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집 | 속병 앓는 대학생들

‘응답하라 세대’보다 더 권위적인 대딩들

선배들 갑질 위험수위 넘어…금품 갈취·명예훼손·폭음 강요

  • 지형윤 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allin2492@naver.com

‘응답하라 세대’보다 더 권위적인 대딩들

‘응답하라 세대’보다 더 권위적인 대딩들

Shutterstock

“예의 좀 갖춰, 이것들아!”
서울 K대 새내기 정모(22) 씨와 그 동기들이 개강 전날 한 선배에게서 들은 말이다. 정씨의 동기가 같은 학과 선배 방에 연락 없이 놀러간 것이 화근이었다. 다음 날 이 선배는 학생회 사무실에 정씨를 포함해 40명 가까이 되는 새내기들을 단체로 부른 뒤 험한 말을 써가며 혼을 냈다. 정씨는 “그게 모두 불려가 욕을 먹을 일인가”라고 말했다. 얼마 후 집에 들른 정씨에게 그의 어머니는 “과에서 ‘20만 원 내라’고 해서 냈다”고 했다. 과에서 보낸 편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귀하의 자녀가 학과생활을 해야 해서 원활한 학생회 운영을 위해 아래 계좌로 학생회비 20만 원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씨가 선배에게 “왜 돈을 걷느냐”고 따지자, 선배는 “4년 동안 학생회비가 20만 원이다. 한꺼번에 내면 과 잠바도 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정씨의 학과에서는 개강 파티, 신입생 환영회, 엠티(MT), 학교 축제 등 행사가 있을 때마다 꼬박꼬박 추가로 돈을 걷었다. 정씨는 “선배들이 학생회비를 안 낸 사람들에게 따로 카카오톡방을 만들어 독촉했다. 나중엔 내라고 욕까지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대학생은 우리 사회에서 을 중의 을로 여겨진다. 그러나 대학생 사회에선 그들만의 갑을관계가 있다. 학과나 동아리 선후배 사이 권위주의문화, 전근대적 위계질서가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는 것.
수도권 K대에선 학과 MT 중 새내기들에게 장기자랑을 시켰다. 일부 새내기는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이 학과 선배 정모(22) 씨는 “학과 MT 자리에서 새내기는 ‘무조건’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 장기가 없는 학생들은 여장이라도 해라”고 말했다.
“얘들아, 다음 주 3만 원씩 걷자. 내고 싶은 사람만 내면 돼. 강제는 절대 아닌 거 알지.”
수도권 K대 간호학과의 한 선배가 후배들에게 한 말이다. 이 학과는 스승의 날 행사 명목으로 돈을 걷는다. 이 학과 한 재학생(21·여)은 “강제가 아니라지만 돈을 내야만 하는 분위기를 선배들이 만든다”고 했다. 선배가 후배의 금품을 노골적으로 갈취한다는 논란도 있다. 수도권 G대 한 학과에서는 행사를 이유로 새내기들에게 5만 원씩 걷었다. 부당함을 느낀 한 새내기가 G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 공용페이지 ‘대나무숲’에 이 사실을 제보했다.
‘대나무숲’은 SNS에서 동종업계나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익명으로 불만과 애환을 토로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그러나 학과 선배가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에게 제보자 이름을 알려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 K대 한 학과에선 새내기의 스포츠경기 입장권을 빼앗는 사건이 있었다. 선배들이 “스포츠경기 입장권을 선배에게 주는 것은 학과 관례”라며 새내기들의 입장권을 가져간 것. 이에 한 학생이 K대 페이스북 대나무숲에 이런 사실을 제보했고 많은 학생으로부터 ‘꼰대학과’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해당 학생회가 사과문을 올리고 입장권을 돌려줬다.
서울 S대 한 학과는 한 학기를 무사히 보내기 위한 고사를 지낸다면서 후배들의 머리를 고사 상에 올리고 입에 돈을 물렸다. 캠프파이어 행사 후엔 남학생들에게 “오줌을 싸서 끄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 D대 재학생 김모(20) 씨는 “학과 활동을 소홀히 하면 그 명단이 교수에게 넘어간다”며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이 돌아오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수도권 S대 체육학과의 학과 규정에는 ‘선배에게 다나까 사용할 것’ ‘기합받을 땐 전방 15도 유지할 것’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으며, 서울 S여대 체육학과는 선배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안녕하십니까, 체육학과 ○○학번 ○○○입니다’ 같은 군대식 관등성명을 요구한다고 한다. W대 한 학과는 “과 생활을 하지 않을 거면 ‘과잠’을 입지 마라”며 후배 복장까지 간섭한다. ‘과잠’은 등에 대학과 소속 학과명을 새긴 야구점퍼다. 대구 Y대 재학생 김모(20·여) 씨는 “선배 결혼식 참석을 강요받았다”며 “빠지면 선배들에게 찍혀 아르바이트 자리도 뺏긴다”고 말했다.



