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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맘이어도 괜찮아

육아의 고난에는 시효가 있다

아이는 무럭무럭 커나갈 뿐 다시 아기가 되진 않는다

  • 전지원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사회센터 책임연구원

육아의 고난에는 시효가 있다

많은 여성은 출산 후 겪는 피로와 어려움이 “평생 지속될 것 같다”는 막막함을 호소한다. [GETTYIMAGES]

많은 여성은 출산 후 겪는 피로와 어려움이 “평생 지속될 것 같다”는 막막함을 호소한다. [GETTYIMAGES]

봄눈이 내린 어느 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거실에선 음악이 흘러나오고 깨끗하게 닦인 그릇은 순조롭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문득 ‘왜 이렇게 평화롭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놀아달라며 다리에 매달리거나, 의자 위에 올라서서 싱크대에서 물장난하는 아이와 ‘부대끼며’ 설거지하는 게 일상다반사인데. 혹시 조용하게 말썽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아이가 있는 곳을 슬쩍 바라봤다. 아이는 혼자 나무 블록을 쌓으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된 후 이런 ‘평화의 순간’이 제법 늘어났다. 서둘러 샤워를 마치는 대신 따뜻한 물줄기를 만끽하며 여유롭게 하는 날도 많아졌다. 아이는 어느새 국수 한 그릇쯤은 혼자서도 척척 먹고 유독 피곤한 날엔 알아서 침대로 가 눈을 붙인다. 세상에, 이런 날이 오다니.


“대변 묻은 바지도 빨 수 없어요”

육아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호소한 글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미국의 20대 엄마 브리짓 앤 암스트롱의 페이스북. [페이스북 캡처]

육아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호소한 글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미국의 20대 엄마 브리짓 앤 암스트롱의 페이스북. [페이스북 캡처]

얼마 전 미국에서 18개월 된 아기를 키우는 한 엄마가 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브리짓 앤 암스트롱이라는 이 여성은 ”화장실을 갈 수도, 커피를 마실 수도 없다. 책도 읽을 수 없다. 심지어 다리에 매달려 울고 소리치는 아기 없이는 똥 묻은 바지조차 빨 수 없다’며 아이를 돌보는 어려움과 외로움을 토로했다. 이 글은 7만 회 넘게 공유되며 미국 언론에도 보도됐다. 브리짓뿐이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엄마가 쪽잠에만 기댄 채 우는 아이를 달래고, 이유식을 만들고, 먹이고, 치우고, 놀아주고, 씻기고, 살피는 일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 와중에 겪는 정신적, 육체적, 감정적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테다. 

조금 덜 알려진 사실은, 그러한 육아의 고난에도 시효가 있다는 점이다. 아이는 어느새 자라서는 외출하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맹렬하게 우는 대신 잘 다녀오라며 손 흔들어주는 어린이가 된다. 그리고 그 시기는 생각보다 빨리 온다. 미국 프리랜서 작가 보니 코헨(Bonnie Koehn)은 2017년 ‘초보 엄마에게, 육아가 점점 쉬워진다는 걸 약속해요(Dear New Mom, I promise It Gets Easier)’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초보 엄마의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45만4000개의 결과가 나온다’며 ‘아이를 낳고 기르는 첫 2년에 몇 달만 지나면 훨씬 나아진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시기가 조금 덜 힘들었을 것’이라고 썼다. “육아의 가장 큰 장점은 후퇴란 없다는 것이다. 아이는 무럭무럭 커나갈 뿐 다시 아기가 되진 않는다. 견디다 보면 상황은 늘 더 나아진다.” 서른다섯 넘어 두 아이를 출산한 선배 늦맘이 내게 해준 말이다.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이 지속되면서 여기저기서 출산과 육아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실제로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기르며 돌본다는, 실로 삶을 뒤흔드는 경험에 대해 우리는 잘 모른다. 학교는 물론 사회 어디에서도 이에 대해 들어볼 기회가 많지 않다. 출산 이후 돌 무렵까지의 아기를 둔 엄마들을 심층 인터뷰한 연구에 따르면, 상당수 엄마가 출산 전에는 육아의 어려움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막상 아이를 기르면서 수면 부족 등 여러 어려움에 한꺼번에 직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문현아·전지원, 2017). 이러한 엄마들은 이 같은 피로와 고난이 “평생 지속될 것 같다”는 막막함을 호소했다. 



나 역시 그랬다. 아이는 원래 자주 아프고 열이 난다는 것, 모유수유가 저절로 되는 건아니라는 것, 바깥 구경을 하는 시간보다 아기를 챙겨 나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 남편을 포함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계에 시험이 닥친다는 것 등등에 대해 나는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5년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아이를 키우는 기쁨과 힘듦에 대해 어떤 각오와 준비를 해야 하고, 언제쯤이면 약간 숨 돌릴 틈이 생기기 시작하는지 등을 미리 알았다면 초기 양육기를 조금은 수월하게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둘째는 우는 것도 예쁘다”는 엄마들의 말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초기 양육기의 고충 반영한 정책 마련해야

육아의 고난에도 시효는 있다.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란다. [GETTYIMAGES]

육아의 고난에도 시효는 있다.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자란다. [GETTYIMAGES]

한국 사회가 진실로 저출산·고령화를 심각한 위기로 여긴다면 초기 양육기에 부모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그를 기반으로 주 돌봄자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자료를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산모를 대상으로 한 산전교육도 출산 직후에 필요한 ‘기술’ 외에 향후 2~3년간 엄마(혹은 주 돌봄자)가 겪게 될 어려움과 언제쯤 다시 예전 삶으로 조금은 돌아올 수 있는지 등을 다루면 좋겠다. 

한편으로 우리 사회도 육아의 어려움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사람들은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커다란 기저귀 가방을 멘 채 한 손에 아이스커피를 들고 공원에 나온 김지영에게 “팔자 좋다”고 한다. 김지영에게 한 잔의 커피가 어떤 의미일지 읽어내는 헤아림은 육아와 돌봄에 대한 무지와 경시, 노키즈존 등을 통한 ‘분리’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다. 이런 환경에서 감히 용기 내 출산할 사람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브리짓을 비롯한 초보 엄마들에게 “조금만 지나면 정말로, (하지만) ‘약간’ 괜찮아져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40대 늦맘이라면 오히려 아이가 엄마로부터 독립하고 난 뒤 찾아올 공허함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앞서 언급한 칼럼에서 코헨은 초보 엄마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힘든 순간으로 인해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지 말아요. 생각보다 엄청 빨리 지나간답니다(Don’t let the hard moments steal the beautiful ones. It will pass faster than you know).”






주간동아 2020.03.06 1229호 (p56~58)

전지원 서울대 국제이주와포용사회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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