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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맘이어도 괜찮아

‘아빠의 용기’에 더는 기대지 말자

남성 육아휴직 확대하려면 낮은 소득대체율과 사회적 ‘눈총’ 해소해야

‘아빠의 용기’에 더는 기대지 말자

[뉴스1

[뉴스1

얼마 전 스웨덴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스웨덴의 남성 육아휴직자들을 만났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빠도 육아의 공동주연”이라는 김 여사의 발언을 흐뭇하게 읽어 내려가던 나는 “한국 남자들도 ‘용감하게’ 육아휴직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라는 대목에서 숨이 턱 막혔다. 자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른 채 직장에서 일에 매달리고 있는 수많은 한국 아빠가 순식간에 ‘용기 없는 남자’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아빠의 육아휴직이 과연 용기의 문제일까. 


‘아빠의 용기’에 더는 기대지 말자
남성 육아휴직에 관한 국제 비교연구를 하다 보면 두 번 놀라게 된다. 먼저 아빠가 사용할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이 각각 53주와 52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을 보장한다는 대목에서 놀란다(그래프 참조). 그다음은 프랑스로 28주에 불과하다. 스웨덴은 14주, OECD 회원국 평균은 8주다. 한국이 이렇게나 선진적인 제도를 갖고 있다니! 

이번에는 실제로 육아휴직에 참여하는 남성의 비율을 보고 놀랄 차례다(표 참조). 2017년 기준으로 한국과 일본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율은 각각 13.4%, 5.1%에 불과하다. 그나마 한국은 2013년 3.3%에서 최근 급격히 증가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45.6%), 스웨덴(45.0%), 포르투갈(43.0%) 등과 여전히 큰 차이가 난다. ‘파격적인’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용은 적은 편에 속하는 것이다.


‘아빠의 용기’에 더는 기대지 말자

아빠의 ‘육휴’ 급여, 월급 반 토막도 안 돼

왜 그럴까. 남성 육아휴직에 친화적이지 않은 사회 분위기가 가장 많이 거론된다. 한 지인은 몇 년 전 사내 최초로 아빠 육아휴직을 신청하겠다고 했다 “정신 나갔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또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한 직원은 생산설비가 있는 지방의 사원 아파트에 거주하는데, 육아휴직 중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회사 상사로부터 “자네 사표 쓴 거 아니었나”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물론 육아휴직 혹은 육아에 따른 유연근무를 향한 ‘눈총’이 한국 사회의 전유물은 아니다. 유럽 남자들도 육아휴직을 쓰면 일에 대한 충성도(commitment)가 낮다는 평가를 받을까 봐 걱정한다(스웨덴은 제외인 듯하다). 일례로 나와 함께 일했던 벨기에 남성 연구원이 “아내와 육아를 분담하려고 두 시간 일찍 출근해 두 시간 먼저 퇴근하는데, 업무량이나 업무시간이 같은데도 내가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고 보는 동료들 때문에 속상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유럽 아빠들은 한국 아빠들보다 용감해 여러 눈총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한국 아빠들은 ‘출세를 포기한 것처럼 보일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돈이다. 2014년 여성정책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남성 근로자가 육아휴직 사용에 부담을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은 육아휴직에 따른 소득 감소(41.9%)였다. 승진 등 직장 내 경쟁력에서 뒤처짐(19.4%), 동료들의 업무 부담(13.4%)이 그 뒤를 이었다.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부담’이라는 응답은 11%에 불과했다.


육아휴가 기간 ‘부장님’ 일 맡아줄 사람 있나

미국 보스턴대(Boston College) 조사에서도 조사 대상 남성 근로자 대부분이 육아휴직 사용을 희망했지만, 85%의 응답자가 ‘육아휴직 기간에 월급의 70% 이상을 받지 못한다면 사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한국은 최근 남성 육아휴직 급여를 다소 인상했지만, 남성 육아휴직 참여율이 높은 국가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육아휴직 급여의 소득대체율이 노르웨이 97.9%, 스웨덴 76%, 심지어 일본도 58.4%이지만 한국은 2016년 기준으로 32.8%에 불과하다. 아빠가 가정의 주부양자인 경우가 많고, 가뜩이나 높은 주거비와 사교육비 등으로 생활비 및 육아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어지간한 금수저가 아니고서야 아빠가 육아휴직을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므로, 스스로 선택한 ‘휴직’이므로 금전적 손실을 감당해보기로 마음먹을 수도 있다. 육아휴직을 선택한 여러 남성이 그간 저축한 돈을 헐어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고, 소비를 대폭 줄였다고 얘기한다. 계획하지 않은 늦둥이가 갑자기 생겨 육아휴직을 감행했다는 한 아빠는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초등학생 두 딸의 학원을 모두 끊고 내가 직접 가르쳤고, 가족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 몇 년간 저축한 2000만 원을 생활비로 썼다”고 말했다. 

