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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오늘 별일 없었다면 행복한 하루였으리

인스타툰 연재하는 이혼 전문 최유나 변호사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오늘 별일 없었다면 행복한 하루였으리

[사진 제공 · 최유나]

[사진 제공 · 최유나]

‘이혼은 먼 세상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이웃, 친구, 부모님, 지인들의 이야기이고 세상 사는 이야기입니다.’ 

6쌍 가운데 1쌍이 이혼하는 시대. 이혼 전문 변호사는 가정법원에 갈 때마다 수많은 모습을 목격한다. 위자료 액수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젊은 부부, 말다툼하다 끝내 배우자를 때리고 마는 남편, 며느리가 바람나 어린아이까지 버리고 떠난 일을 한탄하는 시어머니, 양육권 분쟁으로 한쪽 부모와 생이별하게 된 꼬마의 울부짖음…. 별일 없는 하루가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최유나(34) 변호사(사진)는 차가운 법정에서 이혼소송을 진행하다 느낀 가슴 저릿한 단상들을 인스타그램에 만화로 연재하고 있다. 제목은 ‘메리지 레드’. 결혼 생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뜻이다. 지난해 9월 첫 만화를 올리고 7개월 만인 4월 중순 100번째 연재물이 올라갔다. 팔로어는 14만 명을 넘어섰다. 그만큼 이혼을 ‘바로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고 공감한 것이다. 

이혼 전문 변호사가 본 결혼과 이혼의 희비쌍곡선은 어떨까. 최 변호사를 4월 9일 서울 서초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위기에 처한 부부들의 마음 다독여줄 상담

오늘 별일 없었다면 행복한 하루였으리
그는 2014년 대한변호사협회(협회)로부터 이혼 전문 변호사 등록증을 받았다. 이혼소송을 많이 담당한다고 이혼 전문 변호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송 외에도 이혼 관련 강의나 논문 작성 등 전문성을 쌓아야 협회가 전문 분야로 인정해준다. 



최 변호사는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혼소송을 전문으로 맡을 생각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개인 간 갈등을 듣고 중재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이혼소송에는 그저 법적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그만큼 당사자들이 진짜 원하는 바가 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 만화를 올리기 시작한 것도 더 많은 사람에게 상담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최 변호사가 주변 사람들을 상담하다 보면 ‘금슬 좋은 부부’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그 나름의 불만이 있었다. 대부분 결혼 전에는 머릿속으로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그린다. 결혼 후 그 기준에 닿지 못하면 불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결혼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종착역 없는 시간 여행’ 일부

‘종착역 없는 시간 여행’ 일부

이처럼 꽤 많은 부부가 상대방에 대한 불만을 안고 살지만, 불만의 핵심을 가족과 기혼자인 친구에게는 털어놓기 어렵다. 그 대신 행복해 보이는 순간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보이는 것은 좋은 측면뿐이니 다른 사람들의 결혼 생활은 매 순간이 행복한 것 같다. 반면 자신의 결혼 생활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으니 불행은 점점 더 커진다. 

최 변호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람들이 결혼과 이혼에 대해 모르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실제 부부의 사연을 보여주면 위로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하고 있던 인스타그램을 통해 만화로 그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림 작가를 구해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14만 명의 구독자(팔로어)가 생길 것을 예상했나. 


“이렇게 많이 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시작할 때만 해도 100여 명만 구독해도 많이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도 바쁜데 주변에서 만화 만드는 일을 말리지는 않았나. 

“그림 작가가 따로 있으니 나는 대사만 쓰면 된다. 몇 줄 쓰는 정도라 법정에서 재판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다. 의뢰인들이 자신의 사건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을 수 있어 비슷한 사건을 섞어 에피소드를 만든다. 상대 의뢰인의 이야기를 담기도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거의 100% 실화지만, 당사자가 봤을 때 이건 내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에피소드는 없다.” 

만화의 첫 에피소드가 자존심 때문에 이혼할 뻔한 부부의 이야기였다. 

“이혼을 고민하는 부부는 대부분 비슷한 갈등을 겪는다. 신혼 시절 기 싸움, 각자의 부모님이나 가족 때문에 생기는 갈등, 육아 갈등 등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자존심을 내세우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부부가 많다. 하지만 행복한 추억이 많고 함께 살 미래가 조금이라도 그려진다면 아직 이혼은 이르다.” 

부부들은 왜 비슷한 문제로 다투게 될까. 


“보통 결혼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이 어떻게 자랐는지, 나와는 잘 맞는지, 경제력은 어느 정도인지 같은 기준으로 예비 배우자를 검증한다. 하지만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막상 같이 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면 ‘내가 생각했던 그 사람이 아니네’라며 실망한다. 그래서 사람보다는 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다. 둘이 어떻게 살고, 다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소통하면서 해결할지를 미리 합의한 뒤 결혼한다면 서로에게 크게 상처를 줄 확률이 많이 낮아진다. 이를테면 서로 죽어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무엇인지, 양보할 수 있다면 어디까지 되는지 등을 먼저 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는 편이 좋다.” 

