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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 막말의 정치학

선거 앞두고 인지도 · 지지도 올리기

유권자가 선거 때 막말 정치인 솎아내지 않으면 막말정치는 더욱 활개 칠 것

선거 앞두고 인지도 · 지지도 올리기

문재인 대통령이 5 · 18민주화운동 추념사에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 · 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연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5 · 18민주화운동 추념사에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 · 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연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치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막말이 터져 나오고 있다.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올해 들어 포문을 연 것은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이다. 2월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었다는 걸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자리에서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도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내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발언했다.


막말×정치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5월 21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진짜 독재자의 후예에게는 말 한마디도 못 하니까 지금 여기서 대변인 짓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5월 21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진짜 독재자의 후예에게는 말 한마디도 못 하니까 지금 여기서 대변인 짓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뉴시스]

2월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황교안 대표가 선출된 이후 막말 공세는 더 거세졌다. 황 대표 스스로 보궐선거 기간 내내 좌파독재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살았다. 최근에도 경제위기가 좌파경제 폭정 때문이라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도 황 대표 못지않다. 나 원내대표의 대표적인 막말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세력을 ‘달창’으로 부른 것이다. 이외에도 차명진 전 의원이 세월호 유족을 향해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징하게 해 처먹는다’는 글에 이어, ‘문재인은 빨갱이’라는 글을 연달아 올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이 문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천렵질’ ‘피오르 관광’에 비유하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에 비유한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막말이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뭘까.


총선×공천
첫째, 총선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총선이 다가오면 국회의원들은 불안해진다.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 공천을 받아도 본선에서 이길 수 있을지 불확실하면 그 불안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땐 대략 두 가지에 집중한다. 일단 인지도 높이기다. 막말을 내놓으면 언론이 먼저 주목한다. 기사가 나가면 자연스럽게 이름이 알려진다. 당연히 지역구 유권자에게도 이름이 알려진다. 지역구 지지층 사이에서는 잘한다는 평가까지 받을 수 있다. 공천 과정에서 당 자체 지역구 여론조사는 필수다. 여론조사 결과 인지도와 지지도가 높게 나와야 탈락 가능성이 낮아진다. 인지도와 지지도가 높게 나와야 본선 경쟁력도 높아진다. 당 지도부로부터 점수를 잘 따는 방법이기도 하다. 

인지도 높이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코드 맞추기다. 당대표가 유력 차기 대권주자인 경우에는 이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당대표는 본인의 대선 경선 승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선 직전 총선거 때 가능한 한 자기 사람을 많이 심으려 한다. 최근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막말을 보면 황 대표의 이념적 성향에 코드를 맞추려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막말 대상 역시 황 대표의 최우선 타격 대상, 문 대통령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황 대표보다 앞서 문 대통령 비판에 나선다면, 또는 진보 세력의 공세에 맞서 황 대표의 총알받이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면 황 대표로부터 점수를 딸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표현상×맥락상
둘째, 돈이 안 들기 때문이다. 저비용도 아닌 무비용이다. 반면 효과는 즉시 나타난다. 초단기, 5G급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막말 기법도 빛의 속도로 진화 중이다. 과거 ‘표현상 막말’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맥락상 막말’로 빠르게 진화하는 추세다. 형사처벌을 피하면서도 상대방에게 깊은 상흔을 남기는 교묘한 방식이다. 민경욱 대변인의 피오르 관광 발언이 대표적이다. 논란이 일자 민 대변인은 관광이라는 표현도 문제냐고 반문하면서 오히려 모든 것을 막말이라 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표현상 막말’은 요즘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이 애용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5·18 추념사에서 내놓은 ‘독재자의 후예’ 발언이 대표적인 경우다. 독재자의 후예가 누구라고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자유한국당과 황 대표를 겨냥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황 대표가 “내가 왜 독재자의 후예냐”며 “진짜 독재자의 후예에게는 말 한마디도 못 하니까 지금 대변인 짓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을 때 더불어민주당은 아무도 자유한국당과 황 대표를 콕 집어 ‘독재자의 후예’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린 격 아니냐’며 역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바로 이것이 ‘표현상 막말’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역공 기회까지 만들어주는 것이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의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구 청원에 대한 답변도 다르지 않다. 이 답변에서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자유한국당을 사실상 겨냥한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앞으로는 이런 ‘맥락상 막말’이 트렌드로 자리 잡을 개연성이 높다.


