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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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의문투성이 김양건의 죽음

‘군부+빨치산 혈통’ vs ‘당+공안조직’ 권력투쟁의 희생물 추측도

  • 이승열 스웨덴 안보개발정책연구소(ISDP) 객원연구원 summer20@naver.com

    입력2016-01-05 13: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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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15년 12월 30일 김양건 조선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이 29일 오전 6시 15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김양건이 누구인가. 조선노동당 정치국 위원이자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으로 당의 핵심 인물인 동시에 김정은 제1비서의 최측근 아닌가. 남북관계를 총괄하던 직책과 소임을 고려할 때, 그의 돌연한 사망은 어떤 방식으로든 장성택 사망 이후 북한 권력 내부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김양건의 사망에 대해 현재까지 정부 당국의 공식 입장은 단순 교통사고일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양건의 온건한 성품으로 볼 때 최고지도자 김정은과의 관계뿐 아니라 다른 엘리트 집단들과 반목할 이유가 적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 고위층이 이따금 새벽시간에 음주 후 과속 등으로 사고를 일으키곤 했던 전례가 있는 만큼, 내부의 권력투쟁이나 암투의 직접적 결과로 보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판단도 읽힌다.
    그럼에도 김양건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평양 권력 내부의 변화와 엘리트 집단 사이의 관계를 다시 한 번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성을 일깨운다. 이러한 작업은 무엇보다 그의 권세 기반이 조선노동당이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1980년 이후 개최되지 않았던 조선노동당 제7차 당대회가 2016년 5월로 예정돼 있다는 사실을 함께 주목해야 함은 물론이다.
    북한에서 당대회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이며 최고지도자의 영도체계 방향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다. 김정은은 이미 2015년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행사를 통해 ‘핵’이 아닌 ‘인민’을 강조함으로써 당의 위상을 새롭게 재편하는 한편,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에 기반을 둔 군 중시정책에서 조직지도부 중심의 조선노동당 영도체계로 탈바꿈할 것임을 암묵적으로 밝혀왔다.



    7차 당대회 앞두고 권력싸움 본격화

    7차 당대회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김정은 시대 통치이데올로기에 대한 당 규약 개정과 함께 북한 엘리트 집단의 대대적인 개편이 될 공산이 크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김정일 시대 선군정치 아래서 정치·경제적 지위가 상승됐던 군부의 위상 축소 여부다. 반대로 2010년 이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사망 이후 위축됐던 조직지도부와 조선노동당의 위상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따라서 김양건의 사망 또한 단순 사고보다 엘리트 집단 간 생존을 위한 권력투쟁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질 개연성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2012년 7월 이영호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숙청과 2013년 12월 장성택 당 행정부장의 숙청은 표면적으로는 김정은의 독자적 권력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사건이었다. 김정일이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대회에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하면서 후견 엘리트로 내세웠던 군부의 이영호와 백두혈통의 장성택을 제거했다는 게 그 골자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간 경제권력을 장악해온 군부의 경제적 이권을 새롭게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장성택의 당 행정부가 재편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권력투쟁의 성격이 더 짙었다.
    이영호와 장성택 숙청 이후 평양 엘리트 집단은 자연스럽게 △조연준 제1부부장과 조용원 당 부부장, 황병서 총정치국장, 이재일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 조직지도부 출신 세력 △김정은 공포정치의 집행자 구실을 맡고 있는 김원홍의 국가안전보위부 세력 △북한 체제 내에서 전통적인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최룡해와 오극렬 등 빨치산 혈통세력 △여전히 강력한 무력과 경제권을 통해 독자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는 총참모부 중심의 군부세력 등 4개의 엘리트 조직으로 분화되고 있다.
    이들 사이 관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체제 내 감시와 검열을 주도하는 조직지도부와 국가안전보위부 등이 김정은의 공포정치를 주도하면서 서로 협력하고 있다는 부분이다. 이들은 반대로 가장 광범위한 무역권을 가진 군부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아가 최룡해와 오극렬 등 전통적인 빨치산 혈통 엘리트와는 상호견제의 위치에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거꾸로 군부는 조직지도부와 국가안전보위부 등 당과 공안계통 엘리트 집단의 탄압을 상쇄하기 위해 빨치산 혈통 엘리트와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빨치산 혈통과 군부 엘리트가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조직지도부와 국가안전보위부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빨치산 혈통 엘리트들이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었고, 다른 하나는 빨치산 세대가 전통적으로 군부와 가깝다는 사실이다. 전 민족보위상 최현의 아들이면서 직전 총정치국장이던 최룡해와 군부 출신인 오극렬 국방위 부위원장 등이 모두 군부의 이해관계에 비교적 관련이 높은 인사들이기 때문이다.


    최룡해가 돌아온 이유

    그러나 2015년 새롭게 재편된 권력구도는 이들 빨치산 출신 엘리트의 실각으로 나타났다. 11월 7일 사망한 이을설 인민군 원수 장의위원 명단에 최룡해 근로단체 비서와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인 오일정 당 민방위부장이 누락됐다는 게 근거였다. 이후 확인된 바에 따르면 최룡해는 11월 백두산발전소 토사 붕괴 사고의 책임을 지고 함경도 소재 협동농장으로 추방돼 혁명화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흐름은 한마디로 조직지도부 중심의 조선노동당 영도체계가 확립되면서  7차 당대회를 앞둔 권력 엘리트 사이의 투쟁이 물밑에서 본격화한 것이라고 풀이하기에 충분하다. 김양건의 사망을 단순 사고사로 단정할 수 없는 또 하나의 근거는 그의 사망이 2015년 11월 실각했던 최룡해의 복권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12월 30일 발표된 김양건 장의위원 명단에서 최룡해는 다섯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최룡해의 복권과 김양건의 사망은, 8·25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이끌어 북한 군부의 대남도발 의지를 꺾었던 김양건의 전력에 비춰볼 때 군부와 빨치산 혈통 엘리트의 정치적 보복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아직은 소문에 불과하지만, 김양건의 교통사고가 비밀파티 참석 후 음주상태에서 난 것이 아니라 전날 신의주에 있는 측정기구공장 시찰을 마치고 김정은의 최고사령관 추대행사(12월 30일)에 참석하기 위해 복귀하던 중 신의주-평양 간 도로에서 인민군 번호판을 단 화물차량에 부딪친 것이었다는 소식은 이러한 이유로 의미심장하다. 과연 단순 교통사고였는지 단정하기에는 여러모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7차 당대회를 앞두고 평양 권력 내부가 다시 한 번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고, 2016년 김정은 체제의 변화 역시 훨씬 그 파장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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