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의 와인 포 유

1976년 대결서 프랑스 콧대 꺾은 주역

美 나파 밸리 와이너리 ‘샤토 몬텔레나’

  •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9-05-07 09: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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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토 몬텔레나의 와인 양조실(오른쪽)과 포도밭 전경. [사진 제공 · ㈜나라셀라]

    샤토 몬텔레나의 와인 양조실(오른쪽)과 포도밭 전경. [사진 제공 · ㈜나라셀라]

    2008년 개봉한 미국 영화 ‘와인 미라클(Bottle Shock)’은 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의 한 판 승부를 그렸다. ‘파리의 심판’으로 불리는 이 대결은 미국을 단숨에 명품 와인 산지로 떠오르게 한 역사적 사건이다. ‘와인 미라클’의 주인공은 미국 나파 밸리(Napa Valley)에 위치한 와이너리 샤토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의 설립자 짐 배럿과 아들 보 배럿이다. 영화에서는 장발의 히피족이던 20대 청년 보가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은발의 베테랑 와인 메이커가 됐다. 그가 최근 방한해 와이너리의 탄생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버지는 성공한 변호사였습니다. 하지만 남의 불행으로 돈을 버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싫었나 봐요. ‘이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며 1972년 샤토 몬텔레나를 매입했어요. 아버지의 목표는 미국에서 제일 맛있는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만드는 것이었죠.”

    포도 품종 하나당 와인 레이블 하나

    최근 한국을 방문한 샤토 몬텔레나의 오너 보 배럿. [사진 제공 · ㈜나라셀라]

    최근 한국을 방문한 샤토 몬텔레나의 오너 보 배럿. [사진 제공 · ㈜나라셀라]

    샤토 몬텔레나는 1882년 설립된 이후 잘나가던 와이너리였다. 그러나 1920년부터 13년간 이어진 금주령을 견디지 못하고 몰락했고, 짐 배럿이 매입하기 전까지 버려져 있었다. 몬텔레나를 사들인 짐은 새 양조 설비를 들이고 포도밭을 재정비했다. 토양에 맞지 않는 포도나무를 뽑고 카베르네 소비뇽을 새로 심었다. 

    새로 심은 나무는 너무 어려 와인을 생산할 수 없었다. 포도나무는 적어도 3년생은 돼야 수확이 가능하고, 포도주로 담가도 1~2년의 숙성 기간을 거쳐야 한다. 최소 5년이 걸려야 와인을 출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짐은 ‘파리의 심판’에 카베르네 소비뇽이 아닌 샤르도네를 출품했다. 그런데 예상치 않게 이 와인이 프랑스 명품 화이트 와인을 모두 제쳤다. 우승을 차지한 샤토 몬텔레나 샤르도네 1973년산은 미국 와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와인으로 선정돼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사실 몬텔레나의 주력 와인은 카베르네 소비뇽입니다. 그런데 영화 ‘와인 미라클’이 개봉한 뒤 사람들이 샤르도네 와인을 너무 많이 찾았어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셈이죠.” 



    보 배럿은 샤르도네 와인 생산을 늘릴 계획이 없다고 했다. 샤토 몬텔레나의 연간 와인 생산량은 50만 병이 채 되지 않는다. 와이너리의 지명도에 비해 너무 적은 양이다. 저렴한 와인은 물론 고급 와인도 생산하는 여느 와이너리와 달리 샤토 몬텔레나는 품종별 와인을 하나씩만 만든다. 카베르네 소비뇽만 두 종류를 생산한다. 

    “1970년대만 해도 미국은 프랑스 와인 스타일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파리의 심판’에서 좋은 성과를 내자 내수시장이 커졌고, 나파 밸리 와인도 점점 미국인의 입맛을 따르기 시작했어요. 신맛이 줄고 묵직해졌죠. 하지만 샤토 몬텔레나는 초심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샤토 몬텔레나 스타일을 지킵니다.”

    경쾌한 신맛, 그윽한 향미가 입안 채워

    레이블을 가리고 샤토 몬텔레나를 마신다면 나파 밸리 와인이라고 알아맞히기가 쉽지 않다. 신맛이 경쾌하고 향미가 그윽하기 때문이다. ‘샤르도네 2016년산’을 보와 함께 시음했다. 레몬, 복숭아, 배, 멜론, 키위 등 신선한 과일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나파 밸리 샤르도네 특유의 두툼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보에 따르면 “몬텔레나는 섬세한 와인을 만들고자 포도를 밤에 수확한다. 서늘한 상태일 때 착즙해야 신선한 과즙을 얻을 수 있고 우아한 와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어 시음한 와인은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과 ‘이스테이트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은 카베르네 소비뇽 86%, 메를로 13%, 카베르네 프랑 1%를 블렌딩했다. 잘 익은 과일향과 벨벳 같은 타닌이 균형을 이루는 이 와인은 맛과 향이 부드럽고 넉넉하다. 

    이스테이트 카베르네 소비뇽은 샤토 몬텔레나의 아이콘급 와인으로 카베르네 소비뇽 98%에 카베르네 프랑 2%를 섞었다. 체리, 자두의 과일향과 장미, 바이올렛의 꽃향이 어우러져 묵직하고 은은하게 피어오른다. 한 모금 머금으면 실크처럼 매끄러운 질감이 극치를 느끼게 한다. 나파 밸리 스타일보다 보르도 1등급 와인에 가깝다. 

    비결을 묻자 보는 샤토 몬텔레나가 위치한 칼리스토가(Calistoga) 마을의 복잡한 지형이 한몫한다고 설명했다. 산기슭과 평지가 섞여 있어 밭에 따라 맛이 다른 카베르네 소비뇽을 블렌딩해 복합미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샤토 몬텔레나의 ‘진판델(Zinfandel)’도 숨겨진 보석이다. 딸기, 체리의 달콤한 과일향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타닌이 입안을 휘감는다. 이 와인은 특이하게도 아일랜드산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아일랜드 출신인 배럿 집안의 전통을 와인에 가미한 것이다. 진판델을 담았던 오크통은 다시 아일랜드로 보내 ‘그린 스폿(Green Spot)’이라는 위스키를 숙성시키는 데 쓴다고 한다. 

    보는 “최근 중국시장에서 철수했다”고 말했다. 아직 중국의 유통 과정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와인을 잘못 보관하면 맛이 변질되기 쉬운데, 이로 인해 샤토 몬텔레나의 이미지가 나빠질까 두렵다는 것이다. 그는 매출보다 품질이 중요하고, 품질은 소비자와의 약속임을 거듭 강조했다. 타협할 줄 모르는 가문이 고집스럽게 만드는 샤토 몬텔레나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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