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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한의 세상관심법

두 번째 ‘안인득’이 나오지 않으려면

치료받지 않으면 위험…사법입원제도와 외래치료명령제 절실

두 번째 ‘안인득’이 나오지 않으려면

[동아DB]

[동아DB]

4월 17일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안인득(42)이 방화를 저지른 후 흉기를 휘둘러 5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사상자 20명이 발생했다. 그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애초에 그를 입원시켰다면 끔찍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그의 가족은 범행 열흘 전 그를 강제입원시키려 했으나, 현행법의 한계 때문에 그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보호자가 강제입원을 시키려면 보호자 2명 이상의 요청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의 진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환자가 거부하면 전문의가 진단할 수 없어 강제입원이 이뤄지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의 요청에 의한 ‘행정입원제도’가 있다. 이때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협’이 있어야 한다. 경찰은 바로 이 부분에서 선뜻 판단 내리기를 어려워한다. 환자가 난동을 부리다가도 경찰이 출동하면 누그러져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 경찰은 주의만 준 채 그냥 돌아갈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마지막으로 ‘응급입원’ 제도가 있다. 이는 경찰 1명과 전문의 1명의 동의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큰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시키는 제도다. 이 또한 ‘해를 끼칠 위협’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 

과거엔 정실질환자의 강제입원이 가족의 요청만 있으면 쉽게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상속, 재산 분쟁, 이혼 등 가족 내 다툼에 악용되기도 했다. 이런 부작용을 막고 환자 인권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강제입원 절차를 엄격하고 까다롭게 고치자 안인득 사건처럼 새로운 부작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강제입원 시스템 ‘마비’가 낳은 비극

4월 23일 오전 경남 진주 한일병원에서 거행된 진주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희생자 합동 영결식을 마친 후 희생자 금모(12) 양이 생전에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4월 23일 오전 경남 진주 한일병원에서 거행된 진주아파트 방화·살인 사건 희생자 합동 영결식을 마친 후 희생자 금모(12) 양이 생전에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정말로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지역사회를 돌아다닌다면 이번처럼 대형 범죄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조현병 환자가 위험하거나 공격적인 것은 아니다. 필자가 치료 중인 조현병 환자는 대부분 온순하고 조용하다. 오히려 사회적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고 위축돼 있다.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치료를 잘 받는 환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치료받지 않고 약물 복용을 거부하는 조현병 환자 가운데 일부는 원래 성격과 결부돼 폭력적 성향을 나타낼 수도 있다. 거칠거나 폭력적인 성격에 사회에 대한 불만이 더해져 점차 괴물로 변해가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는 대부분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이 부족해 치료받겠다는 의지가 없다. 처음에는 열심히 약을 복용해도 어느 순간 스스로 완치됐다고 판단한다. 이어 약을 먹으면 졸리거나 멍하다는 이유를 들어 약 복용을 회피한다. 가족과 떨어져 살거나 가족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으면 치료 과정에서 이탈하기가 더 쉽다. 가족도 처음에는 환자 치료에 열성적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간다. 악화와 재발이 반복되는 환자 상태에 대한 절망감이 더해져 ‘이제 어쩔 수 없다’는 자포자기에 빠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의가 꾸준한 치료의 필요성을 환자에게 역설하고 가족 역시 환자에 대한 사랑과 희망의 마음가짐을 잘 유지한다면 안인득 같은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치료 과정에서 이탈한, 혹은 치료 중에 급격히 악화돼 강제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강제입원은 곧 ‘인신의 구속’이다. 환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치료를 진행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제한하는 이러한 행위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할 수 있는가. 환자 인권이 중요하다지만, 이번 사건에서처럼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인권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안인득의 친형은 동생의 강제입원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 먼저 동생이 다녔던 병원에 진료기록을 요청했다. 그러나 병원은 발급을 거절했다. 환자 본인의 위임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위임장 없이 진료기록을 발급하면 ‘의료법’ 위반이다. 병원을 비난하려면 “불법을 감수하라”는 말도 함께 던져야 한다. 2016년 12월 경기 북부의 한 정신병원에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검찰로부터 무더기로 기소됐다. 환자 보호자가 입원 당일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하지 않았음에도 입원시켰다는 혐의였다. 그러니 의사는 환자를 데려온 보호자가 가족이 맞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버티는 환자를 겨우 데려온 가족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안인득의 형은 동주민센터를 찾아갔으나 행정입원도 거절당했다. 아마도 담당 공무원이 민원, 소송, 병원비 등의 우려 때문에 거절했을 개연성이 크다. 경찰에 의한 사흘간의 응급입원이 마지막 희망이었으나 이 역시 무산됐다. 경찰이 범죄 발생을 100%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예비 범죄자’ 취급은 위험하다

2002년 개봉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생각난다. 2054년 미국 워싱턴DC에서는 최첨단 치안시스템 ‘프리크라임’이 개발돼 범죄가 일어날 시간, 장소, 사람을 정확히 예측한다. 프리크라임에 의존해 미래 범죄자들이 체포된다. 그러나 이 시스템에도 오류가 발생한다. 팀장(톰 크루즈 분)은 자신이 누군가를 살해한다는 프리크라임의 예측에 도망자 신세가 된다. 

우리는 치료받지 않는 정신질환자를 ‘예비 범죄자’로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의 형성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신질환자 본인과 가족은 더욱 음지로 숨어들어 제대로 된 치료가 더 힘들어진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공익적 가치, 그리고 정신질환자의 적절한 치료를 담보하는 인권적 가치를 동시에 좇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재는 환자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지만, 그가 적절히 치료받아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게끔 돕는, 또 다른 차원의 인권 역시 강조돼야 한다. 최소한의 생계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중요 의무이자 기본 복지 정책이듯,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것 역시 국가가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의무다. 

필자는 ‘사법입원제도’의 도입과 ‘외래치료명령제’ 강화를 제안한다. 이 두 제도는 이미 대한의사협회가 촉구한 바 있다. 사법입원제도는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를 사법기관이 결정함으로써 강제입원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가족과 의료인의 부담을 경감해 입원치료를 활성화할 수 있다. 외래치료명령제는 중증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1년간 외래치료를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 제도는 현재 사문화된 상태라 다시 활성화해야 한다. 꾸준한 외래 진료만으로도 정신질환자의 증상은 개선될 수 있다. 

정신질환자는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치료받지 않는 일부 정신질환자는 위험해질 수 있다. 사회와 국가가 그들을 품어 제대로 치료받게 하고,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주간동아 2019.04.26 1186호 (p68~69)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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