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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나

명절 때 ‘할많하않’ 했던 당신에게 주는 위안의 말

취업·결혼·출산·이혼·가족 호칭과 관련해 상처받았다면

명절 때 ‘할많하않’ 했던 당신에게 주는 위안의 말

  • ※‘사바나’는 ‘회사, 알바, 나’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 컨버전스 뉴스랩(News-Lab)으로, 소속 기자들은 모두 밀레니얼 세대다. <편집자 주>
명절 때 ‘할많하않’ 했던 당신에게 주는 위안의 말
추석은 끝나고 불편함이 남았다. 친척이란 살가운 ‘스몰토크’를 하자니 멀고, 모른 척하기엔 인연이 깊은 사람들. 날씨 얘기인 양 생각 없이 건네는 인사와 ‘근황 토크’가 날 선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올해도 취업, 결혼, 출산 등에 관한 친척들의 오지랖 넓은 질문 공세에 시달렸지만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를 줄여 이르는 말) 한 당신에게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책 5권을 권한다.


1. 아가씨에게 “저기요” 했더니 시어머니가 화내더라

“지난해 결혼한 새댁입니다. 남편의 남동생과 여동생을 ‘도련님’ 아가씨’라고 부르는 게 여전히 낯설어요. 이번 추석에도 시가에서 ‘저기요…’로 얼버무렸더니 시어머니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시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남편 집의 종도 아닌데, 도련님이나 아가씨라는 호칭을 쓰는 게 불쾌해요.” 직장인 이모(30·여) 씨


[사진 제공 ·푸른숲]

[사진 제공 ·푸른숲]

올해 초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가족 호칭에 대한 국민생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 배우자의 형제·자매를 도련님이나 아가씨로 부르는 것이 문제’라고 응답한 비율이 98.4%나 됐다. 또 남편의 부모 집은 ‘시댁’인데, 아내의 부모 집은 ‘처가’인 것에 대해서도 96.3%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응답했다.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푸른숲)의 저자 배윤민정은 4년 차 기혼 여성. 지난해 시가 식구들에게 ‘아주버니’ ‘동서’ 대신 ‘~씨’ ‘~님’으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겪은 가족 간 갈등을 인터넷에 연재해 큰 호응을 얻었고, 올해 6월 책으로도 펴냈다. 주장과 이론이 아닌, 자신과 가족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해 공감을 산다.

| 인터뷰 저자 배윤민정 | 

남녀 간 불평등한 가족 호칭에 관한 문제의식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연재 초반에는 원색적인 비난 댓글에 시달렸다. 가족 호칭이 불평등하다는 문제의식 자체가 없었던 거다. 최근 여론이 환기됐지만, 이번 추석에도 호칭 변화에 완강히 저항하는 가족 구성원들 때문에 답답했다는 주변 지인과 독자가 여전히 많았다.” 



왜 가족 호칭을 바꿔야 하나. 

“한국의 가족 호칭에는 남존여비와 연령차별이 녹아 있다. 호칭이 가족 간 위계와 서열을 만드는 근본 원인이다. 그리고 불편한 호칭이 오히려 가족관계를 서먹하게 만들지 않나.” 

가족 호칭 개선에 나선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기존 호칭을 고집하는 이들을 하루아침에 바꾸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계속 대화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 ‘호칭 개선에 나선 당신은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호칭 개선으로 존중받고 싶은 마음은 지극히 당연한 요구’라고 응원해주고 싶다.” 

본인의 가족 호칭 개선 성과는. 

“일부 가족 구성원의 반발로 몇 달간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 다만 올해 초 시부모님으로부터 ‘민정님!’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받았다. 꾸준한 대화로 조금씩 변화를 추구해가려 한다.”


2. 취업했더니 “결혼은 언제 할 거냐” 묻네요

[사진 제공 ·한빛비즈]

[사진 제공 ·한빛비즈]

“취업준비를 할 때는 명절에 가족 만나기가 참 꺼려지더라고요. 다행히 번듯한 직장에 자리 잡아 이번 추석은 당당하게 지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추석 연휴에 찾아뵌 부모님이 ‘연애는 왜 안 하느냐’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채근하시더라고요. 당황스러웠어요.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당장 연애나 결혼 생각 없이 솔로 생활을 즐기고 있는데….” 새내기 직장인 윤모(29·여) 씨


[사진 제공 ·한빛비즈]

[사진 제공 ·한빛비즈]

