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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의 대안 감염병전문병원, 치적 안 돼 버린다니

대통령 공약이지만 기재부·복지부 여전히 꿈쩍 안 해 … 코로나19 추경 편성에도 빠져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의병’의 대안 감염병전문병원, 치적 안 돼 버린다니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국가지정 중앙감염병병원 역할을 맡고 있다. [뉴시스]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국가지정 중앙감염병병원 역할을 맡고 있다. [뉴시스]

“21세기에도 의병으로 버틴다는 게 말이 되나. 관군을 투입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의료계에서 이와 같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초유의 감염병 사태에 따른 의료 공백을 의료진의 자원봉사로 메꾸고 있기 때문이다. 폭증하는 환자에 대처하고자 전국 의료진이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애초부터 있어야 할 감염병 전문 공공의료진이 적다는 것은 무척 뼈아픈 대목이다. 특히 의료계에서는 “감염병전문병원을 진작에 설립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실책”이라는 말이 나온다.


감염병전문병원 프로젝트의 시작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은 후 정부는 1개의 중앙 감염병전문병원(중앙감염병원)과 3개의 권역별 감염병전문병원(권역감염병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은 2017년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앙감염병원 설립 추진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권역감염병원으로 지정된 곳도 광주 조선대병원이 유일하다. 그나마 2021년에 개원하려던 당초 계획이 2023년으로 늦춰졌다. 

보건복지부(복지부)는 국립중앙의료원을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서초구 원지동으로 이전하면서 별도의 건물에 중앙감염병원을 세우고 국립중앙의료원에 운영을 맡길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초구의 반대에 더해 지난해 2월 경부고속도로 소음 때문에 해당 부지에 병원 건물을 세우는 것이 부적합하다는 전략환경영향평가 결과가 나오면서 원지동 이전은 물거품이 됐다. 이후 복지부는 1년 넘도록 중앙감염병원 설립을 위한 대체 부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3월 11일 충북 청주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실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코로나19 응급 환자 대응에 분주한 대구파티마병원 응급병동. [뉴시스]

3월 11일 충북 청주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실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코로나19 응급 환자 대응에 분주한 대구파티마병원 응급병동. [뉴시스]

확진자 186명 중 38명이 사망해 치명률이 20.4%에 달한 메르스 사태를 겪고도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은 왜 지지부진했을까. 2016년 2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한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박근혜 정부나 문재인 정부나 치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감염병전문병원에 관심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감염병전문병원 프로젝트의 시작이라 할 병원 설계 예산을 편성하고자 기획재정부(기재부)와 보건복지부의 관련 부처를 열심히 노크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것. 정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한 것 외에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인색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공언했던 ‘질병관리본부 독립’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아무리 본부장이 차관급이라 해도 독립된 부처가 아니어서 예산 편성권이 없으면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등 굵직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감염병원의 역할은 감염병 환자에 대한 진단 및 치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평소에는 감염병 치료는 물론,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감염병 대응 교육·훈련, 신종 및 고위험 감염병에 대한 임상연구를 병행하다 감염병이 확산하면 ‘컨트롤타워’로 변모한다. 또한 감염병 환자 치료를 전담해 다른 의료기관이 감염병에 노출되는 위험을 줄이고, 감염병 확산 정도에 따라 중증 이상 환자를 전담하며, 감염병 대응 훈련을 받은 의료진을 감염병 집중 발생 지역에 파견한다. 전국 병상 네트워크를 가동해 중증도에 따라 환자를 전원하는 역할도 맡는다.


‘입원 대기 중 사망’ 막았을 텐데…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감염병 전문병원 운영 방안’ 연구결과보고서가 제시한 모듈형 병동 구조. 1개 모듈에 4개 병실이 배치되며(위), 일반 병동은 4개 모듈, 16개 병실로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감염병 전문병원 운영 방안’ 연구결과보고서가 제시한 모듈형 병동 구조. 1개 모듈에 4개 병실이 배치되며(위), 일반 병동은 4개 모듈, 16개 병실로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지난해 2월 나온 질병관리본부의 ‘감염병 전문병원 운영 방안’ 연구결과보고서는 이러한 내용을 상세히 담고 있다. 중앙감염병원은 100병상 이상, 권역감염병원은 36병상 이상으로 설립된다(모두 음압병상). 애초 정부 계획대로 1개 중앙감염병원과 3개 권역감염병원이 설립된다면 신규 병상은 최소 208병상이 돼 현재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198개)보다 많게 된다. 

