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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과 홋스퍼가 궁합이 잘 맞는 이유

‘토트넘 홋스퍼 FC’의 독특한 팀명에 해답이 담겼다

손흥민과 홋스퍼가 궁합이 잘 맞는 이유

1월 8일 영국 런던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열린 토트넘 홋스퍼와 첼시의 ‘2018~2019시즌 카라바오컵(리그컵)’ 4강 1차전에서 해리 케인(왼쪽)이 페널티킥으로 결승골을 넣자 손흥민(가운데)이 토트넘 공격의 3각편대를 이루는 케인과 델리 알리를 뒤에서 포옹하고 있다. [동아DB]

1월 8일 영국 런던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열린 토트넘 홋스퍼와 첼시의 ‘2018~2019시즌 카라바오컵(리그컵)’ 4강 1차전에서 해리 케인(왼쪽)이 페널티킥으로 결승골을 넣자 손흥민(가운데)이 토트넘 공격의 3각편대를 이루는 케인과 델리 알리를 뒤에서 포옹하고 있다. [동아DB]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의 기세가 무섭다. 1월 10일 현재 2018~2019시즌 16경기에서 8골 6도움을 기록했다. 2010년 유럽 진출 이후 가장 성적이 좋았던 2016~2017시즌 34경기에서 14골 6도움을 기록했을 때를 훌쩍 뛰어넘을 태세다. 

손흥민 소속팀은 ‘토트넘 홋스퍼 FC’. 토트넘은 2018~2019시즌 기준 런던을 연고지로 하는 6개 팀(아스널, 토트넘, 첼시, 웨스트햄, 크리스털 팰리스, 풀럼) 가운데 하나다. 북런던지역에선 토트넘과 아스널이 양대 라이벌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홋스퍼는 오직 하나

위는 토트넘 홋스퍼 FC의 문장이고 아래는 14세기 영국 기사 헨리 홋스퍼 퍼시의 문장이다.

위는 토트넘 홋스퍼 FC의 문장이고 아래는 14세기 영국 기사 헨리 홋스퍼 퍼시의 문장이다.

그런데 팀명 토트넘에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보통 유럽 프로축구팀은 지역명 앞 또는 뒤에 ‘축구클럽’의 약칭인 FC, AC, SC를 붙여 부른다. 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처럼 같은 지역 연고의 여러 축구팀이 연합해 한 팀을 만든 경우에는 ‘유나이티드(Utd)’라는 칭호를 별도로 붙인다. 

맨체스터 시티와 같이 ‘시티(City)’를 붙인 경우는 행정구역상 ‘시티’로 불린 오랜 전통의 도회지가 연고지라는 점을 자랑 삼기 위한 것이다. 비슷한 예로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 레알(Real)이란 호칭은 왕실의 후원을 받는 팀에 붙게 된다. ‘로버스(Rovers)’나 ‘레인저스(Rangers)’ 같은 호칭은 바이킹 등 호전적 유랑민족의 전통을 과시하려고 붙인 것이다.
 
그런데 토트넘은 ‘홋스퍼(Hotspur)’라는 독특한 별칭을 쓴다. 프리미어리그 팀 가운데 홋스퍼라는 별칭은 오직 토트넘에만 붙는다. 그래서 토트넘 팬들은 “수많은 유나이티드와 시티, 로버스가 있지만 홋스퍼는 오직 하나뿐”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럼 도대체 홋스퍼라는 호칭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이에 대해선 보통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서 용감무쌍한 기사의 대명사로 등장하는 ‘헨리 퍼시 경’의 별명에서 따왔다는 짤막한 설명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헨리 4세’에서 헨리 퍼시는 반역자이자 패배자다. 희곡의 주인공으로 훗날 헨리 5세가 되는 핼 왕자가 프로타고니스트라면, 홋스퍼는 그런 핼 왕자를 빛내기 위한 안타고니스트로 등장한다. 핼과 홋스퍼는 똑같이 헨리라는 이름을 가졌고 나이도 엇비슷하다. 하지만 홋스퍼는 당시 영국 최고 기사로 국민의 흠모를 한 몸에 받는 대상인 반면, 핼 왕자는 폴스타프 같은 파락호와 어울려 주색잡기에 빠져 지낸다. 부왕 헨리 4세는 그런 핼을 꾸짖으며 ‘엄친아’로서 홋스퍼와 계속 비교한다. 

