한 동영상을 하나로 편집해 만든 ‘슈퍼스타’ 유튜브 동영상. [POCLANOS공식유튜브 채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인류는 상상해왔다. 다음 세계대전은 어느 진영 간 대결일지를. 미국과 소련, 미국과 중국, 석유를 둘러싼 대전쟁, 심지어 외계인과 전쟁도 호사가들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는 대상이 나노의 세계에 사는 분자 덩어리가 될 줄은. 낙관은 사라지고 세계가 준전시 상황에 처했다. 보이지 않는 적만큼 무서운 적은 없음을 실감하게 됐다. 

    전쟁에서 음악은 희망과 사기를 고취한다. 때로는 위문 공연 형태로 위에서 내려오지만 또 때로는 병사들이, 난민들이 스스로 노래를 지어 부르며 아프디 아픈 현실을 잊는다. 전쟁터에서 음악은, 그래서 크리스마스 특식 못지않은 힘을 발휘한다. 영혼에 녹아드는 초콜릿이다.

    ‘Bella Ciao’ & ‘Let Your Love Be Known’

    베란다에 나와 'Bella Ciao'를 부르는 독일인들(왼쪽). 색소폰 반주에 맞춰 'Bella Ciao'를 노래하는 이탈리아인들. [가디언, Daniele Vitale Sax 유튜브채널 캡처]

    베란다에 나와 'Bella Ciao'를 부르는 독일인들(왼쪽). 색소폰 반주에 맞춰 'Bella Ciao'를 노래하는 이탈리아인들. [가디언, Daniele Vitale Sax 유튜브채널 캡처]

    유럽 전역이 코로나19로 아수라장이 되기 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유튜브 공식 채널에 코로나19로 격리된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올렸다. 독일과 이탈리아 사람들이 각자 건물의 옥상이나 발코니에서 노래를 합창하는 영상이었다. 그들이 함께 부른 노래는 ‘Bella Ciao(안녕 내 사랑)’.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항거하던 이탈리아 파르티잔(partisan)이 부르던 민중가요다. 나치와 파르티잔, 이 적대적 관계의 후손들이 함께 노래하면서 바이러스라는 공통의 적과 싸워 이기고자 하는 모습은 ‘음악적 연대’가 주는 힘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만질 수 없는 곳에서 음악은 거리와 벽을 뚫고 전달된다. 평화로울 때는 소음일 수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감각도 만들 수 없는 감정의 사슬이 된다. 메마른 사람이라면 그런 모습을 보고 비웃을 수도 있겠으나, 다행히 세상에는 이 아름다운 유대에 감동하고 공명하는 사람이 더 많다. 

    U2의 보노도 그중 한 명이다. 각자 발코니에서 노래하는 이탈리아인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그는 2017년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곡을 발표했다. 피아노 한 대로 노래한 ‘Let Your Love Be Known’의 가사는 이렇다. ‘그래, 침묵이 있고 / 그래, 여긴 사람이 없어요 / (중략) / 당신은 만질 수 없지만 노래할 수 있어요 / 옥상을 가로질러서 / 전화기를 내려놓고 노래해줘요 / 노래해요 멈추지 않겠다고 약속해줘요 / 노래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이 노래에 보노는 자신이 사는 더블린의 텅 빈 모습을 보며 느낀 고립감을 담았으며, 이를 이탈리아 사람들의 합창이 선사한 사랑과 희망의 영감으로 승화했다.



    주저앉은 오프라인 음악시장

    3월 12일 열릴 예정이던 공연을 취소한 대신 무관객 라이브 공연을 펼쳐 유튜브에 올린 크라잉넛. [크라잉넛 공식페이스북]

