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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고려 금속활자 또 나왔다

개성 만월대에서 ‘국보급’ 유물 발굴…고려 전성기 때 제작 추정

고려 금속활자 또 나왔다

고려 금속활자 또 나왔다

11월 14일 개성 만월대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금속활자. 사진 제공 ·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국사 교과서들은 고려 국경을 평북 청천강에서 함흥을 잇는 선 정도로 그려놓고 있다. 그래서인지 고려를 거란과 몽골, 홍건적 등의 침입을 받아온 약한 나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기록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조선 초에 만든 정사(正史)인 ‘고려사’ 지리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나라의 (중략) 넓이는 만(萬) 리다. 고려 태조는 고구려 땅에서 일어나 신라를 항복시키고 (후)백제를 멸망시킨 뒤 개경에 도읍했다. (중략) 대륙에 당나라가 들어선 이후 (고려는) 압록을 서북 경계로, 선춘령을 동북 경계로 삼았다. (고려는) 서북으로는 고구려 지역에 이르지 못했으나 동북으로는 고구려보다 넓었다.’
고려 영토가 만 리였다면, 고려보다 넓다고 배워온 조선의 넓이는 얼마일까. 1897년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개칭하는데, 이를 알리는 고종의 ‘반조문(頒詔文)’에는 ‘4천 리 강토에 하나의 통일된 왕업을 이뤘다’는 문구가 있다. 그렇다면 고려 전성기 영토는 조선보다 훨씬 넓었다는 의미다. 고려는 한반도 전체를 차지했으니, 고구려보다 넓었을 수도 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발굴 7년 만에 성과  

통일 전쟁을 거듭한 고대의 제국들은 서울을 여러 개 두었다. 통일기 신라는 서라벌 외 5소경(小京)을 운영했고, 고구려는 평양·국내성·한성 3경을 두었다. 고려는 중경(개경)·서경(평양)·동경(경주) 3경을 거느리다 이후 남경(한성)을 설치했으나 몽골에 항복한 뒤 개경을 개성으로 바꾸고 경 제도를 없앴다. 조선은 제국을 자임하지 못했기에 여러 개의 서울을 두지 못했다.
조선 법궁(法宮)은 경복궁이나, 고려 법궁은 정식 명칭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고려 법궁은 광명천(光明川)에 걸린 만월교를 건너야 갈 수 있기에 ‘만월대’라 불렀다. 고려 법궁은 네 번 불탔는데, 마지막이 1361년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다. 이후 재건하지 못했다. 고려 왕실은 덜 파괴된 개성의 건물을 수리해 이궁(離宮)으로 쓰다 1392년 이성계에 의해 왕맥이 끊어졌다. 이궁 시절 법궁 터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을 것이 확실하다. 이 원칙은 조선 때도 지켜져, 법궁 터에는 사람이 살지 않으니 잡초만 무성했다. 이 황폐한 모습을 반영한 것이 조선 초 원천석이 지은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라고 한 시조다.
고려 금속활자 또 나왔다

10월 15일 남북역사학자협의회와 민족화해협의회 공동 주최로 개성에서 만월대 출토 유물 남북공동 전시회 개막식 및 학술회의가 열렸다. 사진은 개성 만월대 발굴 현장(아래)과 만월대 배치도. 고려 법궁은 광명천(光明川)에 걸린 만월교를 건너야 갈 수 있다고 해서 ‘만월대’라 불렀다. 사진 제공 · 남북역사학자협의회