어떤 사실을? 

“누구를 만나든 힘든 일은 생길 수 있다. 결혼 생활에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봤자 상대에게 100% 만족을 줄 수 없고, 상대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완전히 만족할 수는 없다. 결혼은 연애와 다르다. 연애할 때는 서로 맞추다 보니 내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같이 살다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하는 시간 말고 같은 집에서 함께 살다 보면 ‘내가 이런 부분을 못 참는구나’라고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 결혼 전 미리 합의할 부분이 있다면? 

“자녀계획도 결혼 전 협의를 거치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출산과 육아가 선택사항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그래서 결혼 전 자녀계획 이야기를 미리 하지 않아 결혼 후 갈등이 생기는 부부도 많다. ‘왜 진작 말 안 했어. 그럼 너랑 결혼 안 했지’라는 말이 오가고 이혼소송까지 가는 사례가 적잖다.”


외도, 폭행 성향은 반드시 확인해야

요즘 결혼을 워낙 안 하려 한다. 

“지인 중에도 결혼을 꺼리는 사람이 몇몇 있다. ‘나는 정말 결혼이라는 제도와 맞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산다는 것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사람과 있을 때 행복할 것 같다면 결혼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 결혼은 진한 연애라고 보면 된다. 나 자신을 더 많이 보여주는 연애라고 생각하면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반대로 절대 결혼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사람에게 정착할 수 없다면 결혼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특히 근래에는 외도로 이혼하는 사람이 많다. 폭행도 마찬가지다. 결혼 전 상대방이 이 같은 습벽이 있는지 충분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외도로 인한 이혼이 많다고? 


“과거에는 남성의 외도가 많았다는데, 지금은 남녀 구분 없이 30, 40대의 외도가 정말 많다. 보통 결혼 전 만났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경우다. 배우자에게 실망하거나 출산, 육아 같은 문제로 다퉈 마음이 멀어졌을 때 과거 연인에게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 SNS 등을 통해 연락하기가 쉬워졌다.” 

지금까지 쓴 에피소드 중 다루길 잘했다 싶은 주제가 있는지. 

“ ‘종착역 없는 시간여행’ 편이 애착이 간다. 연세 많은 할머니가 남편의 폭행을 참아오다 뒤늦게 이혼을 결심한 이야기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계속되는 폭행에 한때 도망을 시도했다. 집 앞 담벼락에 숨어서 도망갈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당시 다섯 살 아들이 바지 자락을 붙잡으며 ‘엄마 어디 가’라고 천진하게 물었다. 이 손을 뿌리치지 못해 수십 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결국 그 아들의 도움으로 이혼하게 됐다. 부부간 폭행을 보고 자란 자녀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폭행으로 이혼하는 일이 드문가. 

“많다. 하지만 당시에는 나에게 부부간 폭행으로 찾아오는 의뢰인이 많을 뿐 실제로 가정 내 폭행으로 고통받는 가정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만화를 올린 이후 주변 사람은 물론, 독자들까지 댓글로 부모들의 폭행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많은 이가 가정폭력에 노출돼 있다는 걸 실감했다. 혈육이라 미처 털어놓지 못했던 것뿐이다. 가정폭력도 미투(Me Too)처럼 알려져야 할 문제다.”


가정법원 오기 전 완충재가 됐으면

이혼을 생각해본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만약 상대방하고 사는 이유가 자녀 말고는 없다면 이혼이 본인 행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자녀 말고는 없다는 말은 해볼 시도는 다해봤고 참을 만큼 참았는데 자녀에게 해가 되고 싶지 않아 견뎌왔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은 이혼하고 나면 표정이 좋아진다. 물론 자녀에게도 더 낫다. 나중에 부부의 불화가 부모와 자녀 간 갈등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지금 이혼하고 싶긴 해도 부부 사이가 좋았던 순간이 떠오르거나, 조금이라도 망설여진다면 다시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부모, 자녀, 주변의 시선, 이혼에 대한 편견 등을 떠나 부부 사이만 고려하는 것이다. 배우자와 더 살 수 있는 미래가 있다고 판단되면 자존심 내려놓고 대화하는 편이 낫다. 먼저 자신의 상황을 확인해보고 변호사를 찾아야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혼을 후회하는 부부의 이야기는 생경하다. 

“이런 사실을 자세히 알려주는 곳이 없다. 법정 다툼 전 전문적으로 이혼 관련 상담을 해주는 기관이나 단체가 필요하다. 물론 상담기관 연결 등 이혼 판결 전 다양한 제도가 있긴 하다. 하지만 법정을 찾는 일 자체가 서로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나나 내 만화가 지금은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주간동아 2019.05.03 1187호 (p32~35)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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