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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오피스빌런

은희 씨는 왜 회사를 떠났을까

〈conte〉 이해했다고 오해했던 일

  • 우다영 작가 nayawdy@naver.com

은희 씨는 왜 회사를 떠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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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씨가 전형적이고 특색 없는 하얀 사직서 봉투를 내밀었을 때, 양 부장은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짧은 순간 자신이 그녀를 도울 만한 일이 있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업무 환경에 애로 사항이 있어요? 아니면 뭔가 다른 문제가 생겼나?”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닙니다.” 

“어려워 말고 말해봐요. 나도 같은 여자라 은희 씨 힘든 거 이해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아무 문제없어요.” 



타이르듯 재차 물어도 은희 씨는 무엇 하나 속 시원한 대답 없이 공손하면서도 완고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번 달까지만 일하겠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은희 씨를 내보낸 뒤 양 부장은 손수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며 은희 씨의 쌀쌀맞은 표정과 말투를 떠올렸다. 그것이 양 부장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했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어서가 아니고, 같은 양씨 집안이어서도 아니고, 같은 여자여서도 아니었다. 은희 씨가 낯선 회사에 처음 적응하며 좌충우돌하던 모습이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해 수습사원일 때부터 유독 마음을 쓰며 지켜본 직원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남처럼 돌아서다니! 

그러나 양 부장의 그런 서운함은 은희 씨의 사직서를 펼쳐 딱딱하고 무감정한 신명조 폰트로 적힌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을 희망합니다.’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묘한 짐작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은희 씨가 퇴사를 결심할 만큼 괴로운 이유가 이 회사 안에 있고, 그 말 못 할 문제를 자신이 도와줄 수 있으리라는 희미한 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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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부장이 가장 먼저 의심한 사람은 오 과장이었다.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캐나다에 보낸 기러기 아빠였고, 술과 회식을 좋아하며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오고 한두 군데 건강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유형의 과장이었다. 그가 여자이면서 상사인 자신을 항상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양 부장은 알고 있었다. 여자 직원들을 깔보는 경향이 있었고, 그 나이 또래의 남성이 대개 그러하듯 성희롱을 인사나 농담처럼 구사했으며, 참견하면서 동시에 첨언하는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양 부장은 오 과장을 보며 저렇게 늙어서는 안 된다는 자각과 다짐을 자주 했는데, 그녀가 가장 경계하는 상사 모습의 대부분을 오 과장이 가지고 있었다. 양 부장은 어디선가 읽었다 기억해둔 꼰대에 대한 글을 떠올렸다. 상명하복을 강요하며, 만사에 참견하며, 부하 직원의 의견을 묵살하는 독불장군에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무용담을 늘어놓는 꼴불견인 상사. ‘가족 같은 회사’라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으로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촌스러운 사람.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모욕감을 주는 나이 든 어른. 

‘나는 저런 꼰대가 되지 않을 거야.’ 

양 부장은 자신이 아직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때 불현듯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회사 지침상 한 달에 한 번 있는 회식자리에서 오 과장과 은희 씨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적이 있었다. 한 손에 소주병을 든 오 과장은 옆 테이블까지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다. 

“요즘 어린 여자들은 왜 술을 안 좋아하지?” 

오 과장은 허허 웃었지만 은희 씨는 뜨거운 불판만 바라보며 연신 집게로 삼겹살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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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부장은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몇 줄의 파티션들을 지나 오 과장 자리로 갔다. 

“오 과장님, 요즘 사람들 술 좋아해요.” 

“네?” 

“다들 술 좋아한다고요. 그냥 회식에서 먹기 싫은 거예요.” 

“부장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양 부장은 더는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냉랭하게 돌아섰다 한마디 더 쏘아붙였다. 

“그리고 부하 직원에게 반말하지 마세요.”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은희 씨 자리를 슬쩍 봤지만 은희 씨는 별다른 표정 없는 얼굴로 색색의 파일 철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며칠 뒤 양 부장의 의심은 박 차장과 최 대리에게로 옮겨갔다. 그 의심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었는데, 수요일 오전 은희 씨와 최 대리가 사무실에서 언성을 높이며 다퉜고 그 모습을 모든 직원이 지켜봤다. 

“은희 씨 지금 회사 그만둔다고 이러는 거야?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네.” 

“그게 아니라 이건 대리님 일이지 제 일이 아니라서요.” 

“네 일, 내 일이 어딨어? 이러면서 업무 배우라고 지시하는 거지.” 

“죄송하지만 이미 다 아는 업무라서요. 그리고 더 배울 게 있다면 사수인 대리님이 알려주셔야지, 이렇게 일을 떠넘기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뭐라고? 은희 씨 말 다했어?” 

그때 슬쩍 박 차장이 끼어들었다. 

“자자, 최 대리 진정하고. 부하 직원 앞에서 이런 모습 보이면 되겠나?” 

박 차장은 겉으론 젠틀해 보이지만 어린 사람이 자신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오만한 성격이라고, 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인색한 양반이라고, 나이가 들면 더 지독할 거라고 양 부장은 늘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박 차장은 은희 씨를 조곤조곤 나무라기 시작했다. 

“은희 씨가 어려서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회사 나가면 좋을 게 없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은희 씨 마음도 불편할 거고, 다른 회사 가서도 평판이고 소문이고 문제가 될 거야. 다 은희 씨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까 섭섭하게 듣지 말아요.” 

은희 씨는 가만히 박 차장의 훈계를 듣다 혼잣말처럼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응? 은희 씨 뭐라고 했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아부도 못 떨고 맞장구도 잘 못 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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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은희 씨는 남은 날짜를 채우지 않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한 것이 양 부장은 못내 안타까웠다. 사흘째 전화를 걸어도 묵묵부답이라고 사수인 최 대리가 보고했을 때 양 부장은 최종적으로 은희 씨의 사표를 수리했다. 

양 부장은 은희 씨가 부당하게 여긴 것들이 정말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의견을 똑 부러지게 말한 태도도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은희 씨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자신은 젊은 세대의 분노와 냉소를 이해한다고. 너희가 너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멋지다고 생각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자신은 오 과장이나 박 차장, 최 대리 같은 꽉 막힌 사람이 아니며, 자신처럼 젊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어 하는 어른이 어딘가에 더 많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양 부장은 회사 직원들의 성향이나 생활모습을 파악하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만들어두었는데, 은희 씨의 인스타그램에 DM을 남겼다. 

‘은희 씨 메시지 보면 연락 줘요. 우리 밥 한번 먹어요.’ 

그 후로 양 부장은 몇 시간마다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은희 씨로부터 답장은 오지 않았다. 더는 새로운 사진이 업데이트되지도 않았다. 양 부장은 그 일로 며칠간 속이 상했지만 시간이 더 지나자 그 일도, 은희 씨의 인스타그램도 잊어버렸다. 회사에 새로운 인턴들이 들어왔고, 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에 갓 나온 그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도움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때쯤 은희 씨는 다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따뜻한 적도의 휴양지에서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비키니를 입은 사진이었다. 1년 만에 제대로 된 휴가를 떠나서 들뜬 마음을 적어놓았다. 

해시태그는 #퇴사 #1년퇴직금 #백수생활 #안녕꼰대들.






주간동아 2019.03.08 1179호 (p10~13)

우다영 작가 nayawd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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