동아리에선 굴욕 면접

‘응답하라 세대’보다 더 권위적인 대딩들

인터넷에 떠도는 카카오톡 이미지. 대학교 선배의 권위적 언사가 수위를 넘었다. 구글 이미지 캡처

선배의 폭음 강요는 대학가에 만연한 음주문화다. “선배님, 저 주량 넘은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럼 이번 기회에 주량을 높이 경신해보자.” 충청지역 K대 재학생 김모(23) 씨가 동아리 선배와 나눈 대화다. 김씨는 “술자리에서 힘들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선배가 주는데 안 받느냐’며 혼만 난다”고 말했다. 서울 K대 한 학과는 개강파티 때 ‘술 마시는 것은 의무가 아니다’라고 공지한다. 그러나 행사 뒤 새내기 서모(21·여) 씨는 “마실 수밖에 없다. 동기 몇 명은 술 공포증이 생겼다”고 말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충청지역 K대 재학생 한모(22) 씨는 “선배가 기숙사 통금시간 10분 전 전화해 자기 자취방으로 오라고 말하기도 한다. 평상시에도 부르지만 시험 전날에도 부른다”고 했다. 선배에 의한 명예훼손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D공과대 여학생 이모 씨의 대학생활을 악몽으로 바꾼 것은 ‘마우스 클릭 한 번’이었다. 이씨는 새벽 2시쯤 한 여자 선배의 페이스북 게시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하지만 선배는 ‘SNS 예절 몰라요? 새벽에 누가 선배 글에 좋아요를 눌러요? 앞으로 주의하세요’라며 이씨의 타임라인(페이스북 공개 게시판)에 비판 글을 남겼다.
이씨가 ‘죄송합니다. 선배님’이라고 사과하자 선배는 ‘대답할 땐 생각 없이 대답하지 말라. 변명이라도 하라. ‘죄송합니다’는 말 들으려고 쓴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이씨는 ‘선배님께 친하게 다가가고자 누른 건데 늦은 시간에 생각 없이 누른 점 죄송합니다’라고 썼다.
보다 못한 이씨 동생이 ‘좋아요를 누를 수 있는 거 아니냐. 비공개로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는데 꼭 이렇게 공개적으로 창피를 줘야 하느냐’는 글로 반박했다. 선배 측은 ‘학과에 입학했으면 학과 규칙을 따르라’ ‘예의가 없다’ 같은 비난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씨는 ‘동생이 아직 어려서 모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선배 측은 ‘선배가 말하면 무조건 죄송하다 하라’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이씨는 자퇴했다.
취업에 필요한 스펙 확보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동아리나 그와 유사한 곳에서도 ‘선배의 어마어마한 갑질’이 나타난다.
“우리 학교에 대해 조사해와.” Y대 홍보대사 수습 기간에 여학생 김모(20) 씨가 받은 과제다. A4용지 100장 정도 되는 분량을 ‘복붙’(복사해 붙여넣기)이 아니라 직접 타이핑해야 했다. 김씨는 “과제를 하다 책상에 엎드려 잠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제를 제출하자 선배는 “그거 외워 와”라고 했다. 김씨는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외웠다”며 “제대로 못 외우면 ‘지금 장난하세요? 미치신 거 같네요. 노답(답이 안 나온다)이네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일부 선배는 김씨에게 “○월 ○일 인사 안 하고 지나가셨죠? 주의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이런 억압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는 게 일상이었다”고 전했다.
서울 K대 한 대학연합 동아리에 지원한 대학생 오모(21) 씨는 면접에서 “하려고 하는 의지가 없는 거 같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왜 지원했느냐”는 모욕성 질문들을 받았다. 오씨는 “면접이 잘 이어지다 그런 질문이 나와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인기 동아리들은 기업의 압박면접을 따라 한다. 면접관이 권력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응답하라 세대’보다 더 권위적인 대딩들

한 대학에서 신입생 환영 엠티(MT) 도중 선배들이 후배의 기강을 잡겠다며 휘두른 폭력에 숨진 대학 신입생의 유가족들이 학교 정문에서 폭력추방을 요구하면서 아들을 살려내라며 오열하고 있다. 동아일보

내부 고발자는 영원히 퇴출

일부 학교에선 폭력도 발생한다. 수도권 G대 재학생 강모(21) 씨는 “동기가 편의점 앞에서 술을 먹다 선배에게 뺨을 넉 대 맞았다”며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입학 초 아침마다 집합했다. 한 동기가 선글라스를 썼다는 이유로 전원 집합을 당하기도 했다. 라식수술을 받아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는데도 막무가내였다”고 말했다.
선배의 갑질은 체육학과 및 일부 지방대에 국한되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취재 결과 일반 학과에서도, 수도권 대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자주 목격됐다. 문제는 이렇게 갑질을 당한 저학년 학생들이 자신도 선배가 되면 같은 일을 후배에게 반복한다는 점이다. 선후배 간 부조리는 특정 선배의 성격 같은 개인적 요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학생들 사이에 만연한 권위주의문화 같은 구조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피해자들은 대체로 당해도 삭이는 편이다. 이들은 “대학 내 선후배 간 문제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 내부 고발자가 됐다 신분이 노출되면 집단에서 영원히 퇴출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첨단 스마트 세대인 요즘 대학생이 왜 ‘응답하라 세대’보다 더 전근대적인 선후배 관계를 맺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취업난이 대학생을 약자로 만들고 있는데, 약자가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후배)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명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잘못된 선후배 문화는 인간관계가 사람을 억압하는 모순에서 나왔다. 상호존중만이 해법”이라고 덧붙였다. 









주간동아 2016.01.06 1020호 (p28~30)

지형윤 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allin2492@naver.com

관련기사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7

제 1217호

2019.12.06

아이돌 카페 팝업스토어 탐방기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