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版 바뀐 롯데, 기업공개는 ‘천천히’

신동빈 회장 경영 전념, 일본롯데는 ‘장악' … 호텔 상장은 서둘러 갈 필요는 없다?!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版 바뀐 롯데, 기업공개는 ‘천천히’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와 롯데그룹이 2017년 도입한 CI. [뉴시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와 롯데그룹이 2017년 도입한 CI. [뉴시스]

대법원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로써 ‘국정농단 연루’ 재판이 마무리되고 신 회장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게 되자, 재계 안팎으로 롯데그룹의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장 큰 이슈는 호텔롯데 기업공개(IPO). 대법원 판결 직후 언론에서는 “3년간 중단됐던 호텔롯데의 코스피 상장 작업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졌다. 그러나 롯데 측은 “호텔롯데를 상장한다는 계획은 변함이 없지만, 현재는 여건이 되지 않아 당장 추진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롯데 불매운동’ 저지 카드

7월 1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가운데). [뉴스1]

7월 16일 오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가운데). [뉴스1]

호텔롯데 상장 이슈는 4년 전 발발한 롯데가(家) ‘형제의 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신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일본롯데) 부회장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자 롯데의 복잡한 지분구조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당시 롯데는 국내에만 416개에 달하는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고,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의 지분 99%가 일본롯데 등 일본 측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국민 사이에 롯데의 ‘국적’에 의구심을 품는 반(反)롯데 정서가 확산되면서 ‘롯데 불매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타개책으로 호텔롯데 상장 카드가 등장한 것이다. 

2015년 9월 10대 그룹 총수 가운데 처음으로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신 회장은 “이번 가족 간 일로 우리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면서 “내년 상반기까지 호텔롯데를 상장해 정체성 논란을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듬해 5월 롯데는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전체 주식의 25%는 신주 발행, 10%는 기존 대주주 보유 지분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35% 주식을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일본계 지분을 99%에서 65% 아래로 떨어뜨린다는 것이 골자. 하지만 한 달 뒤 검찰이 총수 일가의 횡령 및 배임 의혹 수사에 나서면서 호텔롯데 상장 절차는 중단됐다. 


版 바뀐 롯데, 기업공개는 ‘천천히’
호텔롯데 상장이 무기한 연기된 와중에도 롯데는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매진해왔다(그림 참조). 2017년 10월 4개 상장 계열사(롯데쇼핑·제과·칠성·푸드)를 거느린 ‘롯데지주 주식회사’(롯데지주)를 출범했다. 이후 롯데정보통신, 롯데지알에스, 한국후지필름, 롯데로지스틱스(현 롯데글로벌로지스), 롯데상사, 대홍기획 등이 롯데지주에 계열사로 편입됐고, 연매출 16조 원에 달하는 롯데케미칼도 롯데지주 밑으로 들어왔다. 이와 함께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계열사 주식 보유를 금지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라 롯데카드, 롯데손해보험, 롯데캐피탈을 매각했다. 

지금까지 롯데는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해소하며 지주사 체제로 전환에 상당 부분 성공했지만, 아직은 ‘완성됐다’고 말할 순 없다. 롯데지주 위에 호텔롯데가 있는 옥상옥(屋上屋) 구조이기 때문이다. 호텔롯데는 롯데지주 지분 11.1%를 보유하며, 아직 롯데지주에 편입되지 않은 롯데건설(43.1%)과 롯데물산(31.1%), 롯데상사(34.6%)의 주요 주주이기도 하다. 호텔롯데 지분은 일본롯데(19.7%)와 11개 L투자회사(72.7%), 광윤사(5.5%) 등 일본계 지분이 현재 97.9%에 달한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롯데가 우선 호텔롯데를 상장시킨 뒤 롯데지주와 합병해야 지주사 체제로 전환이 완성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실적과 미래 전망이 관건