이 보고서는 의료진 업무공간을 4개 병실이 둘러싼 모듈형 병동을 제안했다(그림 참조). 환자 규모에 따라 실제 운영하는 모듈 단위를 확대 또는 축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경우 각 병실에 2개 병상을 설치할 수도 있다. 각 병실에는 ‘전실’이 마련돼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구 등에서 음압병상을 다급히 추가하면서 전실이 없어 의료진 감염 위험성이 높았던 문제가 감염병전문병원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셈이다. 보고서는 중앙감염병원이 감염병이 유행하지 않는 평소에는 결핵이나 에이즈(후천 면역 결핍증) 환자 등 시술 중 중대한 감염 위험성이 있는 감염병 환자를 전담할 것을 제안한다. 현재 국내 결핵환자는 연간 1000여 명이 발생한다. 에이즈 환자는 2013년 기준 6781명으로 그중 1656명이 결핵, 507명이 암 치료를 받았다. 

또한 이 보고서는 환자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병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일례로 중앙감염병원은 환자가 161명 이상일 때, 권역감염병원은 61명 이상일 때 모(母)병원의 일부 병상에 이동음압기를 설치해 감염병 격리병상으로 전환하고, 일반 환자를 인근 병원으로 옮기도록 했다. 

감염병전문병원이 있었다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이 보고서의 연구 책임을 맡은 이석구 충남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감염병전문병원 의료진이 유행 초기 단계 때 진료지침, 행동지침 등을 만들어 대유행이 시작되기 전 전국 병원을 준비시킬 수 있었고, 따라서 의료체계 혼란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앙감염병원은 3년, 권역감염병원은 2년 내 만들 수 있다”며 “메르스 사태 이후 바로 감염병전문병원 설립에 나섰더라면 감염병 전문 의료진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덧붙였다. 

정기석 교수는 “집에서 대기하다 사망하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감염병원과 권역감염병원이 코로나19 중증 이상 환자 수백 명을 전담함으로써 대구에서 발생한 의료 참사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 대구에서는 2월 말부터 2주가량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도 병상이 없어 집에서 입원을 기다리다 사망한 일이 수차례 벌어졌다. 정 교수는 “메르스 사태 때 입은 경제적 손실이 20조 원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손실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라며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예산을 더는 아까워해선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중앙감염병원 역할 대신하는 민간 의사

3월 1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뉴스1]

3월 1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 [뉴스1]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중앙감염병원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상당수가 ‘의병’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은 2월 초 코로나19 임상 경험을 공유하고 치료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공공 및 민간 의료기관 전문의로 구성된 ‘코로나19 중앙임상TF’를 구성했다. 그리고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빨라지자 2월 19일 중앙임상TF를 상설 조직인 ‘신종감염병 중앙임상위원회’(위원장 오명돈 서울대 감염내과 교수·이하 임상위원회)로 전환했다. 치료 전략을 넘어 △중증도 평가 △진료지침 마련 △임상 기록 수집 및 체계적 관리 △치료제 임상연구 등을 종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다.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코로나19를 치료하는 전문의라면 누구나 임상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다”며 “현재 30여 명이 화상회의에 참석하는데, 대부분 민간 병원 전문의”라고 전했다. 임상위원회는 중앙감염병원이 설립될 때까지 유지될 예정이다. 관군 창설 전까지 의병이 버텨주는 구조인 셈이다. 

정부는 3월 17일 국회를 통과한 11조7000억 원의 추경 예산에 ‘감염병 대응역량 강화’ 관련 예산을 배정했다.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에 음압병실을 확충하고(120병실·300억 원), 감염병 환자 이송을 위한 음압구급차를 지원한다(301억 원). 권역감염병원 2개소 신규 지정을 위한 예산(45억 원)도 배정했다. 하지만 중앙감염병원 설립에 관한 예산은 마련되지 않았다. 

4·15 총선을 앞두고 서초구에서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 현상을 겪었던 중앙감염병원을 자기 지역구에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후보가 전국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의료계는 우려를 표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계 관계자는 “중앙감염병원은 감염병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역량을 키워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전문가, 그리고 환자가 많은 서울에 설립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이 감염병전문병원을 꺼리는 이유는 병원 주변에 사는 주민이 감염병에 노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 이에 대해 임상위원회 운영사무국을 맡고 있는 방지환 중앙감염병원운영센터장(서울대 감염내과 교수)은 3월 23일 열린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전문가들은 2m를 넘어가면 감염 확률이 낮다고 본다”며 “최악의 경우 감염병전문병원의 유리창이 깨지고 음압이 고장 나더라도, 주변 주민은 적어도 수십m 이상 떨어져 있어 감염될 일이 없다”고 밝혔다.






주간동아 2020.04.03 1233호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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