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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부실수사 뒤 직권남용죄 남발, 정치보복 ‘부메랑’으로 돌아간다

부실수사 뒤 직권남용죄 남발, 정치보복 ‘부메랑’으로 돌아간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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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생소한 국민도 언제부터인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라는 법률 용어에 익숙해졌다. 사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는 검찰을 포함한 수사기관에서도 흔하지 않은 범죄였고, 기소로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희귀했다. 특별수사를 주로 전담하면서 23년 넘게 검사로 재직했던 필자도 이 죄로 의율한 사건을 손꼽을 정도다.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면 2002년 한 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에서 모시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으로 기소했는데, 요지는 주상복합아파트의 시행사 대표에게 압력을 넣어 아파트 설계비의 40%인 34억6000만 원 상당을 건축사사무소에 맡기도록 해 3억 원의 이익금을 낼 수 있게 한 혐의였다. 이 사건 재판부는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시장이 개인적으로 취득한 이익이 전혀 없는 점 등의 사정을 참작한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탄핵으로 물러나고, 전 정권에 대한 이른바 ‘적폐수사’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라는 죄명은 서로 떼어내고 싶어도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처럼 됐다. 이제 검찰의 고위 공무원이나 정치인 수사에서 이 죄명이 없다면 뭔가 2% 부족한 느낌이 들 정도다.


금품과 증거 규명 어려워지자 ‘傳家의 寶刀’로 비쳐

과거에는 공무원의 업무상 실수가 있어도 뇌물이 나오지 않으면 단순히 직권남용으로만 기소하는 사례가 드물었다. 단순히 직권남용으로만 기소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수사로 비쳐 뇌물 규명에 수사를 집중한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금품 수수 수사가 증거인멸 등으로 점점 어렵게 되자 종전처럼 금품 거래가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졌다. 또 금품 거래가 없더라도 부적절하게 업무를 처리한 공무원이나 이에 가담한 사람을 처벌하지 못할 경우 부실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고, 잘못된 불법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공감대도 어느 정도 형성됐다. 수사기관으로서는 이 직권남용죄의 적용이 전가의 보도처럼 보일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러한 수사 방식에 대해 일각에서는 ‘걸려고 마음만 먹으면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등 그 부작용과 위험성을 경고한다.
 
또 다음 정권에서 혹시라도 문제 삼을 만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공직자들이 업무회의도 다 같이 모여서 하기보다 국장급과 과장급이 따로 하는 경우가 많고, 업무 지시도 일대일로 이뤄지며, 전화로 지시할 경우 심지어 녹음까지 하고, 정책 보고서를 만들 때는 ‘과장 수정’ ‘국장 수정’을 표기해 보관하며, 정책 방안이 바뀔 때는 그 과정을 상세히 기록해 나중에 책임 추궁이 있을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것이다.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적폐청산 작업으로 이전 정권의 지시나 정책 방향에 따라 일을 한 관료들이 형사처벌까지 받으니 상부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엔 깨알같이 메모해 자기 방어막을 친다고 한다. 이는 국가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잘못된 수사 제어 수단 없어 ‘새털’ 의혹에도 남발

2018년 1월 30일 재판을 받고 있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오후 경기 수원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고 있다. 7월 22일 보석이 허가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구치소 정문을 걸어 나오고 있다. 올해 최경환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4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뒤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왼쪽부터). [뉴시스, 동아일보]

2018년 1월 30일 재판을 받고 있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오후 경기 수원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고 있다. 7월 22일 보석이 허가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구치소 정문을 걸어 나오고 있다. 올해 최경환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4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뒤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왼쪽부터). [뉴시스, 동아일보]

무엇보다 문제는 직권남용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수사기관, 특히 검찰조사에서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에 따라 부당한 수사나 기소를 결재 단계에서 거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중요 사건의 기소 여부를 수사자문위원회 등 외부 인사들이 결정하는 시대를 맞았다. 의욕을 앞세운 잘못된 수사를 정당하게 제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언제든 정당한 결재권자에서 직권을 남용한 상사로 처벌받을 수 있게 됐다. 

직권남용의 무리한 수사 사례로는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박 전 대장은 당초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 구속까지 된 사건의 단초가 된 공관병에 대한 ‘갑질’이라는 직권남용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별건으로 기소된 뇌물 수수혐의조차 무죄가 선고됐다. 공직자에게 제기된 조그마한 의혹도 직권남용으로 고발될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접수된 1만4502개 사건의 불기소율은 96%가 넘는다. 2016년 5044건이던 접수 건수는 지난해 대폭 급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8215건에 이르렀다. 



최근 배득식 전 국군기무사령부 사령관 변호인단이 법원에 직권남용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국정농단 사태를 비롯해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등에서도 관련자들에게 직권남용 혐의가 무더기로 적용된 만큼 이번 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위헌 논란이 다시 불붙으면서 관련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배 전 기무사령관의 변호를 맡은 권성 변호사는 2006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헌법소원심판에서 “정치보복에 이용될 수 있다”며 소수의견인 위헌을 주장했던 헌법재판관 출신이다. 권 변호사는 당시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 ‘모호한 직권남용죄 조항은 정권교체 후 정치적 보복을 위해 전(前)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을 처벌하는 데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냈는데,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 이용될 위험도 크다는 의미였다. 

형법 제123조에서는 이 죄에 대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이 형식상 일정하고 일반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사항에 관해 직권행사에 가탁해 실질적으로 위법한 목적으로 그 부여된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할 때 이 죄가 성립된다. 

