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84

2019.04.12

2019 대한민국 발효 문화대전

발효식품 명맥 이어가는 우수 기업 5

“자연의 선물, 사람의 땀, 시간의 마법이 합쳐진 맛의 결정체”

  • 권재현·강지남·정혜연·박세준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9-04-12 17: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01 이조전통식품
    “천혜의 공간에서 장을 담그는데 시간은 투자라 생각해야죠”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무, 매실, 참외, 된장고추, 오이, 깻잎, 마늘종, 고들빼기, 취나물…. 장아찌가 종류별로 그득했다. 역시 제일 많이 나가는 것은 매실장아찌. 맛을 봤다. 향긋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일품이다. 간이 담백해 짠맛도 덜했다. 밥도둑이 따로 없다. 절로 다른 시식용 장아찌에 손이 갔다. 문득 덩치가 제일 큰 놈에게 눈길이 갔다. 

    “저건 뭐죠.” 

    “아, 무입니다. 사실 우리 장아찌 중 가장 베이스가 되는 놈이 저 무장아찌예요.” 

    그 덩치 큰 놈을 잘게 썬 무장아찌를 한 입 맛봤다. 매실장아찌가 상큼하다면 무장아찌는 묵직하다. 아삭한 맛은 덜하지만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그제야 장맛 좋기로 유명한 전북 순창에서 4대째 전통장을 만들고 있는 전문업체라는 걸 실감했다. 그런데 팸플릿을 보니 순창장류 제조기능인 제2호 김정순 씨와 그 며느리 고은주 씨(제75호), 그리고 직접 영업과 판매에 나선 손자 최재상(34) 대표까지 3대뿐이다. 

    “기능인자격을 따고 ‘이조’라는 업체를 차린 게 1988년부터이니 정식 연혁은 30년이지만, 증조할머니 때부터 동네에서 장을 담가 팔아 온 것까지 치면 50년이 넘습니다. 5년 전쯤 500여 개 되는 항아리와 함께 집까지 매물로 내놓는 걸 보고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제가 나섰죠.” 



    순창 장맛이 좋은 이유는 첫째, 원료인 콩과 고추가 잘 자라고 물이 맑은 데 있다. 둘째, 장 담그기 좋게 일조량과 일교차가 큰 데 있다. 그 천혜의 공간에서 장을 담그는 대신 시간을 투자하자는 게 최 대표의 경영철학이다. 

    “요즘은 순창에서도 2주 만에 발효되는 발효종균을 써 메주를 담가요. 하지만 우리는 그냥 전통방식으로 집에서 메주를 띄우고 3개월을 기다립니다. 어차피 공장 식으로 대량생산할 게 아니면 제대로 만들어야죠.”

    02 청원자연랜드
    “바보아빠가 만든 신선한 유제품”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2019 대한민국 발효문화대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부스 가운데 하나는 ‘청원자연랜드’였다. 신선하고 시원한 요구르트, 쫄깃한 스트링 치즈, 구워 먹는 치즈 등을 시식해본 관람객들은 너나없이 이 업체의 유제품을 한두 개씩 구입해갔다. 청원자연랜드 직원은 “행사에 나갈 때마다 완판되곤 하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며 은근히 자부심을 드러냈다. 

    청원자연랜드 유제품의 브랜드는 ‘바보아빠’. ‘바라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아기를 위해’의 줄임말이다. ‘내 아이에게 먹인다’는 생각으로 정성이 깃든 정직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한 뒤 아버지가 오랫동안 운영해온 목장을 이어받은 안용대 청원자연랜드 대표는 식품영양학을 공부한 아내와 함께 6년여 전부터 유제품을 생산·판매하기 시작했다. 건강하게 자란 소가 건강한 우유를 생산한다는 믿음으로 사육두수를 절반 가까이 줄이는 등 쾌적하고 깨끗한 목장을 만들었다. 모든 유제품은 매일 새벽 착유한 우유를 원료로 사용하며, 가공물질이나 정백당을 일절 넣지 않는다. 요구르트를 발효시킬 때도 자일리톨 설탕과 프로락토 올리고당을 사용한다. 그 덕분인지 ‘바보아빠’ 요구르트는 유난히 신선하게 느껴진다. 달지 않은데도 맛있다. 그래놀라는 물론 바나나, 딸기 같은 과일과도 잘 어울린다. 

    충북 청주시에 자리한 청원자연랜드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미리 예약하면 주말에 가족 단위로 스트링 치즈 만들기, 아이스크림 만들기, 트랙터 타기, 소에 건초 주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바보아빠’ 유제품은 전화로 주문 가능하며 매주 화·목요일 택배로 받을 수 있다. 3만 원 이상 주문 시 택배비 무료.

    03 일품청
    “좋은 발효균으로 특수 발효시켜 된장 신선도 높여”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예부터 된장 맛만 좋으면 그 집 음식은 더 볼 것도 없다고 했다. 그 정도로 된장은 집안의 맛 가보로 여겨졌고 대를 이어 전해 내려왔다. ‘일품청’은 1956년부터 경북 구미에서 특유의 제조법으로 63년간 된장을 생산하고 있는 곳이다. 단순히 된장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꾸준히 연구해 된장 맛을 향상시키고 유지하는 데 애쓰고 있다. 