통계청에 따르면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지난해 48.1%로 2010년 64.7%에 비해 크게 줄었다. 다만 결혼 자체를 거부하는, ‘결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3.0%로 2010년 3.1%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이른바 비혼(非婚)을 고집하진 않지만, 여러 이유로 결혼을 삶의 우선순위에서 낮춰 잡는 젊은이가 늘어난 것.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한빛비즈)는 이러한 생각을 잘 표현한, ‘웃픈’ 현실에 대한 담백한 독백이다. 저자 이주윤은 ‘귀한 딸내미에게 쭈그렁이니 똥값이니 하는 험한 말’로 결혼을 압박하는 아버지에 대해 “마음은 그게 아닐 것을 알면서도 마냥 밉다. 아줌마 같은 얼굴을 하고서 사춘기 소녀처럼 구는 내가 더 밉다”고 말한다. 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모으고 직접 그린 익살맞은 삽화까지 곁들였다. 


| 인터뷰 저자 이주윤

지금도 부모가 결혼하라고 하나. 

“예전에 부모님은 ‘손자 자랑해보는 게 꿈’이라며 나를 닦달했다. 하지만 책을 출간한 뒤로는 연애나 결혼을 두고 잔소리하지 않는다. 평소 말로 못 하던 내 심경을 글로나마 접한 부모님이 이제는 이해해주시는 것 같다.” 

추석에 대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추석 때면 ‘엄마,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옷을 입고 터덜터덜 집에 간다’고 했다. 

“서울에서 고향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에 스마트폰에 끼적인 글이다. ‘전 부치러 고향 간다’는 구절을 반복해 표현해봤다.” 

효과적인 명절 대책이 있나. 

“어른들의 오지랖은 악의보다 대화 소재가 없어 그냥 꺼낸 말에서 비롯된다. 사적이고 민감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예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3. 애 낳으라는 닦달에 태국으로 피신했어요

“이번 추석은 일찌감치 비행기 표를 예약해 아내와 태국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직장에서의 성취나 둘이 함께하는 취미 생활이 중요하다고 여겨 아이는 낳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은 만날 때마다 ‘왜 애를 안 낳느냐’ ‘니들만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살지 마라’ 등 잔소리를 하십니다. 그래서 도피성 명절 여행을 다녀온 거죠.”결혼 4년 차 딩크족 강모(34) 씨


[사진 제공 ·부키]

[사진 제공 ·부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11월을 기준으로 자녀를 출산하지 않은 결혼 1~5년 차 신혼부부는 전체의 37.5%에 달했다. 결혼 3~5년 차 부부로 범위를 좁혀도 무자녀 비중은 21.8%로 2년 전인 2015년 19.3%와 비교해 소폭 증가했다. 딩크(Double Income, No Kids·DINK)족인 사연은 저마다 다양하다. 사회적 성취를 위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임신이 어려워서 등등.‘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부키)는 편견 어린 시선에 부딪힌 무자녀 부부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공감 에세이다. 자녀 없는 결혼 생활을 택한 저자 이수희는 직접 꾸린 무자녀 부부 커뮤니티에서 만난 부부 10여 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목소리를 책에 담았다.

| 인터뷰 저자 이수희

자녀 없는 삶을 택한 이유는. 

“결혼하고 주변 성화에 못 이겨 난임 치료 병원을 찾았다. 여러 차례의 시술로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졌다. 남편과 고심 끝에 출산과 육아만이 행복을 위한 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무자녀 부부가 겪는 대표적 편견은 뭔가. 

“난임 부부는 불행할 것이라 여기고, 난임이 아닌데도 딩크족이라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치부한다. 명절에 가사노동을 하거나 부모님 용돈을 드려야 할 때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더 큰 부담을 지라는 요구도 흔하게 받는다.” 

자녀를 낳으라는 요구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부부가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이라면 주변 사람들이 그 결정을 옳은 것이라고 믿어줄 필요가 있다.”


4. 누군 취업하기 싫어 안 하나요?

“취업이 어려운 만큼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저를 향한 가족의 시선도 견디기 힘듭니다. 이번 추석에 용기를 내 가족 행사에 참석했다 후회했어요. 할아버지는 ‘고생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는데 요즘 젊은 것들은 너무 유약하다’고, 작은아버지는 ‘민주화운동을 한 우리 세대처럼 세상을 바꿀 노력을 하라’고 하시더군요. 이거 다 너무 옛날얘기 아닌가요?” 2년 차 취업준비생 김모(27) 씨


[사진 제공 ·시대의창]

[사진 제공 ·시대의창]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직원들에게 책 ‘90년생이 온다’를 선물했다.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고민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처럼 이 시대에 ‘청년’이라는 키워드는 여러모로 ‘핫’하다. 취업난의 피해자인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걱정부터 ‘병맛 문화’를 즐기는 신인류에 대한 호기심 어린 시선까지 동기는 다양하다. 

