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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CO 판부터 벌여라”

정부, 無정책 탓 사기 속출…허용해야 산업발전+투자자 보호 가능

“ICO 판부터 벌여라”

아이디어와 기술력은 있지만, 자본이 없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에게 암호화폐공개(ICO)는 좋은 기회다. [shutterstock]

아이디어와 기술력은 있지만, 자본이 없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에게 암호화폐공개(ICO)는 좋은 기회다. [shutterstock]

‘아직도 코인 하는 흑우 없제.’ 

암호화폐 기사에 항상 달리는 댓글 가운데 하나다. ‘흑우’는 ‘호구’를 뜻한다. 올해 초 비트코인을 위시한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하자 투자자 대부분이 장을 떠났다. 하루에 많으면 10배까지 오르던 암호화폐가 급격히 몰락하자, 암호화폐에 대한 기대는 차게 식다 못해 배신감으로 변했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 가짜 암호화폐를 만들어 암호화폐공개(ICO)로 투자자를 모은 뒤 속인 사건이 발생해 인식은 더 안 좋아졌다. 최근에는 한 남성이 서울 강남구 클럽에서 돈다발을 살포하는 소동이 있었다. 이 사람이 ICO 컨설턴트라는 추측이 불거지면서 ICO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점차 나빠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전문 투자사 등은 오히려 암호화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직접 블록체인 개발에 나서거나 암호화폐 거래소 지분을 사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암호화폐시장에 관심이 크지 않다면 최근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릴 것이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거래량이나 가격에 큰 변동이 없기 때문. 하지만 10월 미국 블룸버그는 많은 글로벌 헤지펀드 등이 암호화폐시장의 큰손이 됐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장외시장에서 암호화폐를 거래해 거래소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시 탄력받는 암호화폐

암호화폐 거래소의 모습. [뉴스1]

암호화폐 거래소의 모습. [뉴스1]

8월 글로벌 시장조사 전문기관 탭 그룹(TAPP GROUP)이 발표한 보고서는 ‘장외시장의 유동성은 전체 암호화폐 거래량의 최소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매일 150만 개의 비트코인(BTC)이 장외시장에서 거래됐다’고 밝혔다. 

장외거래가 늘어난 것은 거래소가 보유한 암호화폐 양이 적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암호화폐 자산 전문회사인 컴버랜드(Cumberland)의 바비 조 트레이딩 수석은 “기관투자자들이 암호화폐를 신뢰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가격 변동폭이 지나치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4~6개월간 가격 변동폭이 크지 않았다. 그래서 전통 금융기관이 암호화폐시장에 쉽게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에서도 다시 암호화폐 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일본 자회사 라인은 11월 8일 ‘라인 링크데브 2018’을 개최해 블록체인 플랫폼 ‘링크체인’과 암호화폐 ‘링크’의 개발 상황을 공개했다. 

이날 발표의 핵심은 링크체인이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변화를 꾀한다는 것. 라인 링크체인 개발자인 이홍규 언체인 대표는 “가장 유명한 블록체인 플랫폼인 이더리움은 개설된 지갑 수가 4400만 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정작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인 디앱(dApp)을 이용한 사람은 1만1000명으로 0.025%에 불과하다. 플랫폼은 결국 사용자가 얼마나 참여하느냐에 따라 서비스 가치가 결정된다. 따라서 대중이 쉽게 접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개발사 또한 관련 서비스(디앱) 개발과 공급이 용이해야 한다”고 밝혔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가장 잘 알려진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불특정 다수의 합의 블록체인이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고 참여 인원을 줄일 수도 없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많은 사람이 이용할수록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 

이를 극복하고자 익명성과 불특정 다수 참여라는 부분을 포기한 것이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참여자가 적은 반면 처리 속도는 몹시 빠르다. 그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제한돼 있어 확장성이 떨어진다. 가까운 예로 세계 암호화폐시장에서 시가총액 3위를 기록 중인 리플을 들 수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인터넷,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인트라넷에 비견되기도 한다. 

퍼블릭 블록체인의 암호화폐가 증권과 지분의 역할을 한다면,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송금 같은 기능을 하는 사이버머니에 가깝다. 퍼블릭 블록체인과 달리 확장성을 포기했으니, 굳이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해 사용자를 늘릴 이유가 없다. 암호화폐 없이 블록체인만 발전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이 점에서 기인한다. 블록체인업계 관계자는 “최근 유행하는 페이 서비스의 마일리지처럼 단순히 내부에서만 쓰이는 사이버머니를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만든다면 거래소에 상장하지 않는 편이 낫다. 외부에서도 포인트를 살 수 있으니, 진성 사용자보다 밖에서 마일리지를 사온 사람의 의사결정권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세는 다시 퍼블릭 블록체인

하지만 일각에서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진정한 의미의 블록체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한다. 양대헌 인하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4월 ‘제24회 정보통신망 정보보호 컨퍼런스(NetSec-KR)’ 주제 강연에서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블록체인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불특정 다수와 달리 서로 신분을 아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 문제는 블록체인을 통하지 않아도 이미 해결됐기 때문. 양 교수는 “퍼블릭 블록체인은 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도 그 체인을 믿을 수 있지만,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네트워크에 참여한 사람들끼리만 신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퍼블릭 블록체인 관련 투자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이미 나온 암호화폐를 구매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것, 다른 하나는 ICO로 아직 상장되지는 않았지만 유망한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주식시장에 빗대자면 전자는 상장주식에 투자하는 것이고, 후자는 비상장주식에 투자하는 격이다. 

