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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전향’은 1920년대 일본에서 탄생한 개념

일본 사회주의자들 용어를 사상경찰이 차용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사상 전향’은 1920년대 일본에서 탄생한 개념

SBS 드라마 ‘녹두꽃’에서 백이현(윤시윤 분)이 백이강(조정석 분)에게 전향을 요구해 형제가 갈등하는 장면. [SBS 방송 화면 캡처]

SBS 드라마 ‘녹두꽃’에서 백이현(윤시윤 분)이 백이강(조정석 분)에게 전향을 요구해 형제가 갈등하는 장면. [SBS 방송 화면 캡처]

“형님 백가네로 돌아오세요. 이방이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 이방으로 오세요.” 

“동상 내가 어떻게 하나, 난 살인에….” 

“살인은 송사를 통해 제가 해결할 것이고, 동비는 전향을 하면 됩니다.”

5월 17일 방영된 SBS 드라마 ‘녹두꽃’에서 전남 고부의 아전 가문인 백가네 두 형제 간 대화다. 서자이면서 장자인 백이강(조정석 분)은 아비인 이방 백만득(박혁권 분)의 해결사로 ‘백가네 거시기’로 불리며 온갖 악행을 일삼다 1894년 동학군의 봉기를 이끄는 전봉준(최무성 분)에게 감화돼 동학농민혁명에 뛰어든다. 동비(東匪)는 당시 조정에서 동학군을 낮춰 부른 말이다. 백이강의 동생이자 가문의 적자인 백이현(윤시윤 분)은 중인계급이지만 옥골선풍의 선비나 다름없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그는 백성의 피고름을 짜는 자신의 가문을 수치스러워하며 조선의 개항을 꿈꾸는 양심적이고 진보적인 지식인이었다. 하지만 하늘같이 따르던 스승에게 배신당하자 복수심에 불타 적극적으로 진압군에 가담한다. 그렇게 우애가 남달랐던 형제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된다.
 
앞에 언급한 장면은 이강과 이현의 분기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학군이 됐지만 동생이 걱정돼 홀로 고부에 잠입한 이강은 위기에 빠진 동생을 구하려 하고 전우인 두 동학군의 도움을 받는다. 이현은 그들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하겠다며 유인한 뒤 두 동학군에게 미혼약을 먹이고 형에게는 그들을 사또에게 넘기면 동비의 죄를 씻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갑자기 전향(轉向)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1920년대 일본 제국주의가 낳은 ‘전향’

백이현(윤시윤 분) (왼쪽), 백이강(조정석 분) [사진 제공 · SBS]

백이현(윤시윤 분) (왼쪽), 백이강(조정석 분) [사진 제공 · SBS]

사전을 찾아보면 여기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그냥 방향을 바꾼다는 뜻이다. 두 번째는 ‘종래의 사상이나 이념을 바꾸어서 그와 배치되는 사상이나 이념으로 돌림’이라는 뜻이다. 맥락상 당연히 두 번째 뜻으로 쓰인 것이다. 동학사상을 버리고 투항하라는 의미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의미의 전향은 1920년대 후반 제국주의 일본에서 탄생한 단어다. 일제는 1925년 천황제나 사유재산제를 부인하는 반정부·반체제운동을 단속하고자 치안유지법을 제정한다. 핵심은 무정부주의·공산주의운동을 비롯한 일체의 사회운동을 조직하거나 선전하는 자에게 최고 10년 이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하겠다는 것. 이 법은 쇼와 일왕이 즉위 3년째 되는 1928년 최고 사형까지 가능하도록 대폭 강화된다. 그와 함께 치안유지법 단속 대상자의 사상을 전향시킨다는 개념이 등장한다. 

일본 사상경찰(식민지 한국의 고등계 형사)은 체포한 반체제 인사가 자신의 사상을 버리고 천황주의자로 살겠다는 반성문을 쓰면 방면하거나 형량을 감량해주겠다며 전향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투옥과 고문 등의 방법도 쓰였지만 감옥 밖 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자극하거나 좋은 직장을 알선해주겠다는 등 온갖 회유책이 함께 동원됐다. 

