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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生보다 死 택하는 기업들 ②

한국 게임에서 ‘허리’가 사라진다

중소 게임업체 파산 확산 조짐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한국 게임에서 ‘허리’가 사라진다

FPS(First Person Shooter·1인칭 슈팅게임) 장르 게임 속 한 장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Interwave Studios]

FPS(First Person Shooter·1인칭 슈팅게임) 장르 게임 속 한 장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Interwave Studios]

“게임업계 허리에 해당하는 업체들이 속속 쓰러지는 가운데 꽤 괜찮은 회사로 평가받던 A사도 결국 버티지 못했구나 싶었다. 한국 게임의 핵심 동력이 사라지고 있다.” 2006년 설립해 120억 원대 매출을 내던 게임개발사 A사의 파산 소식에 국내 게임업체 관계자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최근 들어 익숙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7월 19일 서울회생법원은 A사에 대해 파산을 선고했다. A사는 지난해 4월 법원에 법인회생 절차를 신청하고 같은 해 8월 인수합병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인수합병이 무산됐고, 올해 3월 회생절차도 폐지돼 결국 3개월 뒤 파산에 이르게 됐다.


게임 규제 분위기에 인수 불발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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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다른 관계자는 “한 투자자가 인수 의향을 밝히고 계약금을 납부했지만, 해당 업체의 사업성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 매각이 불발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코드에 추가하고 유럽 국가들도 게임 규제 움직임을 보이는 등 악재가 작용한 탓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A사는 2007년 FPS(First Person Shooter·1인칭 슈팅게임) 장르의 게임을 출시했다. FPS는 이용자가 온라인상에서 1인칭 시점으로 다른 이용자와 전투를 벌이는 개인용 컴퓨터(PC) 게임 장르다.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실제 전투에 참여한 듯한 박진감을 느낄 수 있어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 PC 게임시장에서 청소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널리 인기를 끌었다. 이 게임은 당시 방대한 세계관과 사실적인 그래픽으로 여러 FPS 게임 중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가상국가의 전쟁에 이용자가 참전한다는 게임 콘셉트에 맞춰 A사 개발자들이 유럽 현지를 답사하는 등 공을 들이기도 했다. 출시 직후 국내의 권위 있는 게임 분야 상을 휩쓸었고 미국, 중국, 일본 등 해외시장에도 진출했다. 

하지만 급변하는 시장 변화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A사는 이 게임 이후 별다른 히트작을 내지 못했다. 2010년 새로운 FPS 장르 게임의 베타 버전을 공개했지만, 이후 추가 개발 기간이 길어지면서 정식 출시에 실패했다. 개발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였지만 이렇다 할 수익을 내지 못한 것이다. 이후에도 몇몇 신작 게임을 출시했으나 역시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결국 거액의 부채를 떠안은 채 파산에 이르렀다. A사의 2017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 업체의 부채 규모는 240억 원. A사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A사가 꾸준히 신규 게임을 개발했지만, 판매가 부진해 개발비를 회수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부채가 누적되다 파산에 이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A사 게임의 배급을 맡은 B사는 “A사의 해당 게임은 오랜 기간 충성도 높은 이용자를 확보해왔지만, 모바일 게임 비중이 커지는 등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매출이 계속 감소했다”고 밝혔다. 기존 이용자들은 해당 게임을 더는 하지 못하게 될까 봐 걱정이다. 이미 해외에서 해당 게임 서비스가 속속 종료돼 현재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B사는 “남은 계약 기간까지 서비스를 이어갈 예정”이라면서도 “계약 만료 후에도 안정적인 서비스 운영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 여진에도 타격받아

A사의 파산은 후속 히트작을 내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회사의 역량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최근 국내 게임업계 현실이 녹록지 않다. 업계 관계자들은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을 둘러싼 한중 갈등 이후 중국이 자국 게임시장 문호를 닫은 것이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한 게임개발사 관계자는 “사드 논란 후 중국 측으로부터 판호(版號)를 받은 국내 게임업체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안다”며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 진입이 막혀 국내 게임업계의 성장동력이 둔화됐다”고 말했다. 

