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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의 미식세계

염소젖으로 만든 국산 ‘고트치즈’의 맛

염소젖으로 만든 국산 ‘고트치즈’의 맛

산뜻한 맛이 좋은 염소젖 요구르트(왼쪽). 노란색과 흰색이 뒤섞인 독특한 체더치즈. [사진 제공·김민경]

산뜻한 맛이 좋은 염소젖 요구르트(왼쪽). 노란색과 흰색이 뒤섞인 독특한 체더치즈. [사진 제공·김민경]

낯선 것은 언제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행의 묘미가 바로 그렇다. 다른 나라, 다른 마을에서 보는 타인들의 평범한 일상은 우리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생김새가 다른 산, 나무, 풀, 들짐승을 보다 보면 어디에나 있는 똑같은 하늘도 다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목가적’이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사실 어떤 느낌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스무 살 넘어 다른 나라로 여행을 다니면서 발견한 목가적 풍경에는 몇 가지가 있다. 드넓은 초원에 그림처럼 노니는 낯선 모양의 소떼, 초록의 산에 솜털을 뜯어 놓은 듯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양떼가 그랬다. 서글프게도 한국에선 이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 대신 우리에게는 암벽 등반 선수이자 대식가이며 잡식가인 귀여운 염소가 있다.


산양의 귀한 젖으로 만드는 유가공품 천국

‘상남치즈’의 염소들. [사진 제공·상남치즈]

‘상남치즈’의 염소들. [사진 제공·상남치즈]

북슬북슬한 털을 가진 양(sheep)은 본래 젖과 고기를 얻고 털도 쓰기 위해 키우는 가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양이 흔하지 않아 체험관광이나 관상용으로 많이 키운다. ‘양떼목장’이라는 이름의 관광지들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전남 구례군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상남치즈’에서 키우는 ‘산양’의 정체는 뭘까. 바로 염소(goat)다. 그중에도 ‘유용종’, 즉 젖을 짜기 위한 염소다.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유산양’으로 분류한다. 한국에 있는 유산양의 90%는 ‘자아넨’ 품종이다. 이 외에 털을 얻기 위해 키우는 염소도 있다. 이름도 익숙한 ‘앙고라’ ‘캐시미어’ 품종이다. 

현재 ‘상남치즈’에서 키우는 염소는 40마리. 그중 젖을 짤 수 있는 염소는 평균 15마리가량 된다. 염소는 새끼를 낳은 후 8개월 정도 젖이 나오고, 한 마리에서 하루에 얻을 수 있는 젖의 양은 평균 2kg이다. ‘상남치즈’에서는 하루 평균 약 30kg의 젖으로 매일 유가공품을 만드니 15마리 이상의 염소가 필요한 셈이다. 이에 반해 홀스타인 소(젖소의 일종) 한 마리가 하루에 생산하는 젖의 양은 30kg이다. 이러니 생산량만 본다면 염소보다 젖소를 키우는 편이 훨씬 낫다. 하지만 젖소를 키우는 일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소는 덩치가 크고 발굽 모양이 평지에 적합하다. 그만큼 크고 넓고 평평한 땅이 필요하다. 반면 염소는 몸집이 작고 산이나 절벽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발굽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다. 소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드넓은 평지보다, 염소가 살아가기에 적합한 땅이 더 많은 것이다. 사료 문제도 있다. 사료를 엄청나게 먹여야 하는 소를 키우는 것보다 잡식인 염소를 키우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상남치즈’의 염소들은 낮에는 산 여기저기를 거닐며 실컷 풀을 뜯어먹고, 밤에는 축사로 들어가 잠을 잔다. 그야말로 지리산이 키우고 사람이 돌본다.


숙성에 따라 달라지는 신기한 치즈의 맛

1 ‘상남치즈’의 시그니처 치즈인 상남치즈. 2 언제 먹어도 맛 좋은 시방치즈. 3 짧게 숙성시킨 카망베르치즈. [사진 제공·김민경]

1 ‘상남치즈’의 시그니처 치즈인 상남치즈. 2 언제 먹어도 맛 좋은 시방치즈. 3 짧게 숙성시킨 카망베르치즈. [사진 제공·김민경]

염소나 양의 고기는 개성 있는 육향을 갖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그 육향이 우리에게 익숙지 않아 누릿하다는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독특한 향은 젖에서도 난다. 보통 ‘산양유젖’으로 불리는 염소젖 가공품을 맛보면 우유 가공품과 확실히 다른 향이 난다. 이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상남치즈’의 요구르트에서는 염소젖의 향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매일 짠 신선한 젖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동물 젖에 포함돼 있는 다양한 영양소는 보관 중에 분해되고, 산소와 만나면서 향이 진해진다. 신선한 염소젖으로 만든 요구르트는 먼저 고소한 맛이 나고, 새큼한 끝 맛을 따라 남다른 향이 스치듯 지나간다. 우유에서 나는 구수한 맛이나 향과는 다른 산뜻한 매력이 넘친다. 꿀이나 시럽, 과일청에 섞으면 더 맛나게 즐길 수 있다. 

