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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中 청년 1000만 명 농촌으로

농촌 부흥 명분 삼은 21세기판 하방 … 시진핑 권력 공고화 작업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中 청년 1000만 명 농촌으로

중국 문화대혁명 때 지식청년들이 농촌으로 떠나는 모습. [위키피디아]

중국 문화대혁명 때 지식청년들이 농촌으로 떠나는 모습. [위키피디아]

“지식청년들은 농촌에 가서 가난한 농민들에게 재교육을 받아라.” 

중국을 건국한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이 1968년 12월 22일 내린 이른바 ‘하방(下放)’ 지시 내용이다. 하방은 도시 지식청년들을 농촌으로 보내 육체노동을 시킴으로써 사상을 개조하는 정치운동을 말한다. 상산하향(上山下鄕)운동이라고도 부른다. 

마오는 문화대혁명(1966~1976)의 일환으로 지식청년들에게 강제로 농촌 체험을 하게 했다. 문화대혁명은 마오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반대파를 자본주의의 길을 가려는 수정주의자인 ‘주자파(走資派)’로 몰아 숙청했던 극좌 정책이다. 이에 따라 마오에 반대하는 세력은 모두 실각되거나 처형됐다. 당시 희생자들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지만 수십만 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되며 사망자가 1000만 명에 이른다는 설도 있다. 1976년 9월 마오가 사망한 후 문화대혁명은 종결됐다. 중국 공산당은 1981년 제11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에서 “문화대혁명은 건국 이래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준 마오의 극좌적 오류”라고 평가했다.


‘혁명전통 교육기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하방했을 때 살던 량자허촌의 토굴집. [CFP]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하방했을 때 살던 량자허촌의 토굴집. [CFP]

문화대혁명 기간에 농촌으로 끌려간 청년은 1700만 명에 달하고 가족을 포함하면 관련된 사람이 1억 명이나 됐다. 이들은 땔나무, 식량, 기름, 소금, 간장, 식초, 차 등 모든 생필품을 스스로 마련해야 했고, 강제노역으로 육체적인 어려움도 겪었다. 당시 15세였던 시진핑 국가주석도 1969년 1월 산시성 북부 옌촨현 량자허(梁家河)촌이라는 오지에서 7년 동안 토굴 생활을 해야 했다.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 부총리가 숙청됐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토굴에서 들끓는 벼룩과 싸우며 9전 10기 끝에 공산당에 입당했고 1975년 칭화대에 입학해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량자허촌은 현재 ‘혁명전통 교육기지’가 됐다. 지금도 토굴에는 시 주석이 썼던 침상과 침구, 책상, 낡은 셔츠, 어린 시절 모습이 담긴 기념사진 등이 가지런히 보관돼 있다. 

중국 공산당의 청년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은 농촌 발전을 위해 올여름부터 2022년까지 청년 1000만 명을 농촌지역으로 보내는 ‘삼하향(三下鄕)’ 정책을 실시할 계획이다. 공청단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사회주의 사상’이 청년들의 머리와 마음속에 스며들어 행동으로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 삼하향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말 그대로 ‘21세기판 하방’이라고 볼 수 있다. 



청년들은 농촌에서 여섯 가지 중점 사업을 적극 전개할 계획이다. 그 내용을 보면 △농촌지역에 시진핑 사상과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정신 보급 △과학기술·금융·환경보호 지식 전수 △예술창작·공연·독서문화 보급 △유행병 예방, 기본위생·건강 지식 보급 등을 한다는 것이다. 파견 대상은 과학과 기술 분야 전공 직업학교생과 대학생들이며, 주로 여름방학 등을 이용해 ‘자원봉사’ 형식으로 농촌에서 활동하게 된다. 이들의 최우선 배치지역은 과거 공산혁명 시기의 거점과 극도의 빈곤에 시달리는 지역, 소수민족 거주지 등이다. 

공청단의 이 같은 계획은 시 주석이 그동안 강조해온 ‘농촌 부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 농촌지역은 개혁·개방 정책 이후 경제성장과 맞물려 급격히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고령화와 인력 유출 심화로 낙후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농촌 인구는 현재 5억7700만 명에 달하지만 한창 일할 청년 인구의 비중은 상당히 낮다. 반면 도시지역은 인구가 갈수록 증가하는 데다 최근 들어 경기둔화로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어 실업률이 높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시 주석 등 공산당 지도부는 농촌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도시 청년들의 귀향을 통해 취업난을 해소함과 동시에 공산당 기층조직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하방 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딩쉐량 홍콩과학기술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의도는 청년들이 떠나 농촌지역이 점점 쇠락하고 있는 만큼 청년들을 다시 농촌으로 보내 발전의 계기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대착오적인 구상”

물론 숨은 의도도 있다. 시 주석은 농촌 발전을 명분 삼아 취업난 등으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청년을 대거 농촌으로 보냄으로써 사회통제를 강화하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은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 등 당·정·군에 포진한 간부를 대량 배출해낸 공청단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하방 정책을 추진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시 주석의 1인 체제에 가장 위협이 되는 세력은 공청단 출신, 이른바 ‘단파(團派·퇀파이)’다. 공청단은 공산당 인재양성소라는 말을 들어온 핵심 기구다. 14~28세 청년이 가입할 수 있는 공청단은 단원 수가 8956만여 명이나 된다. 단원들은 젊었을 때부터 사실상 공산당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엘리트로 자라왔다. 시 주석은 그동안 단파가 당·정·군 요직을 대거 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상당한 위협을 느꼈다. 단파의 손발이 되는 청년을 대거 농촌으로 보낼 경우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청년 상당수는 “시대착오적인 구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시 주석이 마오의 문화대혁명 시대로 회귀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와 공산당도 농촌의 빈곤 타파, 도농 격차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선전하고 있다. 하방으로 고초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도 “당시 하방 경험이 정치의 뜻을 세우는 토대가 됐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헌법 개정을 통해 주석 임기제를 폐지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사상을 당장(黨章·당헌)과 헌법에 넣어 언론검열과 사상교육을 강화해왔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이 마오의 1인 지배 체제를 추구하려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하방 정책을 보면 시 주석이 마오를 닮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주간동아 2019.04.26 1186호 (p46~47)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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