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형의 도하일기 〈마지막 회〉

중동의 사랑방 마즐리스를 아시나요?

도하에서 체험한 아랍인들의 삶…팔레스타인의 남다른 교육열과 한국 카페의 인기 인상적

  • 동아일보 기자

    turtle@donga.com

    입력2019-06-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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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즐리스 문화와 에티켓에 대해 
배우고 있는 카타르 어린이들. [카타르 트리뷴]

    마즐리스 문화와 에티켓에 대해 배우고 있는 카타르 어린이들. [카타르 트리뷴]

    지난해 7월 카타르 도하에서 시작했던 중동 연수가 끝나간다. 중동 이슈에 관심이 늘 많아 중동으로 해외연수를 오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연수 기간 내내 많은 현지인과 대화를 나누려 노력했다. 특히 교수, 공무원, 학생(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내 나름 적극적으로 만났다. 크고 작은 중동 이슈 관련 포럼과 세미나에도 참석했다. 이를 통해 잘 몰랐거나 생각지도 않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연수를 마치면서 특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모든 일은 마즐리스에서 이뤄진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마즐리스(Majlis) 문화’다. 마즐리스는 아랍어로 ‘앉는 장소’를 뜻한다. 주로 가족과 친지, 즉 한 집안 남자들이 모여 정치, 경제, 사회 이슈부터 가정사까지 사실상 모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아시안컵과 월드컵 같은 축구 경기도 카타르인은 주로 여기서 응원한다. 친인척 중심의 사랑방이라고 보면 된다. 마즐리스는 카타르를 포함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바레인 같은 걸프지역 국가에서 특히 활성화돼 있다. 

    보통 마즐리스는 집안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사는 집 근처에 만들어진다. 집안 경제력이나 사람 수에 따라 크기도 달라진다. 집안 구성원 간 친밀도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집안은 비슷한 또래끼리 모이는 방식을 선호해 연령대별로 마즐리스가 있고, 또 어떤 집안에는 많은 연령대가 모두 모이는 커다란 마즐리스가 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카타르인의 마즐리스에 초대를 받았다. 널찍한 홀을 연상케 하는 공간에 ‘아랍 스타일’의 카펫이 깔려 있었다. 의자와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고, 벽에는 대형 TV가 걸려 있었다. 사람들은 커피와 홍차를 계속 마시며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기자에게도 북한 문제, 손흥민의 활약, 카타르 생활 등을 주제로 계속 말을 걸어왔다. 



    카타르인은 “카타리(카타르인이란 뜻) 사이에선 비밀이 없다”고 강조한다. 카타르인이 30만 명(전체 카타르 거주자 수는 약 270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많은 이가 마즐리스 효과에 대해 강조한다.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카타르인이라면 마즐리스에 꾸준히 가고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대부분 일주일에 3~4번은 가는 것 같다. 나는 주말에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잠깐이라도 들른다. 마즐리스에 가야 카타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카타르인 사업가) 

    “정부 고위직 인사와 주요 정책은 물론, 중동 정세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눈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어떨 때는 뜬소문이 돌기도 한다.”(카타르인 대학원생) 

    여론이 형성되고 확산되는 공간이다. 그래서 정부에선 ‘마즐리스 토크(talk)’에 긴장하기도 한다. 중동 문제를 수년간 취재해온 한 외신기자는 “한때 쿠웨이트에선 ‘마즐리스에서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자주 나온다’는 이야기가 나돌아 쿠웨이트 왕실이 긴장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말했다.

    교육열이 가장 뜨거운 아랍권 나라

    아라비아해에서 카타르 수도 도하의 도심인 웨스트베이를 바라본 풍경. 카타르에선 2022 월드컵을 앞두고 경기장, 신도시, 지하철 건설이 한창이다. [걸프타임스]

    아라비아해에서 카타르 수도 도하의 도심인 웨스트베이를 바라본 풍경. 카타르에선 2022 월드컵을 앞두고 경기장, 신도시, 지하철 건설이 한창이다. [걸프타임스]

    대학교수와 연구원 중에는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같은 이른바 ‘레반트 지역’ 출신이 많았다. 의외로 그중 상당수는 팔레스타인인이었다.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으로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에서 살다 도하의 대학과 연구소에 자리 잡은 이들이다. 카타르 공공기관과 기업에서도 팔레스타인 직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힘든 여건에 놓인 팔레스타인 출신 가운데 이렇게 화이트칼라 인력이 많다는 게 신기했다. 궁금증을 풀고자 그 이유를 많은 사람에게 물어봤다. 

    하나같이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높은 교육열을 꼽았다. 카타르, 레바논, 예멘,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활동한 미국인 중동 전문가는 “전체 아랍권에서 팔레스타인인만큼 자식 교육에 열성적인 이들은 없다”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다. 난민이라는 불안한 신분 탓에 어느 나라에서도 ‘확실한 실력’과 ‘좋은 직장’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해서다. 심지어 레반트 지역에서는 사회 고위층 자녀들이 다니는 국제학교나 사립학교를 제외하고는 팔레스타인 학생이 많은 학교가 가장 수준 높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정확히는 팔레스타인인에게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설립된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가 운영하는 이른바 ‘UNRWA 스쿨’의 경쟁력이 높다는 것이다. 요르단 출신 연구원은 “UNRWA 스쿨은 사명감과 전문성을 지닌 교사들이 학생들을 강하게 교육시켰고, 학생들 역시 ‘내가 생존하려면 공부뿐’이라는 마음으로 공부한다”며 “평범한 요르단 학교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카타리들은 한국 카페를 사랑한다

    카타르의 인문사회과학계열 대학원대학인 도하인스티튜트 언론학과에서 특강을 마친 뒤 필자(가운데)가 학생들과 함께 직은 기념사진. 이 학교의 학생과 교수 중에서도 팔레스타인 출신 비율은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이세형 동아일보 기자]

    카타르의 인문사회과학계열 대학원대학인 도하인스티튜트 언론학과에서 특강을 마친 뒤 필자(가운데)가 학생들과 함께 직은 기념사진. 이 학교의 학생과 교수 중에서도 팔레스타인 출신 비율은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이세형 동아일보 기자]

    카타리들은 한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기본적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좋다. 한국 건설사들이 현지의 기념비적 건축과 대형 천연가스 및 원유 공장을 많이 지은 게 큰 몫을 했다. 방탄소년단(BTS)과 손흥민도 ‘코리아 브랜드’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산 전자제품도 인기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산 고급 TV는 판매가 잘 되는 반면, 고급 냉장고와 세탁기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다는 것.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은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와 서남아 출신 가정부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자신들이 직접 사용하는 TV는 비싼 제품을 선호하지만, 가정부가 주로 쓰는 냉장고와 세탁기에는 돈을 아낀다는 것이다. 

    카타리들의 한국 여행은 아직 활성화돼 있지 않다. 하지만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평가가 상당히 좋다. 특히 2030세대에게는 한국 카페가 인기다. 서울 광화문, 삼청동, 가로수길, 북촌 등과 같이 독특한 인테리어를 갖춘 카페가 많은 지역에 대한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커피나 차 문화가 발달한 나라임에도 카타르의 카페 인테리어는 단출하다. 서울의 카페 프랜차이즈가 카타르에 진출하면 성공하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만간 새로운 여정에 돌입한다. 이번에는 이집트 카이로에서다. 그리고 연수생이 아닌 특파원 신분으로 중동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카이로에선 어떤 것을 보고 느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세형_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카타르 도하에 있는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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