이 전향이라는 말이 일본 사회에 풍미하게 된 것은 1933년 일본공산당 최고지도자였던 사노 마나부와 나베야마 사다치카가 감옥에서 공동으로 전향 선언을 하면서다. 당시 일본 민중이 1931년 발발한 만주사변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는 것에 열광하자 민중으로부터 소외된다고 느낀 좌익인사들이 대거 전향했다. 일본 철학자 쓰루미 슌스케의 ‘전향’에 따르면, 그리고 불과 3년 사이 공산당 관계자의 70% 이상이, 1945년 무렵에는 자유주의자를 포함해 90% 이상이 전향했다고 한다.


‘근대의 초극’을 닮은 ‘극일’

일본의 전향 문제를 다룬 쓰루미 슌스케의 ‘전향’과 후지타 쇼조의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 [사진 제공 · 논형]

일본의 전향 문제를 다룬 쓰루미 슌스케의 ‘전향’과 후지타 쇼조의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 [사진 제공 · 논형]

일본은 본토에서의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1936년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에 의해 보호관찰소를 설치하고 식민지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사상 전향 공작을 이어간다. 악질 고등계 형사의 이미지는 사회주의자를 포함한 독립운동가에게 전향을 강요하면서 생긴 것이다. 

일본에서는 전향이란 단어가 1945년 패전 이후 사라졌다. 반면 한국에서는 해방 후에도 살아남아 사상범·양심수에게 전향서 작성을 강요했고, 1970년대 이후 반정부시위를 벌인 대학생 시위자들에게 훈방 대가로 반성문을 요구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전향서를 작성하지 않은 북한군 포로나 남파간첩을 비전향 장기수라고 표현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다행히 1998년 7월 남파간첩 등에 대한 전향제도가 폐지됐다. 그런데 마치 전향이라는 개념이 일제강점기 훨씬 전인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던 것처럼 각인돼 있다. 이에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1930년대 이후에나 조선에 수입된 전향이라는 단어를 내뱉고 있는 것이다. 

전향이라는 단어에는 아이러니가 깊게 새겨져 있다. 일본 사상경찰이 이 단어를 당시 일본 공산주의 이론에서 차용했기 때문이다. 후지타 쇼조의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를 읽어보면 사실 이 단어는 일본 공산주의 이론가들의 이론 투쟁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1926년 무렵 독일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배우고 귀국한 후쿠모토 가즈오(1894~1983)가 일본 기성 공산주의 지도자들의 대중노선을 비판하며 과거 오류와 단절하고 새로운 이론부터 확립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이론적 토대가 약하던 일본 사회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여파로 1927년 후쿠모토는 모스크바로 소환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왜곡하는 종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마르크스 사상은 유물론에 입각해 객관적인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후쿠모토주의는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 주체적 반성과 전환을 더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일본 사상경찰이 이 전향이라는 단어를 가로채 ‘외국 사상에 현혹된 자가 자기비판을 하고 다시금 체제에 의해 인정받는 국민사상의 소유자로 복귀하는 것’으로 재규정한 것이다. 후지타가 주목한 것은 바로 객관적인 상황과 상관없이 주체적 변화와 극복을 강조하는 전향의 사상이 제국주의 일본에 팽배해 있었다는 점이다. 

1942년 일본에 등장한 ‘근대의 초극(超克)’이라는 개념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구 근대의 모순을 극복하고 초월하자는 이 표현 역시 객관적으로 서양에 대한 우위를 점할 수 없을 때 주체적 의식 변화로 그걸 가능하게 하겠다는 자폐적 발상의 산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발상은 일본의 좋은 점은 받아들이되 나쁜 점은 버려 일본을 극복하겠다는 ‘극일(克日)’이라는 변형된 단어로 살아남아 있다. 전향이라는 단어처럼 극일도 남발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주간동아 2019.05.24 1190호 (p6~8)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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