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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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우향우 프랑스 정치

극우 국민전선(FN) 지방선거 돌풍, 기린아로 떠오른 2명의 르펜

  • 전승훈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입력2015-12-15 1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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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사태, 중동 출신 난민의 물결, 프랑스 파리 동시다발 테러. 올여름부터 불어닥친 ‘3대(大) 위기’로 유럽이 휘청거리고 있다. 각국에서 반(反)이민과 반이슬람, 반유럽연합(EU)을 내건 극우정당이 대거 약진 중이다. 급기야 프랑스에서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이 주류 정당들을 제치고 ‘제1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12월 6일 치른 프랑스 광역지방자치단체 레지옹(region)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FN이 28%를 득표해 1위를 기록하자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이 깜짝 놀랐다. 아니 한마디로 충격에 빠졌다. 프랑스 언론 ‘뤼마니테’와 ‘르 피가로’는 각각 공산당 계열과 전통 우파 성향 신문으로 논조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지만, 이튿날 신문 1면의 제목은 ‘충격(Le choc)’으로 동일했다.
    올해 유럽에서는 폴란드와 덴마크 등에서 포퓰리스트(인기영합주의)이거나 유럽통합에 회의적인 극우정당이 집권에 성공했다. 이들이 제3당 교섭단체에 오르거나 소수당으로서 연합정권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프랑스에서처럼 광역단체장급 이상 선거에서 단독으로 1당이 된 적은 없다. 특히 이번 선거는 2017년 프랑스 대통령선거(대선)를 앞두고 최종 평가전으로 치른 것이기 때문에 대선후보로서 마린 르펜(47) FN 당수의 몸값은 최고조에 올랐다. 일간지 ‘르 파리지앵’은 ‘FN이 권력의 문턱에 섰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극우정당이 단독 집권당이 된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초유의 ‘세계사적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경제위기로 소외된 젊은 층 타깃

    11월 13일 130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리 동시다발 테러 이후 전 유럽은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의 삼색기로 뒤덮였다. 유서 깊은 건축물 및 공공건물의 외벽과 유리창이 빨강, 파랑, 하양 조명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FN의 이번 승리는 중도우파-중도좌파 성향의 전통 주류 정당이 지배하던 유럽 정치판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당장 유럽은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에 이어 ‘프렉시트’(프랑스의 EU 탈퇴) 위험 앞에 놓였다. 마린 르펜은 지난여름 TV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마담 프렉시트’라고 칭하며 “2017년 집권하면 EU와 유로존을 탈퇴하고 프랑화를 부활시키겠다”고 말했다. 르펜은 파리 동시다발 테러 직후인 11월 17일 프랑스가 난민 수용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면서 솅겐조약(유럽 국경 간 자유통행 보장 조약)을 탈퇴하고 국경통제를 강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FN이 득세하게 된 배경을 둘러싸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까지 책임 공방의 불꽃이 튀고 있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중동 출신 난민에게 유럽의 문을 활짝 열어준 메르켈 총리의 조치가 프랑스 국민에게 공포를 심어줬다’며 ‘실제로 파리 동시다발 테러 당시 난민 출신 지하디스트가 등장함으로써 선거에서 FN의 압승으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이번 선거에서 FN을 제1당으로 올려놓은 두 공신은 단연 마린 르펜과 마리옹 마레샬 르펜(25)이다. 이모와 조카 사이인 두 여성은 모두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치단체장 후보로 출마해 1차 투표에서 각각 4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12월 13일 2차 결선투표에서 당선할 가능성도 큰 상황이다.
    마린 르펜은 2011년 아버지 장마리 르펜으로부터 당대표 자리를 넘겨받은 후 당 이미지를 극단주의 소수당에서 주류 대중적 정당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1972년 FN을 창당한 군인 출신의 장마리 르펜은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부정하고 나치 전쟁범죄를 용인하는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올해 5월 그가 같은 취지의 발언을 반복하자 FN은 그를 당에서 제명했다. 심지어 마린 르펜은 ‘과격 무슬림’과 ‘온건 무슬림’을 구분해 이슬람교도를 당원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FN 주최 대회에 과거와 달리 스킨헤드는 눈에 띄지 않고 그 대신 유색인종도 참석하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은 전했다.   
    특히 FN은 수년 전부터 높은 실업률을 겪는 젊은 층을 파고들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도 18~24세 유권자들로부터 33%, 25~34세 유권자들로부터 36%를 득표했다. 전체 득표율 28%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FN에 지지를 보내는 젊은 층은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세대가 많다.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정치나 선거 캠페인에 무관심할수록 FN에 지지를 보낼 확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에서 FN 지지자가 많다는 것이다.

    양비론 사르코지, 공화당 내분 폭발?

    마리옹 르펜은 FN의 이 같은 젊은 이미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젊고 매력적인 금발 외모로 FN의 ‘포스터 걸’ ‘원더걸’ ‘라이징 스타’로 불린다. 2012년 22세에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하원의원에 당선하면서 화려하게 정계에 등장했지만, 할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진짜 이념적 후계자로 꼽히는 강경파다. 마리옹 르펜은 “기독교에 뿌리를 둔 프랑스 정체성을 따라야만 무슬림은 프랑스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특히 사업가 남편과 사이에 한 살배기 딸을 둔 엄마로 가정적이고 독실한 인상을 주는 마리옹 르펜의 모습은 합리적 보수성향의 유권자 상당수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다. 그는 ‘전통적 가족’을 강조하며 반동성결혼, 반이민자, 전통적인 프랑스 가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FN 관계자는 “마리옹은 미디어를 다루는 훈련을 받았고 스스로를 ‘양복 입은 지루한 늙은이’를 대체할 젊은 피로 묘사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잔 다르크 등 프랑스 영웅을 빈번히 언급하면서 프랑스 전설과 신비주의를 자신에게 덧씌우려는 전략도 구사한다.
    프랑스는 지방선거에서도 결선투표제를 적용한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곳에서는 12월 13일 1, 2등 후보끼리 결선투표를 벌인다. 집권 사회당은 결코 FN이 선거에서 승리하게 둘 수는 없다며, 1차 투표에서 FN이 각각 40.64%(마린 르펜)와 40.55%(마리옹 마레샬 르펜)를 득표한 2곳에서 사회당 후보를 기권시키고 공화당 후보를 밀기로 결정했다.
    정치 분석가들은 이번 투표의 가장 큰 패배자로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표하는 공화당을 꼽는다. 부패와 지지부진한 모습으로 우파 진영의 표를 대거 극우당에게 빼앗겼기 때문. 그러나 정작 공화당 대표인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사회당과의 동맹을 거부했다. 사르코지 대표는 ‘프랑스(France)2’ 방송과 인터뷰에서 “좌파가 집권했을 때마다 FN이 역사적인 승리를 거뒀다”며 집권 사회당을 비난하기도 했다.
    공화당은 2017년 대선에 대해서도 사회당이든 FN이든 합종연횡은 없다며 ‘ni-ni’(양비·兩非)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번 2차 투표에서 FN이 6곳 대부분에서 당선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한다면 당 내분이 폭발할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 공화당 소속 장 피에르 라파리 전 총리는 최근 ‘유럽1’ 라디오에 출연해 “공화당 후보가
    3위라면 사퇴하라. 프랑스 공화국이 붕괴 위기에 처했다. 파괴적 세력(FN)에 맞서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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