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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박 다르크’도 못 막은 친박계 몰락의 역사

대통령 취임 후 당내 경선서 친박 연전연패

‘박 다르크’도 못 막은 친박계 몰락의 역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소신 있는 사람은 친근감을 갖고 대하게 된다. 가면이 없는 사람끼리의 만남은 무엇보다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아첨을 해야 친해지는 줄 알고, 생색내는 일을 해줘야만 자기를 높이 평가해주는 줄 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초야에 묻혀 지내던 1989년 11월 6일 작성한 일기 중 일부다. 박 대통령의 일기에는 ‘진실한 사람’ ‘배신’에 대한 언급이 종종 등장한다. 박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에 목말라한 것은 1980~90년대 그가 헤쳐온 시대적 배경과 무관치 않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숱하게 많은 사람이 변절하고 변신하는 모습을 목도해야 했던 박 대통령은 그때그때 느꼈던 ‘배신’에 대한 소회를 일기장에 차곡차곡 기록해뒀다.

친박에서 비박으로 월박(越朴)

‘박 다르크’도 못 막은 친박계 몰락의 역사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7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원내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슬프고 우울하게 만든다. 아예 처음부터 마음을 달리 먹고 배신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진정으로 충성을 맹세했지만 어차피 약한 인간이기에 차츰차츰 권세와 명예와 돈을 따라 마음을 바꾸는 사람도 있다. 그러기에 지금은 그 성실성이 훌륭하여 믿음이 간다 하더라도 그가 과연 얼마 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 또는 점점 변해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서글픔을 금치 못한다.”(‘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 72쪽)
박 대통령의 ‘진실한 생각’이 담긴 일기 모음집은 1998년 박 대통령이 대구 달성 보궐선거를 통해 원내에 진출한 이후인 그해 10월 ‘고난을 벗삼아 진실을 등대삼아’라는 제목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박 대통령이 2015년 11월 10일 국무회의에서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달라”고 언급한 이후 새누리당 총선 출마자들은 앞다퉈 스스로 진박(眞朴·진짜 박근혜계)을 자처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특히 새누리당 공천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진박’ 논란에 불을 댕긴 이유는 뭘까. 여권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변신과 무관치 않다”고 풀이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요약한 것.

▼ 박 대통령이 언급한 ‘진실한 사람’은 누군가.
“한마디로 대통령 뜻을 거스르지 않고 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19대 총선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주도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 소속 의원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박 대통령 덕에 금배지를 달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새누리당 의원 상당수가 대통령의 뜻을 거스른 선택을 했고, 그 결과 당내 경선에서 친박(친박근혜)계가 번번이 힘을 쓰지 못했다.”
▼ 의원들이 친박에서 비박(비박근혜)으로 월박한 이유가 뭔가.
“앞으로 자신에게 공천을 줄 사람이 현재권력(박 대통령)이 아니라 미래권력(차기주자)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으로선 자기 도움으로 금배지를 단 사람들이 정부의 성공을 위해 전력을 다해 돕지 않고, 권력놀음에 빠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생각에서 ‘진실한 사람’에 대한 갈증이 커졌을 것이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 치른 경선 결과는 비박계의 일방적 승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 취임 초 치른 2013년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박 대통령 핵심 측근으로 통하는 최경환 의원은 겨우 8표차로 당선했다. 그것도 결선투표에서 이겼다. 1차 투표에서는 비박계인 남경필 의원(현 경기도지사)이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2014년 지방선거 당시 광역단체장 새누리당 경선에서도 서울 정몽준, 대구 권영진, 울산 김기현, 경남 홍준표 등 비박계가 대거 승리했다. 그해 5월 있었던 국회의장 경선에서도 친박계 황우여 전 대표가 46표 득표에 그친 데 반해, 비박계 정의화 의원은 101표 득표로 국회의장에 올랐다.
압권은 2014년 7월 전당대회. 친박계가 똘똘 뭉쳐 서청원 후보를 당대표로 밀었지만 결과는 비박계 좌장 김무성 대표의 8.1%p 차 낙승이었다. 친박계 몰락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2015년 2월 치른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이었다. ‘새로운 보수’를 기치로 내건 유승민 의원이 19표차로 승리한 것. 유 의원의 승리는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포스트 박근혜’에 대비하기 시작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유승민 ‘아웃’ 지시에 재신임으로 화답

‘박 다르크’도 못 막은 친박계 몰락의 역사

박근혜 대통령이 11월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권력의 균형추가 친박계에서 비박계로 기운 것으로 나타나자 박 대통령은 2015년 2월 주호영, 윤상현, 김재원 의원을 정무특별보좌관(정무특보)으로 임명하며 당청 소통의 가교로 삼았다. 그러나 정무특보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김무성-유승민 투톱은 청와대 뜻과 달리 엇박자를 내기 일쑤였다. 결국 국회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를 계기로 청와대가 폭발했다. 박 대통령은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동시에 유 원내대표를 겨냥해 ‘자기 정치’와 ‘배신의 정치 심판’ 등을 언급했다. 국민에게 바른 선택을 당부한 유체이탈 화법이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사실상 ‘유승민 아웃’ 지시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후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의 뜻을 존중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재의 표결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 다만 유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 요구는 일축하고 ‘재신임’을 결정했다. 이후 친박계가 앞장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줄기차게 요구했고, 결국 13일 뒤인 7월 8일 새누리당 의원총회를 다시 열어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권고했다. 유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권고 이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제1조 1항을 되뇌이며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결과만 놓고 보면 유승민 사퇴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뜻이 관철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승민 사태는 ‘여당에 대한 대통령의 장악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자세히 반추해보면 대통령 ‘말 한마디’로 새누리당 의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줬다.
‘달이 차면 기운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박 대통령과 친박계에도 통용될까, 아니면 예외가 될까.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언급한 ‘진실한 사람’이 얼마나 공천장을 거머쥘 수 있을까. 진실의 시간은 그리 멀지 않았다. 





주간동아 2015.12.23 1018호 (p16~17)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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