    3월 12일 열릴 예정이던 공연을 취소한 대신 무관객 라이브 공연을 펼쳐 유튜브에 올린 크라잉넛. [크라잉넛 공식페이스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의 오프라인 생활을 멈춰 세웠다. 미국 음악 잡지 ‘스핀’은 코로나19 사태로 앨범 판매량이 6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고 보도했다. CD는 물론이고 꾸준히 판매 상승세를 보이던 LP도 마찬가지다. 거래가 대부분 중고 물품으로 이뤄지기에 더욱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확진자의 손길이 닿았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공연과 페스티벌은 하루가 멀다 하고 취소되는 중이다. 3월 예정이던 그린데이의 내한공연을 비롯해 국내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으며, 미국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코첼라 밸리 뮤직&아츠 페스티벌,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도 취소나 잠정 연기를 발표한 상태다. 현재로서는 늦은 봄과 초여름 페스티벌이 취소됐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폭발적으로 전염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이후 페스티벌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도쿄올림픽이 연기된 마당에 7월 후지록 페스티벌, 8월 서머소닉 페스티벌이 과연 열릴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국내 페스티벌 시즌은 5월부터 시작이다. 5월 16일부터 17일까지 뷰티풀 민트 라이프와 그린플러그드 두 페스티벌이 동시에 열린다. 그다음 주에는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찾아온다. 현재로서는 개최가 불투명하다. 비말 감염에 최적화된 페스티벌 현장은 위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 세계적으로 항공 운항이 멈추거나 확 줄어든 상황에서 음악인의 원활한 이동도 힘들다. 아니, 그 전에 투어를 중단한 음악인도 부지기수다. 

    방송이나 차트 바깥에 있는 음악인에게 주된 활동은 공연과 행사다. 그러려면 먼저 앨범을 내야 한다. 활동의 축이다. 그런데 공연과 행사가 줄줄이 엎어지는 데다 소비심리까지 극도로 위축되다 보니 앨범 발매를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른 문화예술계와 마찬가지로 음악시장도 주저앉고 있다. 그전까지 음악만으로 생활하던 음악인과 관계자들이 본의 아니게 아르바이트나 투잡을 뛰고 있다. 

    반면 온라인에서는 새로운 흐름이 감지된다. 크라잉넛은 3월 12일 홍대 앞에서 열릴 예정이던 일본 밴드 킹곤즈와 합동 공연을 취소한 대신 각자 지역에서 무관객 라이브 공연을 유튜브로 스트리밍했다. 1995년 결성 이후 첫 무관객 라이브였다는데 어색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슈퍼스타’로 2007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노래’를 수상한 바 있는 이한철은 여러 동료 뮤지션과 이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단, 각자의 방과 작업실에서 따로 녹음한 후 하나의 영상으로 편집했다. 이 노래에 담긴 긍정적 메시지에 더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음악적으로 실천한 셈이다.

    온라인에서 희망을 엿보다

    3D기술과 콘서트 영상을 접목한 'U2 3D'. [CASCADE Film]

    3D기술과 콘서트 영상을 접목한 'U2 3D'. [CASCADE Film]

    이런 흐름이 자리 잡는다면 사태가 가라앉은 후에도 철저히 오프라인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기존 공연도 많은 부분 온라인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다만 현장성과 생생함이라는, 공연의 가장 큰 경쟁력을 어떻게 대체하거나 흡수하느냐가 과제다. 시각적·청각적 쾌감에서 아직 온라인은 오프라인을 따라잡을 수 없다. 유튜브에 올라온 라이브 영상은 대부분 1분 이상 보기 힘든 수준이다. 사운드는 조악하고 영상에는 땀방울이 없다. 

    미래는 어두울까.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10년 전 유튜브로 벼락부자가 되는 사람이 나오리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듯, 새로운 플랫폼은 새로운 경제구조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콘텐츠를 돈 내고 구매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일본의 경우 원래 일정을 취소하고 무관객 라이브 스트리밍을 한 밴드가 슈퍼챗(유튜브상의 후원금 지불)을 통해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을 버는 일도 있었다. 

    온라인 공연 관람이 익숙해진다면 이는 일본만의 일은 아닐 테다. 영화 ‘아바타’가 3D(3차원) 관람을 표준화했듯, 아직 비주류인 버추얼 기기를 활용하는 하드웨어의 발전이 온라인 스트리밍에 공연장 못지않은 현실감을 부여하리라고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또한 U2의 공연 영상을 3D와 접목한 ‘U2 3D’처럼 실재를 재현하는 걸 넘어 아예 가상을 실재와 혼합하는 방식으로 독창적인 온라인 공연의 세계를 구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거리와 단절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단절과 연결 사이의 벽을 허물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자리 잡을 것이다. 각자의 옥상에 있던 사람들이 음악으로 연결된 유토피아적 경험일 수도,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에 떨어진 듯한 디스토피아적 경험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익숙해질 테다. 진화란 희망과 절망, 어떤 쪽도 지향하지 않고 이뤄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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