    일품청은 100% 국내산 대두를 깨끗이 씻어 황국균을 사용해 나흘간 발효시킨 뒤 알갱이콩 된장을 만들어 판매한다. 콩을 사각형의 재래식 메주 모양이 아닌 알갱이 형태로, 또 다양한 유익균 가운데 황국균만 투입해 발효시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찬열 일품청 상무는 “재래식 된장은 발효 과정에서 각종 균이 침투하는데 사각 틀에 넣어 모양을 찍어내다 보면 밀도가 치밀해져 균이 고르게 분포하지 못한다. 이러한 단점을 없애 발효가 고루 될 수 있도록 콩을 알갱이 형태로 발효시킨다. 또 발효 과정에서 나쁜 곰팡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황국균만 넣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된장 안에 굵직한 콩 알갱이가 알알이 박혀 있어 씹는 맛이 좋았다. 된장 이외에도 질 좋은 태양초와 장인이 만든 조청으로 발효시킨 고추장, 고유의 공법으로 제조한 간장도 생산하는데 뒷맛이 깔끔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다. 

    생산 공장도 2017년 기계식으로 전면 교체해 위생 측면에서도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정밀한 발효 과정을 통해 일정하고 우수한 맛을 유지하기 위한 변화였다. 용기 디자인도 젊은 세대를 겨냥해 단순하고 세련되게 만들면서 소포장 세트 제품도 선보이는 등 지속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 상무는 “요즘은 젊은 층이 장류를 대량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이들을 겨냥해 된장 500g, 고추장 300g, 간장 300㎖를 소포장해 세트로 판매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이 밖에 집에서 고추장을 만들어 먹고 싶어 하는 소비자를 위해 고춧가루와 엿기름만 넣으면 쉽게 할 수 있는 발효청도 개발해 판매 중”이라고 말했다.

    04 국립공원 죽령옛고개 명품마을 영농조합
    “소백산맥이 키운 발효식초로 건강 지켜요”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산지는 식재료의 질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농작물이건 해산물이건 축산물이건, 산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 지역마다 특산물이 있고, 유통되는 식재료에 원산지를 표기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발효식품인 식초도 마찬가지다. 전통발효식초 업계 관계자들은 “어떤 곳에서 나온 재료와 물을 쓰는지도 식초 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은다. 식초가 익어가는 환경도 재료 못지않게 중요하다. 기후가 식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국립공원 죽령옛고개 명품마을 영농조합’(명품마을)은 발효식품을 만들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만큼 소백산맥에서 자란 재료와 물을 사용해 만들고, 청정지역에서 식초를 1년 넘게 발효시킨다. 주력 상품은 사과와 아로니아로 만든 과실식초. 

    식초 용처는 다양하다. 요리에 쓸 수 있고, 과실식초라 물에 타 음료처럼 마실 수도 있다. 소화 작용 활성화는 물론, 비타민 함량도 높아 건강보조식품으로도 일품이다. 식초의 가장 큰 단점은 휴대가 불편하다는 점. 액체라 병에 담아 다니는 것도 불편한데 냄새까지 강하다. 공공장소에서 병뚜껑을 열었다가는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이 같은 불편을 해소하고자 명품마을은 분말형 식초를 판매한다. 간편하게 물에 타 마실 수 있고 휴대하기도 쉽다. 식초의 강한 신맛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을 위한 제품도 있다. 식초 효능만을 넣어 환으로 재가공한 것. 그만큼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05 농업회사법인 장희도가
    “세종대왕께 진상할 만한 술 빚겠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식초, 술 모두 어떤 물을 쓰느냐가 중요하죠.” 장정수 ‘장희도가’ 대표의 말이다. 장희도가는 장정수-김주희 발효명인 부부가 만든 브랜드다. 약수로 유명한 충북 청주시 초정리의 광천수를 이용해 전통주와 천연발효식초를 담근다. 

    장희도가의 주력 상품은 쌀로 만든 ‘세종대왕 어주’. 탁주와 약주 등 두 종류를 판매한다. 유기농 햅쌀과 우리밀 누룩을 사용해 90일 이상 저온 발효, 숙성시킨 술이다. 곡물 향은 진하지만 목 넘김은 부드러운 것이 특징. 2012년 청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장관 초청 만찬에도 선보여 많은 이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세종대왕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일단 초정리가 세종대왕과 깊은 관계가 있는 곳으로 세종대왕은 이곳에 행궁을 짓고 약수를 마시며 요양했다. 장희도가의 술은 세종대왕의 어의였던 전순의와도 관련 있다. ‘세종대왕 어주’는 그가 쓴 음식책 ‘산가요록’에 소개된 ‘벽향주’를 재현한 제품이라는 의미도 있다. 

    식초는 어주에서 나온다. 술을 다시 유기농 발효시켜 천연발효식초를 내놓는다. 현미, 대추, 옻 등 다양한 첨가물로 식초의 향을 돋운다. 장 대표는 “전통주뿐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이탈리아 발사믹, 일본 흑초와 경쟁할 수 있는 한국 식초도 내놓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