판호는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가 발행하는 일종의 서비스 허가권이다. 판호를 얻어야 중국에서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다. 중국은 지난해 초 해외 업체의 신작 게임에 대한 판호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 12월 펑스신(馮士新)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판권국 부국장이 “다시 판호를 발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새로 판호를 받은 국내 게임업체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기준 2100억여 위안(약 36조570억 원) 규모인 중국 게임시장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한국 게임에서 ‘허리’가 사라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 콘텐츠산업 통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1만5000여 개이던 게임산업 사업체 수는 점차 줄어들어 2017년 1만3000여 개로 감소했다(그래프 참조). 중국 진출이 본격적으로 어려워진 2016년과 2017년 전체 사업체 수가 574개 더 늘었지만 이는 PC방 증가에 따른 착시 효과다. 이 시기 실제 게임 콘텐츠를 개발하고 배급하는 업체 수는 2016년 908개에서 이듬해 888개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내 게임업체를 대표하는 이른바 ‘3N’의 상황은 나은 편이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은 풍부한 자금력과 탄탄한 연구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각각 1조 원 이상 매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이 중 1위인 넥슨은 2018년 2조5000여억 원의 매출액과 1조 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문제는 A사 같은 ‘2군’ 게임사들이다. “자본이 많은 상위 게임업체는 이것저것 해볼 수 있지만, 여느 국내 중소기업들이 그렇듯 게임업계에서도 군소 업체들은 자금 여력이 없어 어려운 시장을 돌파해갈 시도를 해볼 수 없다”는 것이 게임업계 종사자의 전언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외부 전문가들에게 의뢰해 펴낸 ‘콘텐츠산업 2018년 결산 및 2019년 전망 보고서’는 ‘대형 게임사와 중소형 게임사 간 벌어지고 있는 수익의 양극화 현상’을 경고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3N 외에 1000억 원 이상 매출을 내는 9개사의 전체 매출을 합치면 넥슨 1개사와 비슷한 2조7000억 원이다.


‘콘텐츠 다양화’하려면 중소 게임업체 살려야

국내 대표 게임업체인 넷마블, 넥슨, 엔씨소프트(왼쪽부터). [뉴시스]

국내 대표 게임업체인 넷마블, 넥슨, 엔씨소프트(왼쪽부터). [뉴시스]

업계 후발 주자들은 새로운 기술과 콘텐츠로 위기 돌파에 애쓰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6월 서울회생법원의 파산선고 결정이 내려진 C사가 그렇다. C사는 2017년 국내외 VR(Virtual Reality·가상현실) 게임 콘텐츠업체가 함께 세운 합자회사다. C사는 투자사들이 개발한 VR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 운영을 맡아 지난해까지 수도권에서 매장을 5개로 늘렸다. 하지만 아직 소비자들은 VR 게임을 ‘일상적으로’ 즐기지 않았다. 어쩌다 한번 이용해보고 마는 수준이었다. C사에 투자한 회사 관계자는 “애초에 VR 콘텐츠를 오프라인에서 검증하는 테스트베드(Test Bed) 성격으로 C사를 세운 것”이라며 “수익이 나지 않아 법인을 정리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파산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반도체나 선박은 대규모 투자와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몇몇 대기업에서 주도적으로 생산한다. 게임 역시 그래도 될까. ‘콘텐츠산업 2018년 결산 및 2019년 전망 보고서’ 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탄탄한 기획으로 제작되는 게임의 성공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은 장기적으로 콘텐츠 질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임상혁 변호사(법무법인 세종)는 “중소 게임업체들은 자금을 확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한다. 제작 비용이 적은 모바일 게임 개발에도 최소 10억 원이 필요한데,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이 제공하는 무담보 대출이 1억~2억 원 수준에 불과하고 시중은행도 대출을 꺼린다는 것이다. 게임 콘텐츠가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임 변호사는 “국내에서는 게임의 지식재산권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아 경영난에 빠진 중소 게임업체의 경우 법인회생을 신청하더라도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게 나오기 어렵다”며 “게임 콘텐츠에 대한 지식재산권 담보 대출이 원활하게 이뤄졌다면 A사도 회생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9.08.02 1200호 (p25~27)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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