물론 돈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 2017년 일본 조사에 따르면 소득대체율이 웬만큼 되는데도 불구하고 남성 육아휴직 참여율이 낮은 가장 큰 원인으로 ‘일손 부족’이 꼽혔다. 대체인력이 없어 육아휴직자의 빈자리가 곧바로 동료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국 사정도 다르지 않다. 동료가 임신하면 축하해주기 전 얼굴 표정부터 굳는 일이 드물지 않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산모도 아닌 아빠의 육아휴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늦맘의 남편들, 40대에 자녀를 낳은 남성들은 많은 경우 부·차장급의 ‘팀장’이다. 부장이 육아휴직을 선언한다? 이는 곧장 사직으로 연결될지도 모를 일이다. 스웨덴 국회의원은 90%의 급여를 받으며 9개월간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기간 해당 국회의원의 업무는 ‘대리 의원’이 수행한다. 스웨덴과 한국의 차이는 이처럼 크다. 


스웨덴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6월 14일(현지시각) 스톡홀름 훔레고든 공원에서 ‘라테파파’(육아휴직 후 아이를 키우는 남성들)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스웨덴을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6월 14일(현지시각) 스톡홀름 훔레고든 공원에서 ‘라테파파’(육아휴직 후 아이를 키우는 남성들)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스웨덴 역시 하루아침에 남성 육아휴직 참여율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1974년 남성 육아휴직을 개시했을 때 이를 사용한 소수의 남성은 ‘벨벳 아빠들(Velvet Dads)’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집에서 벨벳으로 만든 편안한 옷을 입고 아기나 돌보는 팔자 좋은 남성이라는 뜻에서다. 이후 정책적 뒷받침이 이어졌지만 1991년까지도 육아휴직에 나서는 남성은 6%에 불과했다. 스웨덴에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아빠의 달(Daddy’s Month)’로 불리는, 오직 남성에게만 허용된 30일간의 육아휴직제도가 도입되면서부터다. 이는 부모의 육아휴직 가운데 최소 30일은 아빠가 쓰도록 강제하고, 만일 아빠가 쓰지 않더라도 엄마에게 양도할 수 없게 한 제도다. 이 제도가 도입·확대되기까지 지난한 토론과 설득, 고민, 사회적 합의가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이 제도를 주창한 정치인 베스테르베리스(Westerbergs)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성 육아휴직은 남성과 아이의 권리를 위한 것이다. 아빠에게는 직장을 벗어나 좀 더 완전한 삶을 살 권리가 있다. 아이에게도 어린 시절을 엄마, 아빠 모두와 함께 보낼 권리가 있다. 남성이 해내는 여러 역할 가운데 진정으로 대체 불가능한 것은 아빠로서 역할이다.”


실효성 있고 창의적인 정책 계속 추진해야

지난 주말 아이와 함께 찾은 서울 한 키즈카페에서 여섯 명의 아빠가 각자 서너 살 된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온 것을 목격했다. 엄마 없이 아빠가 키즈카페에 아이를 데려오는 모습은 종종 보이지만, 단체로 온 것은 처음 봤다. 머리가 약간 희끗한 한 아빠는 “토요일이라도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아내에게 토요일마다 발레를 배우라고 했다”고 말했다. 다른 아빠들도 평일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아 주말이라도 아내에게 휴식시간을 줄 겸 아이와 오붓하게 추억을 쌓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맞장구를 쳤다. 주52시간 근무제 덕분일까. 최근에는 어린이집 등·하원을 아빠가 시키는 경우도 부쩍 눈에 띈다. 유치원 학부모 모임에 아빠가 나오는 경우도 이제 드물지 않다. 

내가 주변에서 만나는 아빠들은 이미 충분히 용감하다. 키즈카페에서 만난 아빠들처럼 주말에 늦잠 대신 아이와 외출을 택한다. 평일에 애쓰는 아빠들도 없지 않다.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한 부장 아빠는 아기 목욕이라도 자신이 직접 시켜주고 싶어 점심시간마다 잠깐씩 집에 들르고, 또 다른 아빠는 아이와 저녁을 먹은 뒤 밀린 일을 하고자 다시 회사로 간다. 

육아휴직까지 아빠의 용기에 기대지 말자. 남성의 육아휴직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누구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한국적 현실에 맞는 실효성 있고 창의적인 정책을 계속 개발해야 한다. 아빠의 육아휴직 기간을 법적으로 보장해놓는 것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주간동아 2019.06.28 1195호 (p56~58)

  • 전지원 토론토대 글로벌사회정책연구센터 연구원 blog.naver.com/latermotherh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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