정청래×윤상현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이 2월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었다는 걸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언으로 자유한국당은 윤리위원회에서 이 의원 제명 결정을 내렸지만 아직 의원총회 추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뉴스1]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이 2월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었다는 걸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발언으로 자유한국당은 윤리위원회에서 이 의원 제명 결정을 내렸지만 아직 의원총회 추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뉴스1]

막말정치는 사라질까. 공식적으로는 각 당 공히 ‘막말 OUT’을 외치고 있다. 자유한국당 신상진 신정치혁신특별위원장도 최근 막말 의원에 대해 감점과 더불어 공천 부적격자로 지정하는 새로운 공천 기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황 대표 역시 6월 5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 자리에서 경고하고 나섰다. “앞으로 또다시 국민 마음에 상처를 주고, 국민 신뢰를 떨어뜨리는 언행이 나온다면 참으로 엄정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하지만 실행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오히려 더 많다. 막말 정치인에 대한 당내 징계가 솜방망이였다. 5·18 망언으로 제명 징계까지 내려진 이종명 의원의 경우 아직까지 의원총회 추인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김순례 의원과 차명진 전 의원도 당원권 정지 3개월 경징계를 받았을 뿐이다. 나 원내대표와 민 대변인에 대해서는 아예 징계하겠다는 말조차 없다. 이런 속에서 황 대표가 6월 11일 본심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무거나 막말이라고 말하는 그 말이 바로 막말이다.” 앞서 지적한 ‘맥락상 막말’은 막말이 아니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표현상 막말’에 대해서라도 엄정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황 대표 스스로 그럴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과거에도 여야는 막말 근절을 약속하면서 공천 배제 방침을 밝히곤 했다. 2016년 총선거 당시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뉴파티위원회 위원장은 정치인이 무능해 생기는 것이 막말이라며 공천 배제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실제로 막말로 공천에서 배제된 경우는 ‘당 대포’를 자처하며 일련의 막말을 쏟아낸 정청래 전 의원이 사실상 유일했다. 당시 보수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막말 의원들을 전수조사해 공개한 적이 있다. 모두 24명을 발표했는데, 김태흠 의원과 이장우 의원이 5회로 1위, 김진태 의원이 3회로 2위였다. 이외에 안홍준 의원, 이노근 의원, 정우택 의원, 홍문종 의원이 각각 2회였다. 하지만 이 가운데 공천에서 배제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막말 여부보다 친박(친박근혜) 감별 논란까지 벌어지는 속에서 비주류라는 이유로 탈락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더 많았다. 그때 친박계임에도 불구하고 공천에서 탈락한 이례적 인물이 바로 윤상현 의원이다. 그런데 윤 의원조차 막말 대상이 야당이 아닌 김무성 당시 당대표였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어떤 국회의원이 막말을 두려워할 것인가. 어떤 국회의원이 대표 코드에 맞춰 막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겠는가.


가해자×피해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6월 5일 최고위원  ·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앞으로 또다시 국민 마음에 상처를 주고, 국민 신뢰를 떨어뜨리는 언행이 나온다면 참으로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6월 5일 최고위원  ·  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앞으로 또다시 국민 마음에 상처를 주고, 국민 신뢰를 떨어뜨리는 언행이 나온다면 참으로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뉴시스]

권력은 분노로부터 나온다. 국민이 어떤 정당에 더 분노를 느끼느냐가 선거 결과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막말은 분노 유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치권의 막말은 대체로 선거 1년 전 무렵부터 예열해, 공식 선거기간이 되면 봇물을 이루곤 한다. 이 시점에 이르면 쌍방이 뿜어낸 포연 속에서 보이는 것은 깃발뿐, 진실과 사실은 자주 가려지곤 한다. 막말이 사라져야 올바른 판단이 가능하지만, 여야 어느 쪽도 그럴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막말 논란이 일 때마다 그런 자들을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지만 내심이 다른 이유다. 공천 때마다 막말 정치인들 배제하겠다고 공언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 역시 다른 계산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막말 대포꾼들은 자기 진영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그래서 설령 이번에 공천에서 탈락하더라도 다음번엔 공천을 받아 화려하게 재기하기 마련이다. 막말의 악순환 고리, 그 음험한 카르텔은 이런 식으로 생명력을 이어간다. 막말 대상이 된 자들은 어떨까. 그들도 결국은 수혜자다. 상대방으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을수록 지지세력 사이에서 인기는 더 높아진다. 치밀한 이는 그래서 막말 공격을 일부러 유도하기도 한다. 막말을 내놓는 쪽도 막말을 당하는 쪽도 윈윈(win-win)인 것이다. 

실제로 막말을 하는 이들은 반박 막말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막말 vs 막말’ 구도로 가면, 그야말로 대성공이다. 가해자, 피해자 모두 인지도가 올라가는 정말 희한한 게임이 아닐 수 없다. 이 게임을 끝내려면 국민이 현명해지는 수밖에 없다. 막말의 포연 속에서도 진실과 사실만 가려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민주시민의 필수역량이다. 

당신은 어떤가. 막말에 휩쓸리는 편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감별법은 간단하다. 막말을 내놓는 자 또는 막말을 당하는 자에게 감정이입을 한다면 불합격이다. 일단 의심부터 한다면 합격이다. 앞서 윤상현 의원의 사례를 언급했다. 윤 의원은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이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유권자들이 막말을 심각하게 인식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유권자들 또한 막말에 의외로 둔감하거나 더 나아가 즐기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주간동아 2019.06.14 1193호 (p34~37)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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