하지만 ‘청년현재사 : 당신이 말하는 청년은 우리가 아니다’(시대의창)의 공저자 김창인은 이러한 기성세대의 청년 프레임이 오히려 이들을 대상화하고 신비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성세대가 자신들이 원하는 청년의 이상적 모습을 설정하고 여기에 현실을 끼워 맞추려 한다는 지적이다. ‘청년현재사’는 김창인과 동료 연구진이 2017~2018년 102명의 청년을 심층 인터뷰해 노동, 실업, 주거 등에 관한 청년 담론을 정리한 책이다.

| 인터뷰 저자 김창인

기성세대의 청년 담론이 갖는 문제점은. 

“자신들의 경험에 비춰 청년을 재단하려 한다. 청년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해 비난하거나 386세대가 청년의 사회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명절은 청년이 화두로 떠오르는 계기가 된다. 

“미디어가 너무 자극적이고 고통을 전시하는 식으로 청년 빈곤 문제를 다룬다. 일정한 학벌을 갖추고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는 기존 사회적 가이드라인이 옅어지는 추세다. 진학, 취업, 결혼 등 안정적인 생애 경로에 대한 기성세대의 경험이 요즘 현실과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책에서도 대안적인 청년 담론이 보이지 않는다. 

“애초 목적인 청년 당사자들에 의한 청년 담론 만들기는 실패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하나의 세대론으로 묶어낼 수 없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성과이자 결론이지 않을까 싶다.”


5. 시어머니가 아들의 처가 방문을 싫어해요

명절 때 ‘할많하않’ 했던 당신에게 주는 위안의 말
“연애 시절 남편과 무엇 하나 어긋나는 점 없이 잘 지내 결혼을 결심했어요. 예식 비용부터 집 마련까지 양가가 똑같이 부담했습니다. 결혼 후 양가가 동등하게 교류하자는 취지였어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남편이 처가에 가는 걸 싫어해요. 이번 추석에도 이 문제로 남편과 싸웠습니다. ‘명절은 부부의 위기’라는 말이 실감 나요.” 결혼 2년 차 주부 박모(32) 씨


[사진 제공 ·알에이치코리아]

[사진 제공 ·알에이치코리아]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명절 다음 달인 10월 접수된 이혼소송은 전달 대비 29% 증가한 3374건이었다. 2017년 추석 이후에도 이혼소송 건수는 27.6% 늘었다. 올해도 비교적 짧았던 나흘간의 추석 연휴가 끝나기 무섭게 이혼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는 게 일선 변호사들의 전언이다. 

최유나 이혼 전문 변호사도 “연휴가 끝난 월요일 오전부터 이혼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명절 후에는 평소 대비 2배 이상 문의가 늘어난다. 명절이 이제까지 축적된 갈등을 폭발시키는 방아쇠 구실을 한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연재하는 이혼소송 안팎의 모습을 그린 만화를 묶어 최근 책 ‘우리 이만 헤어져요’(알에이치코리아)를 펴냈다.

| 인터뷰 저자 최유나

명절 후 이혼 상담의 특징은. 

“며느리의 과도한 가사노동이나 고부 갈등에 대한 상담이 가장 많다. 하지만 최근 장모와 마찰을 호소하는 남성도 늘고 있다. 장모가 사위의 벌이에 불만을 가져 갈등이 심화된 것이 일반적이다. 요즘 남성들은 가계를 자기 혼자만 떠안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 

‘변호사와 만화’는 특이한 조합이다. 

“결혼과 이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지만 공통점도 적잖다. 각자가 처한 환경에서 오는 입장 차이가 갈등의 씨앗이 된다. 만화로 그런 이야기를 다룬다면 이혼 전 참고나 이혼 후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혼을 고려할 때 유념할 점은. 

“의뢰인의 부모는 ‘별것 아닌 이유로 이혼하려 든다’며 자녀의 이혼 결심을 만류해달라고 하는 반면, 또래 친구들은 ‘참고만 있어 답답하다’며 의뢰인의 이혼을 촉구한다. 결혼을 유지하는 것도, 끝내는 것도 주변 사람의 눈치와 압력이 아닌 오롯이 당사자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






주간동아 2019.09.20 1206호(창간기념호②) (p62~65)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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