암호화폐시장의 성장세가 더뎌지자 일부 투자자의 눈이 ICO로 향했다. 비트코인도 초기에는 여러 개를 모아야 피자 한 판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저렴했으니, 차기 비트코인 위치에 오를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미리 알아보고 투자한다면 벼락부자도 꿈은 아니기 때문.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조금씩 줄어드는 동안 ICO에 투자하는 금액은 크게 늘어났다. ICO시장 평가기관 ICO레이팅이 발표한 2018년 이사분기 ICO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블록체인업체가 ICO로 모집한 금액은 총 110억 달러(약 12조4190억 원)다. 전년 동기 대비 10배가 많다. 1년이 아닌, 6개월 간의 성장세도 대단했다. 일사분기에는 세계 전역의 ICO 프로젝트에 약 33억 달러(약 3조7250억 원)가 모였지만, 이사분기에는 80억 달러(약 9조 원)가 모집됐다. 

하지만 국내 블록체인업체들은 ICO가 금지돼 있어 투자금을 모으지 못했다. 지난해 말 정부가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 한해 ICO를 일부 허용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으나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ICO로 돈은 몰리는데

블록체인 관련 강연을 듣고 있는 사람들. [뉴스1]

블록체인 관련 강연을 듣고 있는 사람들. [뉴스1]

이에 일부 업체는 프로젝트 백서를 올려둔 뒤 비공개로 코인을 판매하는 ‘프라이빗 세일’이나 IEO(Initial Exchange Offering) 등의 편법을 사용한다. IEO는 ICO보다 IPO(기업공개)에 더 가까운 형태다. IPO 기업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적합성을 심사하는 것처럼, IEO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금융감독원 역할을 한다. 거래소에서 일정 기간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암호화폐를 공개 판매하는데, 이는 상장과는 별개이므로 투자자들은 이 기간에만 해당 암호화폐를 살 수 있다. 사기가 많은 ICO와 달리 거래소의 심사를 거쳤으니 투자자들이 비교적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ICO를 빨리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래소를 금융감독원 등 국가기관만큼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것. 한 블록체인업체 대표는 “거래소가 유명하지만 속 빈 강정인 코인(암호화폐)의 IEO를 허용했다고 가정하자. 추후 해당 프로젝트가 무너지면 거래소는 일부 신용을 잃어도 크게 손해 볼 일은 없다. 해당 코인을 상장한 것도 아니고, IEO 판매 수익의 일부도 챙길 수 있다. 정부가 IEO가 있다는 이유로 ICO 허용을 계속 거부한다면 블록체인 산업의 주도권을 거래소가 쥐고 흔들게 놔두는 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ICO 관련 사기가 적잖기 때문. ICO시장에 ‘스캠’으로 불리는 가짜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ICO 컨설팅회사 사티스그룹이 2017년 시행된 ICO를 조사한 결과 81%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7월 보물선으로 알려진 돈스코이호 발견 소동을 일으킨 신일그룹이 대표적이다. 신일그룹은 신일골드코인이라는 이름의 암호화폐를 판매했다. 보물선 인양 계획을 발표하고 그 안의 금괴를 담보로 암호화폐를 발행한 것. 각국 암호화폐 거래소와 ICO 평가기관은 백서 내용이 부실하고,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 없는 것 같다며 투자를 말렸지만, 투자자 2600명으로부터 약 90억 원의 투자금을 모았다. 경찰은 사건 관계자 11명을 입건했지만 류승진 전 신일그룹 대표는 해외 도피 중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 주식 장외시장에서 주가 조작, 사기 판매를 일삼던 세력도 ICO 쪽으로 대거 흘러들었다”고 말했다.


사기 막으려면 오히려 허용해야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가운데)이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블록체인 산업제도화를 위한 법령 정비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가운데)이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블록체인 산업제도화를 위한 법령 정비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금융계와 블록체인업계는 이 같은 사기를 막기 위해서라도 ICO를 허용하고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ICO를 법망 안에 들여 기준을 만들면 사기 업체를 거를 수 있다는 것. 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회장은 “제도가 생겨야 함량 미달의 업체가 ICO를 악용해 투자자를 모으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투자자 보호가 먼저라며 ICO 관련 제도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다. 당장 국내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갖춘 업체들이 투자금을 받으려면 ICO를 위해 해외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늑장 대응에 젊은 기업만 고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ICO를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민경두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국도 ICO를 허용해야 한다. 사기나 돈세탁 등 부정적 요소에 대해서는 금지하는 동시에 스타트업계에 ICO의 길을 열어주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도 9월 ICO를 합법화하는 내용의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지난해에 머물러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암호화폐 급등락 사태에서 보듯, 사회병리적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단박에 ICO를 허용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업계에서 먼저 자구책을 내놓았다.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고려대 암호화폐연구센터는 11월 1일 고려대 미래융합기술관에서 IEO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암호화폐 발행 업체는 셀프 체크리스트를 통해 자신의 프로젝트를 직접 채점한 후 이를 공개해야 한다. 체크리스트는 구매자 보호, 사업성 검토, 기술, 법 준수, 보안 등 166개 항목이다. 1000점 만점에서 700점을 넘으면 15억 원 이상, 그 아래는 15억 원 미만으로 투자금을 모으라는 내용이다. 신근영 회장은 “이제 정부에서 의지를 보여줄 차례다. 한국 블록체인 스타트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CO란 주식시장 기업공개인 IPO와 유사한 개념으로, 블록체인업체가 자사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이다. 투자자는 투자 대가로 해당 블록체인에서 사용되는 암호화폐를 받는다.






주간동아 2018.11.16 1164호 (p14~18)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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