版 바뀐 롯데, 기업공개는 ‘천천히’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10월 15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세계여성이사협회(WCD)에서 호텔롯데 상장과 관련해 “여건이 되면 진행할 계획이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일정을 논하긴 어렵다. 투자자를 설득할 만한 실적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현재로선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2016년 상장 추진 당시 호텔롯데는 시장에서 15조 원가량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2015년 달성한 매출 5조1300억 원과 영업이익 4073억 원에다 유사업종에서 추정한 시가총액 등이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오너 리스크’로 상장 추진이 중단된 사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중국 정부가 한한령(限韓令 · 중국 내 한류 금지령)을 발동하면서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 호텔롯데 면세사업 부문의 실적이 급전직하로 악화됐다. 호텔롯데는 면세점 외에도 호텔·리조트·골프장 등을 운영하지만, 면세사업 부문이 매출의 80% 이상, 영업이익의 10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면세사업 의존도가 크다. 2016년 3300억 원이던 면세사업 부문 영업이익은 한한령이 본격화된 2017년 24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2018년 2050억 원으로 크게 회복됐으나, 상장 추진 당시 3842억 원(2015년도 면세사업부 영업이익)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그친다(그래프 참조). 호텔롯데 기업가치의 주요 참고자료가 되는 호텔신라의 주가 역시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10월 현재 호텔신라 주가는 7만8000원으로, 최근 3년간 최고가 13만2000원 대비 40%가량 내려앉은 상태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기업공개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실적과 미래 전망인데, 현재는 둘 다 요건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2016년 807만 명에 달하던 방한 중국인 관광객 수가 한한령 이후 2017년 417만 명으로 반 토막 났다. 2018년 479만 명, 올해 9월까지 누적 444만 명으로 증가 추세로 돌아섰지만, 아직까지 한한령 전 수준으로 회복되진 않았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운명은?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 소공점 입구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왼쪽). 전남 무안 남악롯데복합쇼핑몰 모습. [뉴시스]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 소공점 입구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왼쪽). 전남 무안 남악롯데복합쇼핑몰 모습. [뉴시스]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했음에도 최근 국내 면세점의 매출액은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9월 국내 면세점 총매출은 2조2421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8월 2조1844억 원보다 2.6% 늘어났다. 전년 동기(1조7004억 원)와 비교하면 30% 이상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이는 중국인 관광객의 빈자리를 중국인 보따리상 ‘다이궁(代工)’이 채웠기 때문. 

하지만 늘어난 매출이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송객수수료(면세점이 단체관광객을 데려온 대가로 여행사에 지급하는 리베이트) 부담 역시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 유치를 위한 할인 프로모션 등 면세사업자 간 출혈경쟁이 심화되는 것도 수익성에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다. 올해 초 중국이 다이궁 규제를 골자로 하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자상거래법)을 도입한 점도 다이궁에 의존하는 국내 면세사업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김명주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다이궁 시장은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 중단기적으로는 견고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중국 유통채널이 선진화할수록 그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며 “국내 면세시장이 다이궁 리스크를 상쇄하려면 사드 보복 해제를 통한 중국인 단체관광객 회복, 국적별 고객군 다양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호텔롯데 상장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슈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에 대한 관세청의 특허 취소 여부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호텔롯데 면세사업 부문 매출의 14%가량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곳이 문을 닫을 경우 호텔롯데 가치가 그만큼 낮아져 상장 절차는 더욱 멀어질 수 있다. 

2015년 특허 심사에서 탈락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이듬해 관세청이 신규 발급한 특허를 획득해 2017년 1월 재개장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신 회장이 면세점 특허를 받는 대가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가 만든 K스포츠재단에 70억 원을 지원한 혐의가 불거졌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묵시적 청탁’이 있었으나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다는 2심 재판 결과를 인정했으며, 이는 신 회장의 집행유예 판결의 법률적 근거가 됐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관세청은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특허를 취소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관세법 제178조 2항에 따르면 세관장은 ‘특허보세구역 운영인’이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특허를 받은 경우 특허를 취소해야 한다. 이에 대해 호텔롯데 관계자는 “면세점 특허는 ‘공고’와 ‘취득’ 절차로 나뉘는데, 법원이 공고 절차에서는 뇌물죄를 인정했지만 취득 절차에서는 불법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다고 봤다. 따라서 ‘관세법’상 특허 취소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관세청은 특허보세구역 운영인으로 대표이사를 기재하게 한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특허 취득 당시 호텔롯데 롯데면세점 대표이사는 신 회장이 아닌 장선욱 전 대표였다는 점도 호텔롯데가 특허 취소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다. 결국 관세청이 신 회장을 사실상 면세점 운영인으로 볼지 여부가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운명을 가를 것으로 예상된다. 관세청 관계자는 “1962년 첫 면세점이 생긴 이래 대법원 판결을 가지고 특허 취소 여부를 검토해본 전례가 없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할 수 없다”며 “현재 대법원 결정문을 입수하는 단계이며 판결 내용을 세세히 분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동빈 체제’와 ‘일본 색’ 사이

