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공통의 영기화생 원리를 보여주는 채색분석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 철문의 문양 채색분석

미술사학자 강우방(79)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의 40여년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사진 전시전이 열리고 있다.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 1,2층에서 전시 중인 ‘강우방의 눈, 조형언어를 말한다’이다.

이번 전시는 강 원장이 40여 년간 촬영한 7만여 점의 사진을 슬라이드로 제작해 지난해 국립문화재연구소 기록관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이 공동 개최한 전시다.

1층에 마련된 1부 전시에서는 강 원장이 촬영한 사진 중에서 회화ㆍ조각ㆍ건축ㆍ공예ㆍ자연과 조형 등 5개 분야별로 500여 점을 엄선해 슬라이더 영상으로 보여준다.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폐허 속 자연과 어울러진 희귀문화재 사진은 물론 강 원장이 공들여 촬영한 해외문화유산의 슬라이드 사진도 함께 전시된다.

조형언어의 변형생성문법, 영기화생

통일신라시대 상원사 동종의 비천 채색분석

2층에 마련된 2부는 2000년대 초반 강 원장이 고구려고분벽화를 연구하다 발견한 ‘영기화생론(靈氣化生論)’이 고대부터 중세까지 동서양 조형작품에 보편적으로 적용됨을 보여준다. 우주에 충만한 신령한 기운에서 만물생령이 화생한다는 원리가 동서양의 회화 조각 건축에 어떻게 적용됐는지를 ‘채색분석법’을 통해 규명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기화생론이 구체적 미술작품으로 표현될 때는 세계 공통의 조형언어로 표현된다.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부터 예술장인들을 통해 계승된 조형언어는 강 원장이 ‘침묵의 음소’라 부르는 것들로 구성된다.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 그리고 모든 영기싹의 근원이 되는 씨방 형태의 보주(寶珠) 등이다. 제1영기싹은 새싹이 날 때 그 끝이 또르르 말린 듯한 형상이다. 제1영기싹에 그치는 것도 있지만 어떤 문양은 대칭적으로 ‘제2영기싹’이 나타나고 두 영기싹 가운데서 ‘제3영기싹’이 다시 출현한다.

이런 추상적 형태의 영기문은 다시 연꽃과 백합 형태의 식물무늬 아니면 동물 형상의 청룡과 백호 현무 주작의 사신(四神)으로 구상화되기도 한다. 또 부처나 관음보살, 아기예수, 성모 마리아 같은 신성한 존재로 표현되기도 한다. 강 원장은 이를 “음소가 결합해 음절이 되고, 음절이 모여 단어가 되고, 단어가 모여 구(句)가 되고, 구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영기화생을 시각화하는 채색분석

잉카문명의 신상 채색분석

채색분석법은 이런 조형언어의 원리가 해당 미술품에 어떻게 형상화됐는지를 서로 다른 색깔로 차별화하면서 채색해나가며 판별하는 분석법이다. 이번 전시에선 강 원장이 채색분석한 1만여 점의 동서양 에술품 중에서 엄선된 16개 작품에 대한 채색분석이 소개됐다. 고구려 고분벽화와 백제 무령왕 금관장식, 통일신라 성덕대왕신종의 비천, 고려 수월관음도, 조선시대 화조도 같은 국내작품은 물론 일본의 코미자 만다라(불교원리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불화), 고대 그리스의 석조기둥, 중남미 잉카석상,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천국의 문 같은 해외작품을 골고루 아우른다. 강우방의 학예 탐구 여정을 함께 했던 카메라와 실측도면, 30여 권의 저서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

강 원장은 “문자언어를 통해 역사가 기록된 역사가 5000년이라면 구석기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조형예술에 투영된 조형언어의 역사는 300만년으로 그 600배가 되는 장구한 세월”이라면서 “조형언어의 99%가 문양인데 근대 이후 그 진가를 망가한 미술사학자들에 의해 쓰레기 취급을 받다가 영기화생론과 채색분석법을 만나면서 찬란하게 부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규모 전시”라고 그 의의를 밝혔다. 18일 오후 2~4시에는 강 원장이 직접 조형언어 이론과 방법론을 설명하는 특강도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