그런 헨리 퍼시가 아버지 노섬벌랜드 백작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 당황한 헨리 4세가 겁에 질렸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핼 왕자가 전면에 나서 반란을 진압한다. 이 과정에서 홋스퍼와 일대일 맞대결을 펼쳐 그의 목숨을 빼앗는 놀라운 무공까지 과시한다. 그럼에도 왜 하필 홋스퍼를 팀명으로 삼은 걸까.


14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전쟁영웅

14세기 영국의 전쟁영웅 헨리 홋스퍼 퍼시의 동상. [shutterstock]

14세기 영국의 전쟁영웅 헨리 홋스퍼 퍼시의 동상. [shutterstock]

홋스퍼라는 별명을 지닌 헨리 퍼시(1364~1403)는 실존 인물이다. 1403년 반란을 일으켰다 죽은 것도 맞다. 하지만 헨리 5세와 동년배가 아니라 스물세 살이나 많았으며, 헨리 5세와 맞대결을 펼친 게 아니라 투구를 잠시 벗었다 날아온 화살을 맞고 즉사했다. 

홋스퍼는 14세기 가장 용명을 떨친 영국 기사였다. 그 때문에 프랑스와 프러시아에 외교칙사로 파견될 정도였다. 홋스퍼라는 별명도 박차(spur)를 뜨겁게(hot) 달굴 정도로 말을 질풍같이 몰아 적진 깊숙한 곳으로 겁 없이 돌진하는 그의 무용에 감탄한 스코틀랜드인들이 붙여준 것이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별개의 왕국이었고, 헨리 퍼시의 아버지(제1대 노섬벌랜드 백작)가 소유한 영지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접경지역인 노섬벌랜드였기에 스코틀랜드인들이 그의 무용을 제일 먼저 알아본 것이다. 스코틀랜드어 ‘Haatspore’가 영어로 ‘hotspur’가 됐고 영국식 발음으로 핫스퍼가 아니라 홋스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홋스퍼는 아버지 및 삼촌(제1대 우스터 백작 토머스 퍼시)을 도와 1399년 찰스 2세가 아일랜드를 방문한 사이 랭커스터 공작 헨리 볼링부르크를 헨리 4세로 추대하는 반란의 선봉장을 맡았다. 또 헨리 4세 치하 웨일스에서 일어난 반란을 제압하고 스코틀랜드와 전투(호밀던 힐 전투)에서 승리를 이끈 전쟁영웅이었다. 

하지만 헨리 4세는 퍼시 가문에게 약속한 거액의 포상금을 주지 않았고, 심지어 스코틀랜드 귀족 포로들의 몸값을 가로채고자 포로들을 넘길 것을 요구했다. 이에 격분한 퍼시 가문이 반란을 일으켰다 슈루즈베리 전투에서 총사령관 홋스퍼가 혼전 중 날아온 화살 하나에 숨지면서 허무하게 진압되고 만 것이다. 만일 그 전투에서 홋스퍼가 일찍 전사하지 않았다면 영국 역사가 바뀔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잉글랜드 북쪽 노섬벌랜드도 아니고, 런던에 있는 팀이 왜 홋스퍼라는 명칭을 쓰게 된 것일까. 토트넘에 노섬벌랜드 가문의 영지가 있었기에 빠르고 용감무쌍하던 홋스퍼를 기려 팀명으로 삼은 것이다. 올해 초 개장을 앞둔 이 축구팀의 새 홈구장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이 들어설 공원 이름이 ‘노섬벌랜드 파크’인 이유도 거기 있다. 

팀의 모토인 라틴어 경구 ‘Audere est Facere(용감하다면 행동으로 증명하라)’는 셰익스피어가 ‘헨리 4세’에서 홋스퍼에게 붙여준 것이다. 또 팀 문장을 옛날 축구공 위에 올라선, 박차가 달린 수평아리(cockerel)로 삼은 것도 홋스퍼가 싸움닭을 좋아했는데 자기 소유의 싸움닭 발목에는 특별히 박차를 채웠다는 설화를 토대로 했다. 

토트넘이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의 원조로 불리는 전통은 이렇게 빚어졌다. 그런 토트넘 팬들에게 ‘슈퍼소닉’으로 불릴 정도로 빠르게 달리며 당차게 슛을 쏘아대는 손흥민이 얼마나 사랑스러워 보일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주간동아 2019.01.11 1172호 (p6~7)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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