실무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직권남용과 의무 없는 일을 시킨 행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먼저 직권남용에서 ‘직권’이란 형식적이거나 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처럼 보이나, 그 실질은 정당한 권한 이외의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인 권한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경우인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와 구별된다. 아무런 직권도 없는 자의 행위 또는 직권과 전혀 관계없는 권한을 모용하거나 직권을 사칭한 행위는 이 죄와 무관하므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와 통설의 견해고, 최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무죄 논거로도 인용되고 있다. 

의무 없는 일을 행하게 하는 경우란 법령상 의무가 없는 자에게 이를 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 의무는 법률상 의무이므로 단순한 심리적 또는 도덕적 의무를 포함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권리행사를 방해한다고 함은 법령상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의 정당한 행사를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부당한 영업정지 명령이나 담당공무원의 부당한 인허가 거부로 권리행사나 권리발생을 방해하는 것이 그 예다. 

판례에 따르면 공무원의 직권남용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권리행사의 저해가 없다면 이 죄를 인정할 수 없다. 경찰이 증거 수집을 위해 정당지구당 집행위원회 회의장소인 음식점에 몰래 도청기를 설치했으나 회의 개최 전 발각돼 도청기가 제거된 사건에서 현실적으로 권리행사가 방해되지 않았으므로 이 죄가 성립되지 않았고, 주거침입죄만 인정했다.


버닝썬 사건, 채용비리 사건 등에 적용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관련 사례로는 버닝썬 사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관련 사건, 최경환 전 국회의원의 무죄 사건 등을 꼽을 수 있다. 

경찰은 버닝썬 사건에서 소위 ‘경찰총장’으로 불린 경찰 간부 윤모 총경의 의혹 규명에서 부실수사 비난을 받았다. 윤 총경은 2016년 7월 말 가수 승리와 유인석 전 유리홀딩스 대표가 서울 강남에 개업한 주점의 식품위생법 위반 신고가 들어오자 서울 강남경찰서 경찰관들을 통해 단속 내용을 확인한 뒤 유 전 대표에게 알려준 혐의를 받았다. 경찰은 수사 인력을 152명 투입해 그중 56명으로 하여금 경찰 유착 의혹을 캐게 해 50명의 참고인 조사, 골프장, 식당 탐문 수사, 통화 기지국 비교 등을 진행했다. 그러나 조직의 명운을 건 수사에서 윤 총경에 대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와 관련해서는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말았다. 부실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하자 수사 성과로 내세운 유일한 혐의가 바로 직권남용이었다. 향후 검찰의 처분에 이목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전 경제수석비서관의 사기업 인사 개입 의혹에 대해 법원은 직권남용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대통령이나 경제수석비서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사기업인 KEB하나은행 본부장 임명에 개입했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직무 권한에 속하지 않음이 명백하고, 경제수석비서관 등이 대통령의 뜻임을 암시하는 말을 했다 해도 그 같은 사실만으로 직무집행으로 보이는 ‘외관’이 존재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경환 전 국회의원 사건은 검찰 측에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채용비리 사건에서 기본적인 법리 구성의 모델이 된 사례고, 최근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에도 이론적 단초가 됐기 때문이다. 최 전 의원이 자신의 의원 사무실 직원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게 반말로 얘기하면서 반드시 채용하라고 요구해 합격시킨 사안에서 1심과 항소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남용은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정당한 권한 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그러한 외관을 갖추지 못한 채 개인적 친분관계 또는 사실상의 세력을 이용하거나,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 없는 사회적·경제적 지위 또는 신분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설령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 해도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했다. 직원 채용을 요구하는 행위는 국회의원으로서 지위나 신분을 이용한 불법행위에 해당할 뿐 직권남용죄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법리 문제가 아니라 아예 직권을 남용했다는 사실관계 자체가 인정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된 사례로, 검찰의 부실수사 내지 과잉수사 문제가 대두됐다.


현 정부 공무원들과 KBS에도 부메랑으로 돌아가

7월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교안 대표(왼쪽에서 네 번째)와 나경원 원내대표(왼쪽에서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정권 홍위방송 KBS 각성하라’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7월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황교안 대표(왼쪽에서 네 번째)와 나경원 원내대표(왼쪽에서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정권 홍위방송 KBS 각성하라’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사법부 수장으로서 최초로 구속돼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다 최근 보석으로 석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47개 공소사실 중 41개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고유의 권한을 남용해 재판에 깊이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 개입이 대법원장의 직무 권한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향후 치열한 법리 논쟁과 사실관계 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직권남용죄의 무리한 적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정권이 바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벌써부터 현 정부에 부메랑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언론보도에 의하면 현 정부의 태양광사업 의혹을 보도한 KBS ‘시사기획 창’의 외압 의혹과 관련해 KBS공영노조와 시민단체 등이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했는데, KBS공영노조는 “박근혜 정부 시절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당시 보도국장에게 전화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소됐다”며 “이번에는 청와대가 출입 기자를 통해 방송사에 압력을 행사했고 결국 재방송까지 결방되는 등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현 정부 공무원들을 상대로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는 일도 시작됐다. 대전지방검찰청은 6월 5일 교육부 과장급 직원 A씨와 장학사 B씨 등 2명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사문서 위조교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교과서정책 담당과장이던 A씨는 2017학년도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교과서에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재된 부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수정하는 등 국정 사회교과서 수정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은 4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뒤 환경부 산하 기관장들을 임기 도중 사표를 쓰고 나가도록 압박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현 정권에서 임명됐다. 

국가권력이 잘못을 저지른 공무원을 단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수사 편의를 위해 직권남용권리행사를 이용한다면 그 자체가 직권남용이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 수사 당사자 자신에게 적용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19.07.26 1199호 (p40~43)

  • 김영종 법률사무소 송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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