조선은 ‘사대(事大)’를 외교의 기본으로 삼았기에 평지에 건설하는 중국 궁성을 본떠, 북악산 밑 평탄한 곳에 경복궁을 만들었다. 중국 궁성처럼 경복궁의 전각도 대칭으로 배치했다. 그러나 만월대는 전혀 다르다. 고려는 송악산 중턱에서 계단식으로 평지를 만들어가며 건물을 세웠다. 산세를 따라 건물을 배치했으니 좌우 대칭은 나올 수 없다. 그리고 송악산에서 내려오는 광명천이 해자(垓字)가 되도록 법궁의 담을 쌓았다. 이는 고려가 조선과는 전혀 다른 풍수를 따랐다는 의미다. 고려는 고구려만큼이나 자주성이 강한 나라였다.
650여 년간 방치됐던 만월대에서 역사적인 발굴이 진행됐다.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후 남북역사학자협의회(역협)를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2007년 역협은 한국이 비용을 대는 형식으로 만월대 초목을 걷어내고 발굴에 들어갔다. 그런데 면적이 매우 넓어(약 1.4km²·43만 평), 사료나 경험을 바탕으로 뭔가 있을 곳부터 집중 발굴하기로 했다.
역협은 7년에 걸친 조사 결과, 11월 14일 3500여 점의 파편과 유물에 금속활자가 포함돼 있다는 놀라운 발표를 했다. 고려의 금속인쇄술은 세계 최고(最古)다.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직지심체요절’이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금속활자는 조악하다. 나무활자도 섞여 있는 것으로 판명됐다. 재질과 크기가 다른 활자가 섞여 있으니 ‘직지심체요절’의 서체는 아름답지 못하다. 이는 절(寺)이라고 하는 민간에서 인쇄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권력을 가진 왕실이라면 금속활자를 훨씬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인쇄를 위해 조선 조정은 ‘교서관(校書館)’을 만들었으니, 고려에도 비슷한 기관이 있었을 것이다. 최근까지 우리 민족이 보유한 고려 금속활자는 남북에 각 1점이었다.
현재 우리에게 남아 있는 최고 금속활자는 1913년 이왕가(李王家)박물관이 일본인 골동품상으로부터 개성의 한 무덤에서 나왔다는 말을 듣고 12원에 구매한 ‘복(·자전에 없는 한자다)’ 자 활자(국립중앙박물관 소장)다. 북한 중앙역사박물관에는 1956년 만월대 신봉문 터 근처에서 발굴한 ‘전()’ 자 활자가 보관돼 있다. 이것 말고도 북한은 90년대 말 신봉문 근처에서 작은 금속편을 발견했으나 금속활자일 가능성을 생각지 못하고 광명천에 버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증도가자 진위 논쟁 뛰어넘나  

고려 금속활자 또 나왔다

1909년 서북순행(西北巡行) 때 개성 만월대를 찾은 순종 황제. 동아DB

귀한 고려 금속활자를 놓고 수년 전부터 ‘증도가자(證道歌字)’ 진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증도가자는 보물 제758호로 지정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를 찍을 때 사용한 활자라는 뜻이다. 현재 남아 있는 ‘증도가’는 고려 고종 26년(1239)에 주자본(금속활자본)을 토대로 목판으로 다시 제작한 번각본인데, 이 책 발문에 ‘기술자를 모집해 주자본(금속활자본)을 재차 새겨 오래 전하게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만약 증도가자가 진품이라면 ‘직지심체요절’보다 적어도 138년이 앞서는 셈이 된다.
 이 와중에 6월 역협은 6개월 시한으로 7차 발굴 조사에 들어갔다. 남북 조사단은 구역을 나눠 발굴하기로 했는데, 북측은 1956년 금속활자를 찾아냈고, 90년대 말 금속조각을 버린 신봉문과 광명천 부근을 맡았다. 정밀한 발굴은 파낸 흙을 체로 쳐서 걸러낸 것을 모았다 물에 씻어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북측은 이 단순 반복 작업을 계속하다 조사 기간 만료를 16일 앞둔 11월 14일 이 금속활자를 찾아냈다. 체로 걸러낸 흙덩이를 물에 씻으니 금속이 나왔고, 더 살펴보니 ‘전일할 전(嫥)’ 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래 마디촌(寸)이 모방(方)으로도 보였다. 方으로 보면 이 한자는 자전에 없는 글자다.
글자 판독이 어려운 것은 활자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정밀 측정 결과 이 활자는 가로 1.36cm, 세로 1.3cm, 높이 0.6cm, 글자 면을 제외한 몸체의 두께는 0.16cm로 나왔다. 남북한이 하나씩 갖고 있는 금속활자도 대개 이 정도 크기다. 이 세 활자는 공통적으로 뒷면에 홈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차례 금속활자가 만들어졌고 오늘날까지 수십만 점이 전해진다. 조선 금속활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만월대 금속활자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이 활자의 서체는 1956년 북한이 발굴한 ‘전’ 자 활자와 달랐지만, 역협은 만월대에서 발굴했다는 것 등을 근거로 고려 금속활자이며 특히 고려 전성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했다.
추후 연구에서 이 금속활자가 증도가자 사태를 덮고 고려 문화와 힘을 보여주는 증거물이 된다면 앞으로 고려사 연구에 큰 자극이 될 것이다. 전성기 고려가 조선은 물론이고 고구려보다도 넓은 제국이었다는 이야기가 터져 나온다면, 동북공정 시행 후 본격화한 고조선-고구려 연구처럼 일본학자들이 만들어놓은 국사의 틀을 또 한 번 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주간동아 2015.12.23 1018호 (p68~69)

  • 이정훈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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