호텔롯데 상장은 지주사 체제를 완성하는 동시에 롯데가 ‘한국 기업’임을 인정받는 거의 유일한 길로 거론된다. 그러나 ‘신동빈 체제’를 위해서라면 당장 급할 것은 없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기도 하다. 신 회장은 지난해 2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법정 구속될 당시 내놓은 일본롯데 대표이사직에 올해 2월 복귀했다. 2015년 형제의 난 이후 일본롯데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 간 표 대결이 수차례 있었지만, 신 회장이 전승했을 정도로 신 회장에 대한 일본롯데 주주들의 신임도 두텁다. 한 재계 관계자는 “법원 판결이 신 회장에게 불리하게 나왔다면 어려운 여건에도 명분을 위해 호텔롯데 상장을 추진해야 하겠지만, 부담을 떨쳐낸 현재로서는 호텔롯데 상장을 서두를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촌평했다. 다른 관계자는 “최근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롯데가 타격을 입고 있는 데서 보듯, 롯데는 ‘일본 색’을 덜어내는 게 숙원 과제”라며 “호텔롯데 지분의 일부라도 국내외 투자자로 채우기 위해 언젠가 상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롯데의 ‘통 큰’ 투자, 정상 궤도 진입했나
화학 투자는 ‘착착’, e커머스 투자는 오리무중
5월 완공된 미국 루이지애나주 롯데케미칼 공장. [뉴시스]

5월 완공된 미국 루이지애나주 롯데케미칼 공장. [뉴시스]

2018년 10월 2심 재판부의 집행유예 선고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후 롯데는 2023년까지 국내외 전 사업 부문에 걸쳐 50조 원을 신규 투자하고 7만 명을 직접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롯데는 유통 · 식품 중심에서 벗어나 화학 부문과 e커머스(온라인 유통) 중심의 미래형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부문별 투자 비중을 △화학 및 건설 40% △유통 25% △관광 및 서비스 25% △식품 10%로 편성했다. 

롯데는 화학 부문 매출을 2030년까지 50조 원, 세계 7위권으로 도약시킨다는 목표 아래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 예가 인도네시아 석유화학단지 건설 프로젝트. 롯데는 이 프로젝트에 4조 원을 투입해 동남아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연간 에틸렌 100만t, 프로필렌 52만t, 부타디엔 13만t, 폴리프로필렌 40만t의 생산 능력을 보유한 대규모 시설 공사를 서두르고 있다. 3조 원이 투입돼 연간 100만t의 에틸렌 생산 능력을 갖춘 미국 루이지애나주 화학공장은 5월 완공됐다. 국내에선 롯데케미칼의 생산 거점인 울산, 전남 여수, 충남 대산지역에 대한 설비 투자도 지속해나간다는 계획이다. 

e커머스에는 2023년까지 3조 원을 투자해 매출을 20조 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8월 계열사에 흩어진 e커머스 인력을 통합해 롯데쇼핑 산하에 ‘e커머스 사업본부’를 출범했고, 신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10월에는 관련 인력을 400명 충원했다. 현재 롯데는 계열사별로 운영하던 8개 온라인몰을 통합몰 애플리케이션 ‘롯데ON’으로 재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의 자산을 유동화해 ‘롯데리츠’를 상장한 뒤 유입되는 현금 1조 원도 e커머스에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e커머스 투자는 계획을 발표하고 1년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쿠팡, 마켓컬리 등 온라인 경쟁자의 성장세가 거세고 신세계가 3월 통합 온라인쇼핑몰 ‘SSG닷컴’을 출범한 것과 비교하면 롯데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자금력이 우수한 롯데는 기존 e커머스 업체를 인수할 큰손으로 여겨져왔다”며 “롯데의 신중한 행보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9.10.25 1211호 (p34~38)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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