독특한 향은 치즈로 만들어지면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치즈 종류와 시간에 따라 향은 변신을 거듭한다. 소젖으로 만든 치즈의 종류가 어마어마하듯 염소젖도 비슷하다. 염소젖으로 만든 카망베르치즈에서는 염소젖 특유의 향이 거의 나지 않는다. 숙성 기간이 2주가량인 염소젖 카망베르는 매끈하고 맑은 맛이 나는 ‘신선함’ 그 자체다. 질감이 쫀쫀하고 씹을 때 뽀드득할 정도로 탄력이 좋다. 이 상태에서 더 숙성시키면 크림처럼 말랑한 속과 흰 곰팡이로 뒤덮인 도톰한 껍질 층이 생긴다. 

체더치즈는 색채가 독특한데, 이는 김상철 치즈장인의 아이디어 덕분이다. 체더치즈는 진한 노란색이 특징인데 ‘상남치즈’에선 ‘안나토’(중남미 일대에서 자생하는 빅사 오렐라나 열매에서 추출한 안료)로 노란색 물을 들이되 그물망처럼 스며들게 특별히 제조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치즈는 저마다 고유한 미생물과 곰팡이를 활용해 만드는 레시피가 정해져 있다. 어디에서 만들든 카망베르치즈 제조법으로 만들면 카망베르치즈가 된다. ‘상남치즈’에서는 기존의 이름난 치즈도 만들지만, 창작 치즈도 선보인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상남치즈가 대표적이다. 

상남치즈는 우유에서 채취한 미생물을 염소젖에 활용해 만든다. 숙성시키는 동안에는 여느 치즈처럼 일정한 염도의 소금물로 치즈 표면을 닦아 겉이 단단해지게 한다. 숙성 기간이 길지 않음에도 충분히 깊은 맛, 고유한 향, 농밀한 질감이 느껴진다. 여러 요리에 두루 사용할 수 있고, 단맛이 좋은 과일이나 기름진 육가공품에 곁들이면 맛 좋게 먹을 수 있다. 

또 다른 창작 치즈로는 시방치즈가 있다. ‘지금 먹으면 된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만든 지 이틀째부터 먹을 수 있다. 사흘가량 숙성시킨 것을 맛봤는데 단맛은 빼고 은은한 신맛과 고소함만 남겨둔 크림치즈와 비슷했다. 

‘상남치즈’의 가공품이 특별한 이유는 치즈가 숙성되는 과정에서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는 일정 기간 숙성시켜 출시하는 완제품 치즈만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남치즈’는 숙성에 따라 달라지는 맛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치즈의 숙성은 무한하고 맛에도 정답이 없는데, 그 여정에 우리도 이제 한 입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화 잘 되는 염소젖 가공품

염소젖으로 만든 가공품은 소젖으로 만든 것보다 소화가 잘 된다. 소화불량을 일으킬 수 있는 유단백질이 우유에 비해 훨씬 적어서다. 유제품을 먹고 설사가 잦다면 염소젖 가공품에 도전하라. 설사를 하는 이유는 대개 유당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효소인 락타아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산양유는 유당 함량이 낮다. 그래도 설사나 소화불량이 두렵다면 산양유보다는 산양발효유나 숙성치즈를 먹는 편이 안전하다. 게다가 염소젖은 알레르기 반응이 거의 없고, 영양성분이 모유와 비슷하다는 장점이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염소젖에 들어 있는 지방 입자가 너무나 작아 버터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대신 신선한 젖을 보관해도 분리되지 않고, 쉽게 산패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치즈메이커 김상철
[사진 제공·김민경]

[사진 제공·김민경]


치즈와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전북 임실군에서 태어나 20대 초반부터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스위스 등지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임실군에서 계속 우유로 요구르트, 치즈 같은 가공품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25년가량 치즈를 만들었고, 산악 지형인 구례군으로 이사하면서 원료를 소젖에서 염소젖으로 바꿨다. 요즘에는 치즈 생산과 함께 치즈를 제대로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상남치즈’에서 만들고 있는 치즈는 몇 가지 정도인가. 

“상시 만드는 것은 5~7가지다. 카망베르치즈, 체더치즈, 블루치즈, 베르크치즈, 상남치즈, 시방치즈 등이며 요구르트도 만든다. 이름만 보면 소젖이 원료인 치즈들이지만 염소젖으로 만들면 색다른 풍미와 맛을 지니게 된다.”
 
주소 전남 구례군 구례읍 수달생태로 21






주간동아 2019.08.09 1201호 (p78~80)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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